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배터리파크시티의 산책로를 걷다가 어느중년 커플 곁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여자는 흑인이고남자는 백인이었는데, 둘 다 반백의 머리에 턱선은울퉁불퉁했다. 손에 손을 잡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사랑하는 사이에만 주고받을 법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구하는 눈길로 서로의 얼굴을 더듬고 있었다. 그 모습을바라보다 문득 이 도시엔 이제 피부색이 다른 중년 커플이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쯤부터는 동네 곳곳에서그런 커플을 많이 마주쳤다.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 혹은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대부분은 사오십대였는데 이제 막가까워지기 시작한 사이란 게 훤히 보였다. 흑인과 백인이서로에게 현실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가새삼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이 글을 쓸 당시 볼턴은 칠순이 다 됐었다. 번잡한도시의 아름다운 단절 속에 비친 현대의 삶말로 다못할 엄청난 자유가 있는 그 삶이 다른 시대가 한 적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보여주었다는 걸알 만큼 오래 산 것이다. 볼턴 역시 프로이트가 알았던걸 알고 있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불가해하게도 우리는 그 외로움을 포기하길 망설인다.
심리적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 한순간도 모순으로부터자유로울 수 없다. 그야말로 갈등 간의 갈등이다. 이것이볼턴의 통찰이자 유일한 깨달음이었다. 1940년대 말 그가이 글을 썼을 때 교양 있는 독자들은 그 심오한 울림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