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잊지 말게.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 나타나 그대에게 배움을 주고, 그대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안내자들이지."

아득한 전생의 일을 마치 지난 몇 해 전 일처럼 들려준 그 남자는 그렇게 영원한 사랑의 기억을 안은 채 천천히 또 다른 시간속으로 떠나갔다. 어서 육신을 떠나 다음 생으로 이어질 사랑의재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그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서 느낄수 있었다. 우기가 시작되려는지 오렌지색 석양이 야무나강 저편으로 인도 여인의 사리 자락처럼 빙 둘러쳐져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 자신이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음을느끼곤 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 세계와, 오래전에 살았던것 같은 또 다른 세계가 내 기억 속에서 교차하곤 했다.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돈 몇 푼을 내고선 내가 하려는 이야기마다 가로막고 소리를 질렀소, 그 이야기들을 통해 내가 어떤 결론에 이르려고 하는지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소. 당신이 계속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결국 당신이 내지르는 소리에 내 영혼이 놀라 쓰러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영혼 또한 당신이 내지르는 소리에 결국은 쓰러지고 마는 것이오."

그녀는 손에 작은 유리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병 속에는 스무마리가 넘는 주그누(반딧불이)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내가 놀라서 바라보는 사이에 소마는 그 반딧불이들을 모기장안에 풀어놓았다. 반딧불이들은 모기장 곳곳에 달라붙어 하나둘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열일곱 살 소마의검은 눈동자 속에서도,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눈동자 속에서도아름답게 반딧불이들이 반짝였다.

그날 밤, 나는 모기장에 매달려 명멸하는 반딧불이들의 숫자를 세며 잠이 들었다. 신비한 눈을 가진 인도 여인 소마가 잡아다 준 데칸고원의 반딧불이들은 여행과 고독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듯 그렇게 언제까지나 반짝여 주었다. 그리하여 고독과 두려움대신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만이 남게 되었다.
아니, 그것은 잠들면서 나 스스로 한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여행에서 아름다움으로 나를 찾아온 것들, 진실한 것들, 그리고 순수한 기쁨들, 그런 것들만 기억하자고.
그것은 내 스스로의 다짐이었고, 자주 찾아오지 않는 행운의계시였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럼 어떤 게 그림의 떡이고, 어떤 게 진짜 떡이죠?"
그가 말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삶의 지혜 아니겠소? 어리석은 사람들은 대개 그림의 떡인 줄 모르고 달려들다가 인생을 망치곤하거든."

인도에서는 인도만 생각하고, 네팔에서는 네팔만 생각할 것!"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행자들은 서로 만나면자신이 여행한 다른 장소를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인도에서는 네팔 이야기를 하고, 네팔에서는 인도 이야기를, 뭄바이에서는 콜카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살면서도 언제나 어제와 내일을 이야기한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
그의 명언은 오래 씹을수록 향이 나는 숍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인도 음식을 먹고 나면 접시에 담겨 나오는 풀씨처럼생긴 작은 열매로, 그것을 씹으면 음식 냄새가 제거되고 입안에향기가 더해진다. 라자 고팔란 씨의 명언이 바로 그 솝과 같았다.
책이 아니라 삶에서 얻은 지혜를 그는 적절히 영혼의 양식에버무릴 줄 알았다. 갖은 향신료를 빻아 음식의 향을 내듯, 그는몇 개의 톡 쏘는 명언으로 영혼을 향기롭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인도 음식이 다른 나라 음식보다 향이 강한 것처럼, 라자 고팔란씨 역시 인도의 식당 주인답게 독특하고 특별한 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야간열차를 타고 멀리 오리사주로 떠나야 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식당을 나설 때, 라자 고팔란 씨는 인도 만두 사모사 몇 개와 함께, 마지막으로 고독한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명언 하나를 선물했다.
"어디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며, 생은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기 마련이라는 것, 자신의 시행착오를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는것이야말로 가장 큰 시행착오라는 것, 따라서 자신을 괴롭힐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구루지는 내게 일깨워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치유되어 가고 있었다.

"당신 자신이 진정으로 경험한 것이라면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것이오. 그것들은 굳이 종이 위에 적어 놓을 필요가 없소. 왜냐하면 그것들은 당신의 가슴속에 새겨지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소?"

"당신이 만일 진정한 작가라면, 종이 위에 적어 놓은 메모들이아니라 당신의 가슴에 새겨진 자신의 경험들을 갖고 글을 써야만 할 것이오!"
듣고 보니 너무도 멋진 말이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그 말들을 수첩에 적어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수첩을 꺼내들려는 찰나, 노인이 말했다.
"당신의 영혼 깊이 새겨진 진실한 경험이 아니라면 글로 쓸 가치도 없소. 머릿속에 한순간 스쳐 지나가고 마는, 그래서 금방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들을 갖고 글을 쓴다면, 그것이 어찌 다른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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