‘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같은 수많은 격언은 우리에게 순리를 거스르지 말 것을, 권위를 이길 수 없음을 상기한다. 정말그럴까? 만약 그렇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믿었다면, 두려움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면 선은 절대 악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것도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되지도 못한다.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은 모두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다. 그 모든 것은 용기를 발휘해야만 얻을 수있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단지 돈일 뿐이야. 그저 안좋은 기사야. 그냥 서로 소리만 지르는 사람들과 만난 것뿐이야. 그것이 두려워해야 할 일일까? 두려움을 무너뜨리자, 사실만 들여다보라. 탐구하라. 그래야만 볼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적이 보는 것, 적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것을 보지 말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러시는 35년이 지난뒤에도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때의 벅참을 여전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하던 순간, 그현장에 있던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러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미국의 초대 부통령이자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노년의 존 애덤스에게 이렇게 서신을 보냈다. "서명하려고 한 명씩 의회 의장의 탁자로 불려 나갔을 때, 모두 깊은 생각에 잠겨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순간이 기억나십니까? 당시 많은 사람이 본인의 사형 집행 영장에 서명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어요."
애치슨은 이렇게 말했다.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쉬운 선택은 없다. 모든 선택엔 악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결과를 제대로예측해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바로 두려운 이유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 일을 그르치는 것,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일어날 확률 같은 것들 말이다.
세상에는 죽는 것보다 더 나쁜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를 대자면, 먹고살고자 해야 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이다. 영웅이될 기회를 잃은 것을 후회하며, 겁쟁이들이 이끄는 소름 끼치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
전략가로 유명한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비즈니스계에서 미래를 일구어 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시도할 것이다. 그러면우리는 그 결과의 잘못된 편에 서거나 최소한 뒤처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주도권을 잃게 되는 것이다.
‘모든 확실성은 불확실하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그리고절대 안전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사실상 위험에처하게 될 것이다. 잊힐 위험, 원하던 것을 이룰 기회에 가까이가지 못할 위험, 연루될 위험. 이 위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다. "확신할 순 없겠지만 내영혼이 하나도 다치지 않게 잘 해낼 것이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겠다."
두려움은 망설이게 한다. 하면 안 될 이유를 떠올리게 하므로 거의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이런 망설임을 자주 경험하지않는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하라고 자기 자신을 충분히 밀어붙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팀이 되기를 바란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기를 바란다. 군대에서 똑같은 군복을 입고 똑같은 머리모양을 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우리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행동하고, 지시를 따르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생각이자유롭게 꽃피길 갈망한다. 하늘에서 새로운 발명과 발상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남다른 희생을 하며 용기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독창적인 사람이 되자.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기답지못하게 살아가는 것은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 겁쟁이의 의견이자기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라. 우리의 미래는 여기에 달려 있다.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이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는 사람들이 죽음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더 무서워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전하기보다차라리 관 속에 있기를 선호한다는, 꽤 정신 나간 농담이긴 하지만 말이다.
‘차라리 ..…하는 게 낫겠다‘는 나약한 목소리를 신경 쓰지 말자. 가끔은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사람들앞에서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 하는데, 정말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타이츠를 입자, 무대공포증이있어도 밀어붙이자, 연설의 기법을 통달했어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증인석에 들어가라. 모여 있는 직원들에게 어려운소식을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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