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내적인 중요성이 역사적 정점에 도달했다. 개인은 더 이상추상적 이상주의에서처럼 초월적 세계들의 담지자로서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자신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갖는다. 아니,
존재의 가치들은 이제 주관적 체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개인의 영혼에 대해 그것들이 갖는 의의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 타당성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138너의 율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방주(方舟)가 텅 비어있다면,
너의 춤보다 더 실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의 춤은 대상이 없으니 고갈되지 않을 것이고,
사막을 위한 춤, 너른 공간을 위한 춤이 될 것이다.
-앙리 프랑크

언제나여기서 희망은 삶에서 유리된 추상적인 예술 작품이 아니다. 삶에부딪쳐 좌초됨으로써 모독당하고 더럽혀지는 그런 예술 작품이 아닌것이다. 희망은 그 자체로서 삶의 한 부분이다. 희망은 삶에 달라붙어서 그리고 삶을 장식하는 가운데 삶을 지배하려 시도하는, 그렇지만 항상 삶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다. 이부단한 투쟁이 회상에서는 흥미롭고도 파악할 수 없는 길, 그렇지만체험되는 현재적 순간과 끊어질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런길로 변한다. 그리고 이 순간은 미끄러져 들어오고 미끄러져 나가는지속-이러한 지속의 정체(停滯)로서 그 순간은 의식적 직관의 순간을 제공하는데ㅡ으로 아주 풍부해서, 그 풍부함은 지나간 것과 잃어버린 것에도 전달되며, 심지어 그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나쳐버린 것을 체험의 가치로써 장식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하여 실패했던 것이 가치의 계기가 되고, 삶이 거부했던 것에 대한 생각과 체험이 삶의 충만함이 흘러나오는 듯 보이는 원천이 되는, 기이하고도 멜랑콜리한 역설적 사태가 생겨난다. 모든 의미 실현의 전적인 부재가형상화되어 있지만, 그 형상화는 진정한 삶의 총체성이 갖는 풍부하고 원환적인 충만성으로 고양되는 것이다.

환멸소설의 분위기 있는 의사(擬似) 서정성은, 회상을 통한 체험속에서 대상과 주관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데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즉 회상은 실제로 존재했던 그대로의 객관, 그리고 주관이 이상으로 열망했던 전범, 이 양자 사이에 있는 불일치를 현재적인 주관성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와 같은 형상화에 내재하는 신랄함과 불쾌함은 형상화된 내용의 암울함에서 유래한다기보다는 형식에서 그대로 방치된 불협화음에서 유래한다. 즉 체험의 대상은 극의 형식 법칙들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 반면, 그 대상을 체험하는 주관성은 서정적인 주관성인 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과 서정시 그리고 서사문학은 그 위계를 어떻게 생각하든-하나의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정 반, 합으로 존재하는 것이아니다. 그것들 각각은 서로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 형상화 방식이다. 따라서 각 형식의 긍정성이란 각기 고유한 구조적 법칙을 실현하는 것이다. 각각의 형식에서 기분으로서 발산되는 듯이 보이는 삶의 긍정은, 각 형식에 의해 요구된 불협화음의 해소, 각 형식에 의해창조된 고유한 실체의 긍정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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