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것을 모두 말하는 것은 단순한 과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큰 탓에 대략적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 방해되는 걸림돌이 클수록, 환자는 더 비생산적이 된다. 하지만자유 연상에 더 가까워질수록 환자는 자신과 분석가가 들여다보기쉽게 더 투명해진다.

통찰이 안도감을 줄 수 있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성이 낮은 사항부터 시작해보자.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던 어떤현상의 이유를 알게 되면서 만족스러운 지적 경험을 하는 경우가많다. 삶의 어떤 상황에서든지 단순히 진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현재의 특이한 태도를 설명할 때도 적용된다. 또한 자신의 발달이 시작됐을 무렵, 어떤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한 이해를 돕는 기억이라면, 지금까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꺼내야 할 때도 이 생각이 적용된다.

그러나 통찰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안도보다는 고통일 수 있다. 앞 장에서 논의했듯이 통찰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찰을 오직 위협으로만 느끼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낙담과 절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두 가지는 달라 보이지만 본질을 따지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당사자가 삶에 대한특정한 요구를 포기할 수 없거나, 아직 포기할 수 없거나, 당연히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따라 반응이 정해진다. 물론 요구는 그 사람의 신경증적 경향에 좌우된다.

통찰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해도 그 문제에 관한 최종결론이 되진 않는다. 사실 부정적 반응은 비교적 짧은 시간만 지속되고, 재빨리 안도감으로 변한다. 특정한 통찰에 대한 환자의 태도를 추가적인 정신분석 작업을 통해 바꿀 수 있는지 결정하는 요인들을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변화 가능한 범위에 있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성격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도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통찰이 진정한 감정적 경험이라면 통찰 그 자체도 하나의 변화가 될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억압되어 온 적대감에 대해 통찰이 얻어진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적대감은 여전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인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것은 기계적인 의미에서만 사실이다. 자신이 거드름을 피우고, 피곤하거나, 짜증이 많이 났다는 것만 알았던 사람이 억압을 통해 이러한 장애를일으킨 구체적인 적대감을 인식한다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논의된 바와 같이 그는 발견의 순간에 자신을 완전히 다른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가 인식을 곧바로 버리지 않는 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 인식은 자신에 대해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적대감의 의미를 조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에 직면했을 때 느끼던 무력감을 없애고, 더 활기찬 생동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이 모습을 드러낼 때 알아보고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련된 모든 문제를 철저히 규명한 뒤에 환자는 입장을 정해야 한다. 자신의 이상을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은지, 물질적 이익에는 어느 정도공간을 할애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이러한 지점, 환자는 통찰에서 태도 수정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할 수 있다.

더구나 분석가는 환자의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이 왜 하필이면지금 떠오르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것은 특정한 맥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분석가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졌다면 첫 번째 맥락에서는 도움과 이해에 대한 진정한 감사를 나타낼 수 있다. 두 번째 맥락에서는 앞선 분석 시간에 새로운 문제에대처하느라 야기된 불안감이 환자의 애정 욕구를 증가시켰음을 암시할 수 있다. 세 번째 맥락에서는 분석가의 육체와 영혼을 소유하려는 욕구의 표현일 수 있다. 환자는 이때 새로 발견된 갈등이 ‘사‘랑‘으로 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분석 후반 단계의 저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석가가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분석가는 많은 작업을 하고 통찰도 많이 얻었음에도 환자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경우 분석가는 해석자의 역할을 버리고, 환자가 통찰과 변화의 어긋남을 대면하도록공개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때 분석가는 어떤 통찰도 자신에게 절대 손대지 못하게 만드는 환자의 무의식적인 의구심에 대해 의문을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을 쌓아 올린 가공의 토대가 흔들리면서 환자가 자신을의심하기 시작할 때도 있다. 자신에 대한 해로운 착각이 없어지는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신경증은 예외 없이 건실한 자신감을 크게 손상시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월함에 대한 허구적 관념이 자신감을 대신한다. 하지만 힘든 싸움의 한가운데에 있는 환자는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하다. 환자에게 부풀려진 관념을 무너뜨리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의 파괴를 의미한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만큼 성자 같지도, 사랑스럽지도, 강인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고, 영광을 잃어버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시점에서 환자는 비록 자신조차 자기에 대한 믿음을 잃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

환자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보다 분석가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중에 자신의 특이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불안한 성격의 특성들, 즉 소심함과 의존성, 오만함, 복수심, 사소한 상처에도 움츠러들고 얼어붙어 버리는 성향은 언제나 환자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자기 이익을 저버린다. 그러한 특성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불만족스럽게 여길 뿐 아니라 환자 자신까지불만족스럽게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의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이런 사실이 종종 흐릿해진다. 그는 의존적으로 지내고, 앙갚음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기면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고 느낀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의지가 덜하다. 같은 특성이 분석에서 나타나면 환자의 이익에 반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 특성들의 해
‘로운 성격을 보지 않을 수 없고, 자연스럽게 그 부분에 대해 눈감고싶어 하는 환자의 충동이 상당히 줄어든다.

분석가와 환자 관계의 또 다른 측면은 분석가가 환자에게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으로 인간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분석가가주는 다른 지원은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 데 반해 인간적 도움은그 정의상 자기 분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분석을 수행하는 사람이 운 좋게 자신의 발견에 관해 이야기할 이해심 있는 친구가 있거나 이따금 분석가와 함께 확인해볼 수 있다면, 자기 분석이덜 외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방편도 다른 인격체와 긴밀히 협력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인간적인 도움의 부재가 자기 분석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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