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커니 서서 분자 하나를 계속해서 지켜보면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모습을 관측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리고 그게 역설이다. 관찰자가 계속해서 또는 아주 짧은 간격으로 지켜보게 되면 관찰되는 상태는 절대 붕괴하지 않는다. 날아가는 화살을 작은 시간 단위로 잘라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양자 시스템을 관찰하는 것은 잘게 쪼개진 활동을 더 쪼개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비유를 위해 당신이 웨딩 사진사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이 "웃어요"라말하면, 신부는 "카메라가 나를 향해 있으면 웃을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제 당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카메라를 그녀에게 향하는 한 미소는 없다. 카메라를 치우면 미소 띤 신부의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이것이 양자 제논 효과의 본질이다.
‘물질 먼저‘ 진영은 지속적인 관찰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을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이들은 신부에게 "카메라가 당신을 향할 때 당신이 웃을 수 없다고 해도 전 상관 안 합니다. 제가 미소를 잡아낼 ㅁ까지 당신에게 카메라를 계속 들이댈 겁니다." 그는 영원히 기다릴 수있다. 양자 제논 효과에도 불구하고 ‘물질 먼저‘ 진영은 기다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자 제 효과는 우리가 관찰을 고집하는 한 전이가 진행되는 특정 분자를 결코 볼 수 없을 것임을 말한다. 사실 더 많이 관찰할수록, 불안정한 시스템은 더 얼어붙을 것이다.
달리 말해서, ‘물질 먼저‘와 ‘마음 먼저‘는 둘 다 ‘현실 먼저‘에 항복해야만 한다. 관찰자는 현실 이외에는 서 있을 곳이 없다. 관찰자는바다를 탈출하려는 물고기와 같다. 물 밖으로 나가면 죽음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의 존재 방식은 우주에 참여하는 것이다.
방정식과 이론, 과학 데이터와 결과는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라 말할수도 있지만, 생명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한다. 살아 있는 것의 가장특이한 점 하나는 이게 어떻게, 그리고 언제 생겨났는지를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다. 어떠한 생명체(감기 바이러스, 티라노사우루스, 나무고사리, 또는 갓난아기)는 다른 생명체에서 태어났다. 생명은 생명에서 나온다. 이것은 생명이 처음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죽은 물질에서 살아 있는 물질로의 전이가 어떤 식으로 일어났음은 분명하다. 생화학에서는 이 중요한 전이 순간을 한쪽에서는 무기화학으로, 다른쪽에서는 유기화학으로 설명한다. 유기화학은 생물(유기체)에서만 나타나는 화학으로 정의한다. 소금은 무기물이다. 이는 탄소(생화학 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에 DNA에 의해 다량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과 효소는 유기물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생명은 물리학에서 가장 불편한 주제다. 생물학은 추상적인 방정식에 맞지 않는다. 생명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느낌인지를 염두에 둔다면, 생물학조차 이를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명에는 목적, 의미, 방향, 그리고 목표가 있지만, 유기화학물질은 그렇지 않다. 단백질 사슬이 주변을 둘러보다 생명체와연관된 것들이 나왔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건 마치 뉴잉글랜드 들판에 있는 돌들이 주위를 둘러보다 농부의 울타리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소금은 ‘죽었다‘ 하더라도, 생명은 소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몸 안의 모든 세포에는 필수 화학 성분인 소금이 들어 있다.)
현 상황에서 이런 추측은 과학계에서 상당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표준적인 견해는 우주가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명의 시작에 관한 새로운 모델을 제공하기 전에, 먼저 기존의 사고를 해체해야만 한다. 의식하는 우주에서는 모든 것이이미 살아 있다. 생명이 생명에서 나온다는 관찰은 우주적 진실임이 밝혀졌다.
미생물이든, 나비든, 코끼리든, 아니면 야자나무, 살아 있는 것이하는 일은 그 구성성분이 하는 일과 같지 않다. 화학물들을 아무리 섞어도 피아노가 음악 작품을 쓸 수는 없다. 인간 몸과 마찬가지로, 피아노의 재료인 나무는 주로 섬유소로 된 유기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섬유소에 대한 어떤 것도 비틀즈를 비롯한 다른 가수의 음악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처럼 인간 몸의 화학물질을 이리저리 뒤적거려서는사람이 행하는 어떠한 행동도 설명하지 못한다. 유전학은 불안정한토대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자는 거의 순간적으로 상호 작용한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몸에 존재하면서 파괴적인 과정과 건설적인 과정 모두에 작용하는 ‘자유라디칼free radical‘로 알려진 화학물질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자유라디칼은 양날의 칼이다. 노화와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동시에 상처를 치료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자유 라디칼이 기본적으로하는 일은 상당히 단순하다. 다른 원자나 분자에서 전자를 훔치는 것이다. 방사선, 흡연, 그리고 다른 환경적 요소나 인체 자체의 자연적인 과정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유 라디칼 자신의 전자 개수는 불안정하다. 면역 시스템은 자유 라디칼을 만들어 침입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방법으로 이들에게서 전자들을 훔친다. 전자 훔치기와 연관된 가장 흔한 원자는 산소다. 산소의 전자 개수가 불안정할때, 산소는 훔칠 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전자에 달라붙는다. 따라서, 자유라디칼은 반응 속도가 빠르고 보통 수명이 짧다.
생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 정반대의 어울림은 가설이 아니다. 세포 내부에서 몇몇 원자와 분자는 다른 원자와 분자와 결합하여 다양한 일을 하기 위해 자유로워야만 한다. 반면에 이런 일을 완료하려면안정된 물질이 변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원자가 어느쪽을 담당하는가? 정해진 주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건, 가장 중요한 유기화학물질 중 어떤 것, 주로 식물에 있는 엽록소와 붉은 피 동물의 헤모글로빈은 안정 대 불안정의 까다로운 균형을 놀라운 극단까지 유지한다는 것이다.
생명은 생명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납득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아니다. 최초 시작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작게 더 작게 가하는 충동에서 과학자들은 벗어날 수 없다. 가장 오래된 생물은 현미경으로 보아야 할 정도로 작은데, 세포보다 훨씬 작으며, 몇 억 년이지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최근에 이루어진 발견은 지구가 형성되고 고작 10억 년이 지난 35억 년 전부터 이미 복잡한 미생물이 강성했음을 보여준다. 몇몇 미생물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매우 오래된 암석에는 검출 가능한 박테리아 화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게 발견되고 연대를 추정할 때마다, 누군가 이의를 제기한다. 화석(즉생명의 흔적을 보고 있는지 결정체(즉 무생물)의 흔적을 보고 있는지를 구별하기란 극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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