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현주는 커다란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반바지를입고 있었다. 종아리와 팔뚝에 모기에 물려 부은 자국이 여럿이었다. 그런 현주의 모습 위로 회색 백팩을 등에 딱 맞게 메고 씩씩한 걸음걸이로 걷던 어린 현주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말수는 적었지만 현주가 쓴 편지와 쪽지는 늘 미리의 마음을 두드렸다. 현주는 미리에게 밀려들었고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은 사실상 부당할 정도로 과분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리는 현주가 어렵기도 했다. 미리에게 관계란 매 순간 상대의 시선으로 자신을 심판하며 최대한 자기 자신의 황폐함을 철저하게 감춰야 하는 노동이었으니까.
현주의 사랑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했을까.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이켜 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일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오면서 누적되어온 피로였다. 진짜를 가질 자신이 없어서 늘 잃어도 상처 되지 않을 관계를 고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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