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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평점 :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시절. 내 짝은 문학소녀였다. 나 말고 내 짝...
단순히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짝이었던 것뿐 아니라 내내 붙어 다니며 정말 영혼까지도 붙어 있나 싶을 정도로 단짝이었던 그 친구는 늘 책을 들고 다녔고, 열심히 읽었고, 시를 외웠고, 좋은 글귀를 옮겨 적던 친구였고, 듀란듀란을 좋아했었다.
단짝이었음에도 나는 뭐 책도 안 들고 다녔고 (교과서만 들고 다님), 시는 전혀 안 외웠고 (교과서에 실린 시도 안 외움. --;;), 좋은 글귀를 베껴 적는 일도 물론 없었으며 듀란듀란이 먹는 것인 줄 알았던 그런 날라리였다.
1학기 때였나? 소풍 가서 각 반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에 다들 패션쇼를 하고 박남정이나 김완선, 이범학, 소방차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그런 장기자랑을 선보이던 그 시절, 우리 반 장기자랑 순서를 맡았던 친구들이 다른 반과 차별화된 것이 없다면서 갑자기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발생했다. 앞에서 장기자랑을 했던 반 아이들과 내용이며 여러 가지가 다 똑같아서 창피하다는 게 그 이유..
그때 하필 우리 반 반장이 날라리였던 나였던지라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암담해하던 와중에 내 짝이 용감하게 나섰다.
무대 한가운데 서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웠던 거다.
동급생들이 그 친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왁자하던 산비탈이 고요해졌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
그때의 전율이란...!
시 낭송이 무슨...?!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린 고작 중학 1학년생 들이었고 그 당시, 할 줄 아는 장기자랑이라곤 애들이 보여주는 이상한 패션쇼(?)나 가수들 춤 따라 하며 노래하기 정도였기 때문에 시 낭송은 그날의 백미였다. 우리 반이 일등 했음.
그 친구 덕에 별 헤는 밤도 외우고,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도 외우고... 버지니아 울프가 누군지는 몰랐어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이 말씀.
암튼 그랬던 그 친구가 아주 좋아하며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책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데미안.
데미안? 어쩐지 얼굴 창백한 백인 미소년이 연상되는 이름이랄까.
멋진 남자가 나오나 보다.. 하며 친구가 읽길래 나도 따라 읽었던 데미안. 그러나 읽다 보니 데미안이 주인공도 아니고 나로선 썩 매력이 안 느껴졌던 캐릭터. 무엇보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내 짝은 저리 좋아하는데 나는 읽고도 이해를 못 하다니.. 하는 감흥만을 안겨주었던 책.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은 적 있으니 내 생애 한 번 읽었으면 됐다며 그 후론 거들떠 본 적도 없던 책. 그러다 최근 다시 읽었다. 바로 그 데미안을...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이제는 그 책들도 다 읽었는데 데미안 이해 못할쏘냐 하며 도전정신(?)을 가지고 읽어내려간...
역시, 헤르만 헤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어.려.웠.다. -_-+ 잡힐 듯 말 듯, 알 듯 말 듯, 공감이 되었다 말았다...
물론 책은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다만 리뷰를 쓰는 게 어렵다. 이렇게 유명한 책을 두고 뭐라 보태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아..
꿈결 출판사에서 청소년들을 상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감동을 주는 명작들을 발간해 내는데 그 첫 번째 책이 이 데미안이라고 한다.
겉 띠지에는 다른 번역서들과 비교해보라는 안내도 적혀 있는데 원서는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인데다 다른 번역서와 비교까지 할 정성이며 안목이 내겐 없을 뿐이고.
어쨌거나 자신 있게 밝혔을 만큼 모두가 읽기에 무리 없이 번역서 특유의(?) 부자연스러움 없이 읽어갈 수 있는 듯 싶다.
그리고 이 책의 뒷면에는 데미안의 해제(解題)가 수록되어 있어서 헤세에 대하여, 그 시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제 읽고 데미안 본문을 읽고 다 읽은 후 다시 해제를 읽어보았다 나는.
그렇게 읽어도 좋고 그냥 데미안만 읽고 느껴도 좋고 다 좋겠지.
읽으며 생각했다. 지나온 시절들을.
나는 나를 잘 아는가, 나는 나를 만났는가, 나는 나를 잘 마주하고 있는가, 내 내면을 향한 성찰을 해 왔는가...
또는 나도 그런 프란츠 크로머와 같은 인물을 만난 적 있지 않았던가, 그런 시절을 지나오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살면서 그리고 생각하면서 마주친 내 삶 속의 베아트리체, 에바 부인, 피스토리우스는 어떤 상황 속의 누구였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마흔이 넘는 동안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을 찾고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 세계를 파괴하고 그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나 진지한 성찰을 해 본 적은 있는가 하는 생각도.
깊이와 표현이 다를 뿐,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가 싶다. 때론 사느라 바빠 잊고 살 때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삶이 나를 단정 짓고 나를 규제하기 전에 늘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바르게 알고, 그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삶을 살아내는 그래서 그렇게 싱클레어가 또 다른 자아 막스 데미안과의 합일을 보여주듯,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