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해주신 꿈의 가격은, 영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두 번 다시 나를 볼 일이 없다는 듯 등을 돌린 채 유유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모든 꿈을 빼내버린 내 몸은 여름날 한철나무에 달라붙어 목 놓아 울다가 떨어진 매미처럼그 자리에 스러져갔다.

일부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불발탄이 있다 해도, 그중 하나라도 적중하면 맞붙어 있던 다른 탄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지. 너의 고통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내 약속하마. 나를 믿어주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이 업을 달성해주렴. 앞서 간 다른 모든 아이와 마찬가지로, 1년에 하루 우리 부대에서 정한 기념일에 잊지않고 묵념하며 너의 영면을 빌겠다.

쥐라는 생물이 멸종을 한 게 아니니 당연히 어딘가에 많이들 살고 있을 테고, 사람의 문화와 문명이그것을 이부자리나 식탁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최소한 사람들의 눈에 덜 띄게끔 관리했을 뿐이었다.
선량한 시민의 삶을 위협하지 않도록, 그것들이 없는 척, 그것들이 살아 있다는 걸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말하자면 관리 실패였다.
아기를 키우는 집에 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 상승으로 인해 집주인은 다음번에 전세금을 대폭 올릴 예정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대출을 받을 조건이되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확인받은 내용을 반복하며, 그렇다고 하여 최소한 사장을 닦아세우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을 만큼 침착하게 말한다. 사장은 애가 달았는지 전날과는 사뭇 다른 저자세로 나온다.
그분은 다시 안 올 거고,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하지 마요. 내가 더 좋은 분들 모시고 자주 올게요.
아니, 이제 자주 오시는 건 필요 없고 그냥 계약이나 좀 확실하게 될 것 같은 분들한테만 이 집을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나 되는대로 죄다 데려오시니까 저는 계속 제 생활공간을 노출만 하게되잖아요. 저한테도 일상이 있는데.

그러니까 신혼부부 말고요, 이런 나무 문짝이나확장 공사 안 된 거나 뭐든 신경 안 쓸 법한 분들, 사정 급한 팀, 잠깐 머물다 가실 분들, 아니면 연세 있으신 분들 있잖아요. 이제 막 결혼하는 신혼부부가, 아무리 부분 수리를 염두에 두고 온대도, 집 꼴이 이런데 계약하고 싶겠냐고요. 이미 살던 집이라집 꼴을 어떻게 확 바꾸고 살림을 다 갖다 버릴 수도 없는데, 왜 이 평수로 전세 찾는다 소리만 나오면 무조건 하고 다 데려오시는 거냐고요. 주인집하고 관계만 중요하시고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안 보이시냐고요.
사장은 그 점에 대해서는 항변하고 싶은 눈치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할 말 없는 처신을 했음을알고는 있는지 조만간 또 연락드리겠다는 말만 남긴 뒤 일단 한발 물러난다.

그러나 이런 소리와 진동은 설마..…… 문득 복도어딘가에서 몇몇 집의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사람들의 발소리가 난다. 뭐야, 어디 지진 났어?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사람들도이것을 듣고 느끼고 있다. 그녀는 더 생각할 틈도없이 아이를 안은 그대로 패딩을 덮어서, 짝이 맞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신발을 꿰고 문밖으로 나선다.

이 쥐들이 어디로 가려는 중인지, 휘파람 소리를따라갈 뿐이었는지, 그게 아니라 휘파람은 그저 우연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다만, 서식하던 쥐 떼가 일시에 빠져나오자 종이 상자처럼 차례로 무너져 내리는 아파트의 모습이다. 그것의 하부 구조를 여태 지지해온 것이 쥐 떼라도 되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모든 집이 사람 사는 터전으로보였지만, 실은 쥐들의 왕국에 사람이 세내어 살고있었다는 듯이.

너 이거 싫어했잖아.
그 애가 막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는 바람에 나는그 뒷모습에 대고 서둘러 부정할 기회를 잃었다. 그런게 아니었다고.
그 애는 어른이 되면 두 팔을 벌리고 선 나무가될지도 몰랐다. 깜박 졸던 신의 실수로 식물의 유전자를 가진 무언가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처럼. 두 팔로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고, 머잖아 그것이 하늘까지 뻗어 올라갈지도

무엇보다 단단히 포용할 수 있겠지.
진작 옷본을 떠놓고 미뤄두었던 늦가을용 롱슬리브 벌룬 타입 원피스를 시작하기 위해 작업대에앉는다. 그럼에도 한참 뒤, 전기 재봉틀이 돌아가는소리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풍경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어서오세요.

신의 사전을 훔쳐서 나온 천사가 있었다. 신의 물건에 손댔으니 더 이상 천사라고 부를 수 없으나 악마가 되었다고 보기는 애매한 미결정의 존재이므로 이를 그저 한 인간, 원이라고 한다. 원은 천사에서 악마로 떨어지기 전에 거치게 마련인 어떤 상태를 가리킨다.

필멸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없앤다면 인간은 더 이상 늙음과 퇴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것을 지우는 순간 어떤일이 벌어질 것인지 원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사라지면 죽음이 사라지는 대신 생성도 사라진다. 그거야말로 원이 바라고, 어쩌면 인간도 바랄지 모르며, 만상에 대한 신의 무관심이 극대화된 상태에 해당할 것이었다.

신의 사전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지우자, 원의 의도대로 사람들은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홀로 있음으로써 자신에 대해 고찰하고 사유의 지평을 넓혀간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사람들은 그저,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있고 무언가와 함께함으로써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벗어난다.

신의 사전을 등에 진 원은, 이번에는 평지에 가까은 완만한 오르막길인데도 발걸음이 그전보다 더욱 처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저 느낌 탓이 아니라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생겨나는 외침들, 조통들, 통곡들, 웃음들 따위가 말로 정착되고 신의사전에 수록되는 중이며, 말이 불어난 사전은 점점무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은 이 우주 어딘가에 단 하나의 도시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나그 말씀으로 이루어진 곳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설령 신의 사전에 담긴말을 모두 털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인간의 말을 모두 없애버리면 어떨까. 사전의 무게가공기보다도 가벼워질 것이다. 거기에 새로이 말씀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말이 없어지면 인간은 모두없어질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다.
탯줄을 잃어버린 말들도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지, 원은 이제 알 것만 같다. 다음번 도시에서 원이 지우기로 한 말은 혐오다. 혐오가 사라진 도시에인간이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 무언가 남아 있기는 할 것인지 원은 그것이 궁금하다.

그리하여 나는 대체로 착하고 순진하며 바람직하고 건강한, 즉 총체적으로 무해한 얼굴을 지니게됩니다. 간혹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제공한 조각이아름답지 않은 모습일 때가 있습니다. 일그러지고뒤틀린 얼굴, 그러니까 내가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좋겠다고 바라면서 그들이 부여하는 이미지들은,
사실 자신들이 발로 걷어차거나 돌을 던지거나 물어뜯기에 적합한 형상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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