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끄적거린 시들이 남아 있고 그것들은 따듯하
고 축축하고 별 볼 일 없을 테지만 내게는 반쯤 녹아버린
주석주전자가 남아 있고 술을 받을 순 없지만 그걸 바라
보는 내 행한 눈이 있고 그 속에 내가 있고 회색 담벼락
에 머리를 짓이긴 붉은 페인트 붓처럼 희끗해진 머리카
락을 헝클어놓은 네가 있고, 젖은 바지들의 옷. 아침의 기
슭에 면도한 얼굴로 말끔하게 희망이, 오후가 되면 거뭇
거뭇 올라오는 수염 같은 절망이 남아 있고 또다시 아침.
부서질 마음의 선박과 원자로들이, 잘 묶인 매듭처럼 반
드시 풀리는 나의 죽음이 남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