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켜면 소리가 난다. 없던 소리가 생겨난 것이다. 소리가 나는 것이 연기의 ‘기본‘에 해당한다. "소리가 왜 날까?"를 설명하는 부분.
이 연기의 ‘연‘으로, 소리가 날 여러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라디오 소리가 나기 위해선 실로 무수한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중에서 세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전파를 보내는 방송국이 있어야 하고, 전파를 수신하는 라디오라는 기계, 그리고 라디오를 켜는 사람의 동작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쟁이 나서 방송국이 파괴되었다고 하자. 그런데도 계속 나는 라디오 소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방송국이파괴되면 왜 나던 소리가 멈출까? 라디오 소리는 방송국에 의존해야만비로소 나기 때문이다. 만약 라디오 소리가 방송국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방송국의 파괴와 관계없이 소리는 계속 날 것이다. 따라서 의존해야만 있을 수 있는 것은, 다시 말해 조건이 갖추어질 때만 생겨나는 것은영원할 수 없다. 조건이 변하거나 소멸하면 결과물인 그것도 함께 변하모든 것은 그렇게 생겨이다.
거나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기‘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조건에 의해 생겨난다‘이지만,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조건에 의해 생겨났다가, 조건이 변하거나 소멸하면 함께 변하고 소멸한다‘이다. 이때의 조건을 불교에서는 인연이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연기의 이치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한다. 연기의 이치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만고불변의 진리다.

멀리 소나무 숲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바람 소리가 날 만한 조건이갖추어져 소리가 난 것이다. 다시 말해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리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항상 있다가 지금 홀연히 여기에 나타나서 소리가 난다고 하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을 것이다. 이 소리가 더이상 나지 않을 때, "그 소리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대답하겠는가? "그 소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이 갖추어졌기에 소리가 났다가 인연이 다했기에 그냥 소멸했을 뿐입니다."라고대답한다면 연기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파초 잎에 내리는 비는 근심이 없는데
단지 사람이 그것을 보고 애간장을 태운다.
비는 아무런 근심 없이 그냥 파초 잎을 적신다. 파초 잎에 떨어지는 자신을 정당화하려고도 않고 일부러 그 의미를 찾지도 않는다. 바람이 불면 파초 옆의 잡초에 떨어졌다가 날이 개면 발버둥치는 일 없이 깨끗이말라버린다. 인연이 되면 또다시 파초 잎에는 비가 내린다.
실제로 있는 세계는 인연이 되어 파초 잎에 비가 내렸다가 인연이다 되면 흔적도 없이 마르는 세계밖에 없다. 이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의세계다.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이 세계를 슬픔과 기쁨 등 갖가지 색깔로 물들여 놓고는,
세계는 애초부터 그런 색깔로 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신비로운 바람을 맞듯이 이 생각 저 생각하지말고 그냥 눈앞의 일을 직시해보라. 화가나는 일이 있다면, ‘이런 이유로 화를 낼 수밖에 없다‘ 하면서 화를 내는 자신의 정당성을 되뇌지 말라. 화를 내는 것에 대해 자꾸 설명하거나 이유를 붙이면 화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그럴수록 화의 뿌리는 더 깊어져 끝날 줄을 모른다. 화에서 도피하지도 말라.

편하면 편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살며, 죽음이 오면 죽는 것이다. 그날그날이 좋고 나쁨을 초월한, 매일매일이 그날밖에 없는 유일한날, 절대적인 날, 최고의 날이다. 이렇게 사는 자에겐 매 순간이 모든 것이므로 매 순간이 곧 영원이다. 순간순간의 장면은 편하거나 아프거나하는 무상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그는 영원을 산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진리인 연기 그대로 살기 때문이다.
인연이 되어 생겨날 때는 100퍼센트 생겨나고, 인연이 다 되어 소멸할때는 100퍼센트 소멸한다. 인연의 세계에서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는가? 살아갈 때는 100퍼센트 살고 죽을 때는 100퍼센트 죽는다. 결코 미진함과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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