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 엑스는 이렇게 말했다. "역경보다 더 좋은 건 없다. 패배와 마음의 상처, 손실 하나하나에 다음번의 성과를 높이는방법이 담겨 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을 겪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겠는가? 다른 역경을 헤쳐 나가지못했다면 이번에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일이 수월했으면 더 나았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위험을감수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도약이 엄청나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두려움의 목소리다. 어려워서 생기는 장점도 있다. 겁쟁이를 쫓아내고 용감한 자를 끌어들인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든지 분명 걱정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도움이 되는가? 전혀 아니다. 걱정은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작은 문제에 집착하게 한다. 공상과 추론 속에서 최후의 날에도래할 결과를 예상하며 의심과 불안에 허우적대게 한다. 자신이 그렇게 상상한 대가를 치르느라 실제로 해야 할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

다음과 같은 생각에 몰두하여 어려움을 헤쳐 나가라. 적당한 부담감을 안고 갈 줄 아는 사람에게 힘든 시간은 수월해질 수도 있고 비좁은 공간은 넓어질 수도 있으며, 무거운 짐은 가벼워질 수도 있다.

왜 겁을 먹고 도망갔는지, 왜 모호하게 행동했는지, 왜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는지는 모른다. 이권이 달려 있을 때 이권에반대되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떤 투쟁을 하고 어떤 짐을 짊어졌는지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그들이 경험한 일의 진가는 절대로 알 수가 없기에 일방적으로 비난만 퍼부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두려움때문에 주저하거나 무너지거나 눈이 머는 일이 삶의 여러 방면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며 한 번쯤은 정신이 무너지는 일을겪게 되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노예 생활 30년 동안 공감 능력을 쌓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왜 그랬냐고 당사자에게 묻기 전까지는 그가 잘못된행동을 한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꿀 능력을 갖추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그냥 휘둘리는것. 우리는 이 두 가지 실제적인 진실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운에 기댈 수도 있고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고 이해하며순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상엔 천재보다 용기 있는사람이 더 적다" 두려움과 불확실성, 지혜롭지 못한 충고가 털의 천재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털은 돈과 인맥, 기술을 비롯해끌어 쓸 자원이 넘쳤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으니 정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어려운문제 앞에서 불안해하는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주체성의 힘이자 주체성을 믿는 우리의 힘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마저도 때때로 다른 사람과 잘 지내고자그의 말에 동의하는 일이 많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시저에서 카이사르의 부하는 제삼자에게 카이사르가 로마 원로원 의원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변명을 예의 바르게 전하기를 바랄지 묻는다. 그러면서 부하는 골똘히생각했다. "카이사르가 거짓말을 할까? 지금까지 팔을 뻗는 곳마다 정복을 일삼아 왔는데, 희끗희끗 수염 난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렵다고 생각할까?"

"폐하께서는 폐하의 몫을, 저는 제 몫을 할 것입니다. 죽이는 게 폐하의 몫이라면 제 몫은 죽는 겁니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 죽지는 않을 겁니다. 저를 세상에서 없애는 게 폐하의 몫이라면 슬퍼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게 제 몫일 겁니다."
결국 헬비디우스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원로원 의원 자격을박탈당하고 황궁에서 쫓겨났으며 나중에는 처형되어 목숨을잃었다. 직장과 목숨을 잃는 것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하지만 헬비디우스는 지위와 목숨을 이용해 맞섰다. 우리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사적인 이익에 타협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인류는 더 높고 좋은 곳을 지향하던 태도를 내던져 버렸다. 천국 따위는 없고, 정부는 음모를 꾸미며, 모든 사람은 악하고, 역사는 범죄의 긴 연대기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 속에서 한 개인은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없다는 무기력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자기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므로 절대로 맞서거나 저항할 수없다고들 말하지 않는가? 이러한 태도가 바로 허무주의다.

우리는 용기 있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고 용감해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보같이 보일까 봐 이렇게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한다. 용감한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믿음이 있으며 냉소에 빠지지 않고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세상에 선과 악이 존재하며,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일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지만 방관자가 되기보다는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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