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종이를 들어 조심히 펼친다. 종이에 쓰인 몇마디 글자가 눈을 어지럽힌다. 많지 않은 글자들, 주인은 그 글씨체를 알고 있다. 언제나처럼 간격이 좁은 손님의 글씨체다. 주인의 얼굴이 바뀐다. 알 수 없을 정도, 눈치챌수 없을 정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 그의 어깨가 떨린다.
그러나 영원토록은 아니다.
한참을 자리에 서 있던 주인이 흩어진 몸을 다잡고 다시 청소를 시작한다.
주인은 창을 닦고 책들을 가지런히 매만진다. 그러다 바쁘던 손길이 느슨해진다. 서가 사이의 빈 공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손님의 손길이 스치고 간 자리에 남은, 딱 책한권만큼의 공간. 한동안 망설이던 주인은 그 공간을 여백으로 남기기로 한다. 그리고, 정리가 끝났다,라고 결론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