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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선택 아로파 - 고장난 자본주의의 해법을 찾아 65,000km 길을 떠나다
SBS 최후의 제국 제작팀.홍기빈 지음 / 아로파 / 2014년 8월
평점 :
최후의 선택 아로파. 제목이 비장하다. 최후의 선택이라니. 그런데 그게 아로파라니.
대체 아로파가 뭔데...? 아로파라는게 뭔지 나만 몰랐나?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책 읽기.
그러나 사실 단순히 그런 제목 뿐이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설명이 없었다면.
그 설명은 이랬다. <아로파. 나눔과 공존의 가치. 고장난 자본주의의 해법을 찾아 65,000km 길을 떠나다.> 라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바로 공존이며 나눔이기에 관심이 갔다.
이 책은 SBS TV 특집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에서 방송했던 내용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작용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 다큐멘터리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묶어내 펴낸 책이라고 한다.
나는 그 방송을 못 보았는데 때때로 방송을 한 후 펴낸 책들을 보면 약간 무성의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이미 나온 방송분을 다시 글로 옮겨 적은 느낌. 그것은 방송을 챙겨보지 않았을때도 느껴질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감은 없었다. 오히려 화보처럼 보일 정도로 생생하고 마음이 가는 사진들이 덧붙여져 있어 눈길을 더 끌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사람의 본성이 정말 호모에코노미쿠스인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탐구로부터.
크게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미국과 중국, 파푸아뉴기니, 인도 라다크의 브록파 마을, 그리고 남태평양 아누타 섬주민의 삶을 살펴보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아로파의 정신(나눔과 연대의 원리)을 실천에 옮기는 스웨덴과 이탈리아 볼로냐의 협동조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중국을 여행하며 중국 현지 가이드로부터 들었던 인상깊은 이야기가 빈부의 극심한 격차였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에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던 시기였는데 그 후로 빈부의 격차가 굉장히 심해졌다고 했었다. 중국은 나라가 크고 사람이 많아 그런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그게 이미 십수년 전의 일인데도.
그 때 가이드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떤 사람은 이발비가 없어 길에서 몇백원에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길에 줄을 지어서서 길 위에서 깎고 있었다.) 반면 한끼 식사에 몇백만원을 지불하는 계층도 있다는 이야기였더랬다.
몇년간 살다 온 미국도 그렇다. 그런 나라는 그나마 사회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힘을 쏟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돈 20불을 구하려 무차별 총격을 가하며 사는 사람도 있고 극빈자 자녀 앞으로 국가에서 지급되는 돈과 음식 쿠폰을 받기 위해 아이를 더 많이 낳아 가난을 대물림 하는 사람들도 그 나라엔 많았다. 반면 부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상위 1%)임에도 전체 부의 42%를 독점하는 나라인 것.
자본주의의 부작용이랄까 자본주의에 대해 그렇게 보고, 그렇게 쓰고 있는데 보다 나은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는 과거에는 얼마나 좋은 제도였든 더 나은 길을 찾고 모색하고 전향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어쩌다 사회가 불평등을 야기하게 되었을까. 사람과 사람을 어쩌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구별하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는 경제학자와 전문가에게 이론과 학문적인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한 내용이 아닌 자본주의 그 이전, 인류가 생존해 온 삶의 원리에서 답을 찾고자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얻어낸 답이 태평양 오지 아누타 섬까지 가서 찾은 인류가 잃어버린 공존의 가치, "아로파" (auropa; 나눔과 공유)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그 아로파의 실천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에서도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스웨덴와 이탈리아 볼로냐의 아로파 정신을 실천에 옮기는 모습도 소개하고 있다.
부를 독점하는 계층이 과연 지금은 모두 누리고 행복한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하고 길게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천적 사랑, 나눔과 공유의 정신 아로파. 그것이 자본주의를 부작용을 바로잡을 유일한 대안은 아닐 수 있으나 공존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며 함께 사는 사회를 모색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