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먼저‘와 ‘물질 먼저‘ 간의 분쟁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의 믿음이 걸림돌이라 해도, 현실이 스스로 말하면 결과를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방안이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이 처음으로 제기한 역설 속에서 생겨났다. 이를 일반적인 용어로 ‘제논의 화살 역설‘이라고 한다. 제논은 말한다. 화살 하나가 공중을 날아갈 때 우리는 화살을 어느순간에나 관찰할 수 있다. 우리가 관찰할 때, 화살은 특정 위치를 점유한다. 어떤 위치를 유지하는 동안 화살은 움직이지 않은 채로 있다. 그래서 만약 시간이 일련의 순간들이라면, 화살은 항상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떻게 화살이 움직이고 있으면서 동시에 움직임이 없을 수 있는 걸까? 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2500년 후 텍사스대학교의 조지 수다르샨George Sudarshan과 바이다나트 미스라Baidyanath Misra가 ‘양자 제 효과quantum Zeno effect‘를제안했다. 이번에는 관찰되는 대상이 화살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안에 정상적으로 붕괴하게 될 전이transition가 진행되고 있는 분자와 같은)양자 상태다.
존재한다는 것은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이다. 놀랍게도, 우주도 마찬가지다. 의식이 없다면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마치 꿈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아무도 무언가가 존재했는지 알 수 없다. 우주에게 의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우리가 설득력 있게 주장하겠지만, 우주는 "의식 그자체"다. 이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현실의 메시지를 온전히 듣지 못한다.
이제 올바른 질문을 할 차례가 되었다. 생명의 시작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생명 없는‘ 화학적 반응에서 ‘생명 있는‘ 것으로의 전이다. 생명이란 창조 내내 보편적인 화학 행위의 부수적 활동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어떠한 답이든 나머지는 자신들의 즐거운 길을 계속 가는데 왜 몇몇 원자와 분자만이 이 부수적인 활동에 참여하는지도 설명해야만 한다.
슬프게도, 옥에 티가 있다. ‘준안정적‘이라는 말은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불안정한 영역들이 상쇄된다는 걸 의미한다. 죽어가는 사람의몸속 탄소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몸속 탄소만큼이나 안정적이다. 한발 물러나서 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어난 모든 일은 아무런의미가 없다. 이 말은 화학 수업에서는 괜찮겠지만, 실생활에서는 쓸모없다. 진공 상태는 은하가 태어나서 소멸해도, 아니면 인류가 나타나서 멸종해도 안정적이다. 이는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만을 말할뿐이다. 린데는 훌륭한 무대를 준비했지만(아마도 지금까지 준비된 가장훌륭한 무대일 것이다), 무에서 어떻게 생명의 근원으로 이어졌는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우주의 마음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충분히 논리적인 접근이다. 돌고래나 코끼리 모두 매우 높은 수준에서 작동하는 커다란 뇌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마음을 통해서 현실을 볼 수는 없다. 돌고래에게는 돌고래의 현실이, 코끼리에게는 코끼리의 현실이 있다. 그들 각자 나름의 신경계에 맞춰 존재하는 게 거의 확실하다. 돌고래는 단어를 배울 수 있다고 알려져 왔는데, 이 때문에 인간은 돌고래에 친밀감을 느낀다. 또한 돌고래는 인간처럼 야만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인간이아니고, 우리의 현실 너머의 현실에 산다.
우리가 ‘참여우주participatory universe‘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참여가 전부라고 말하는 건 그저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다. 우리의 마음은 우주의 마음과 융합되어 있다. 이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유일한 이유는 오래된 두려운 것(완고한 물질주의) 때문이다. 물질주의자에게 뇌가 없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뇌를 사고 기계로 보는 한, 우주의 마음은 있을수 없다. 이 장애물보다 더 다루기 힘든 건 없을 것이다. 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인간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과 융합되게 하려면, 우리는 뇌가 어떻게 마음과 연관되는지의 미스터리를 다루어야만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인간 두뇌를 1.6킬로그램 우주"라고 부른 첫 번째 사람은 잊히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뇌가 슈퍼컴퓨터처럼 작동하는 독특한 물체라면, 물질주의자들이 이겼다. 하지만 우리 뇌 안의 원자와 분자를 특별한 지위로 승격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가 마음의 지배를 받아 만들어지고 조정된다면, 뇌 또한 마음이 하라는 대로 작동한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다.
마음은 생각한다. 컴퓨터는 숫자를 주무른다. 마음은 개념을 이해한다. 컴퓨터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은 걱정하고 의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통찰력의 순간을 기다린다. 마음에는 감정이 있다. 컴퓨터는 입력된 숫자에 기반해서 대답을 뱉어낸다. 마음은 이유를 묻는다. 컴퓨터는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명령하지않으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마음은 경험을 함으로써 세상을 헤쳐나간다. 컴퓨터는 어떤 경험도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를 돌린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을 설명할 수 없는데, 특히 양자입자들이 마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 관찰자 효과를 설명할 수 없다. 의식이 양자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다른 어떤 과학적 사실만큼이나 똑같이 실용적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논쟁에서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또한 마음과 물질은 뇌 속에서 계속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를 피할 방법도 없다. 생각은 화학물질을 일으키고, 거꾸로 화학물질은 생각을 일으킨다. 누구도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도 복잡성이 어떻게 생명의 속성을 설명하는지 보여주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카드 한 벌에 카드를 추가하는 것이 포커게임 방법을 갑자기 배우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시적 박테리아에게 더 많은 분자를 던져준다고 최초의 세포가 어떻게 존재하게되었는지, 그리고 더군다나 이들 세포가 어떻게 복잡한 행위를 배웠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두 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떠오른다(인간 존재는 의식적이지 않다는 비상식적인 주장은 제쳐놓는데, 이는 진지한 사고라기보다는 장난처럼 보인다). 첫 번째 결함은 창조력이다. 인간은 거의 무한한 발명, 예술, 통찰, 철학, 발견 행위를 할 수 있는데, 이는 세포의 고정된 기능으로축소될 수 없다. 두 번째로, 좀비 이론은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스스로 좀비가 되는 식이기에 자신들의 개념이 신뢰할 만하다는 걸보여줄 방법이 없다. 따라서 자기 모순이다. 이는 마치 낯선 사람이당신에게 와서는 "저는 당신에게 실체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줄 겁니다. 하지만 먼저 제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뇌라는 물체가 마음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가정을 떨쳐내는 것보다 심장을 관통하는 말뚝으로 흡혈귀를 죽이기가 더 쉽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뇌와 마음에 관한 현재 이론들 속에 담긴 치명적인 오류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좋지 않은 생각을 해체하는 것과 더나은 것을 발견하는 것은 같지 않다. 우리는 비틀즈의 명곡 〈렛잇비Let It Be〉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으면더 나은 생각을 펼칠 수 있다. 당신의 뇌가 이 노래를 음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마음이 음미하는 것인가? 뇌가 음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경과학자들은 <렛잇비>가 소리 진동으로 귓구멍으로들어갈 때 어떤 특정 뇌 프로세스를 일으키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있다.
어떤 뇌 기능도 엉망이 되지 않았다. 음악을 만드는 뇌 기능은 복잡하고 불가사의하게 연결되어 있다. 잡음 신호를 의미 있는 음악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물리적으로 관찰될 수 없다. 뇌가 음악을 만들고 감상하도록 진화했는지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따라서 음악에 전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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