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학설을 받아들이기 힘든 더 큰 이유는 그의 학설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있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특성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애쓰며, 이런 특성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녀가 그 특성을 갖고 있고, 그것 때문에 예전의나처럼 고통받는 것을 보기도 한다. 다윈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 스스로 타고난 유전 장비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유전 장비의 변화는 돌연변이나 자연 선택 같은 예기치 않은 힘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 꽤 열려 있는 시각을 지닌 사람도 이런 견해에 우울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캄머러는 일상적 사건뿐 아니라 인간 역사 속에도 숨겨진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캄머러는 유전자에 대해 "오늘날 대부분의과학자가 주장한 것처럼 획득된 형질이 전수되지 않는다면 진정한진보는 불가능하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과 고통은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 삶에서 이룬 모든 것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버릴 것이며 그의 자녀들과 그자녀들의 자녀들은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한 번 획득된 형질이 간혹 유전될 수 있다면 우리는 더는 과거의 노예가 아니며 미래를 이끌어 나가는 함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무거운 짐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며 점점높은 수준으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교육과 문명, 위생과 사회적인적으로부터 개인만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동과 모든 말과심지어 모든 생각이 다음 세대에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다르게는 안 될까? 만약 라마르크의 주장대로 습득된 형질들이유전자에 반영된다면, 그 정보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유전자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단백질이나 세포 내의 다른 물질들이유전자를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유전자와 단백질 사이의 전달 물질은 정보를 단지 한 방향, 즉유전자에서 단백질 쪽으로만 전달할 수 있을 뿐, 거꾸로는 전달할수 없다. 유기체의 발전 과정에서 유전자가 작동되었다 멈추었다 할수는 있지만 유전 정보 자체, 즉 염기 배열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DNA는 읽을 수는 있지만 쓸 수는 없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손해 볼 위험이 있을 때는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것을 포기하고기존의 것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 현재 상태가 이상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안전하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유기체는 기존의 유전자로 만족하는 듯하다. 자연은 보수적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돌연변이는 많은 경우 별다른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 유전자에는 유기체의 기능에 별 필요가 없는 의미없는 텍스트도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자나 난자에 고장이 발생하면 대부분 수정이 되지 않거나 배아가 수정 후에 금방 죽게 된다. 그러나 체내의 세포에서 고장이 발생하면 돌연변이는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그럴 때는 태어나는 아기가 유전병을 앓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문 경우 이런 사고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여우연히 부모보다 유전적으로 월등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자신의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준다.

1940년대 IBM의 경영진 역시 기술자들이 처음 나온 전자계산기(컴퓨터)에 매달리고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공연히 기술개발비만 남용한다는 생각이었다. IBM 경영진은 컴퓨터 같은 것은 전세계적으로 몇 대만 필요할 것이라고 추측했기에 혁명적인 컴퓨터개발 대신 타자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뒤늦게 컴퓨터 개발에 착수함으로써 위기를 겪었다.
계획에 따른 진화는 업그레이드된 타자기를 선사할지는 몰라도컴퓨터를 선사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기껏해야 약간 더 세련된 잠자리를 만들어 낼 뿐 파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고슴도치의 가시는 고슴도치 조상들의몸을 따뜻하게 감쌌던 털이변한 것이다. 그리고 포유동물의 이도음파를 증폭하여 전달에서해주는 작은 뼈들(망치뼈, 모루뼈, 등자뼈)은 파충류 턱관절에 있던 뼈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은 무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대신 기존의것을 활용하고 임의로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털은 무기가 되고, 씹는 일을 하는 기관은 감각기관이 된다. 프랑스의 유전학자 프랑수아자코브는 "진화는 공작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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