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다

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책 표지가 영 맘에 안 들었다.

이 책의 작가가 움베르토 에코가 아니었다면 책 표지의 디자인이나 글씨체 따위에는 아무런 신경도 안 쓰였으련만.

제목은 더 난해했다. <적을 만들다>.

적을 만들어?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게 아니고...?

그 아래엔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이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뭘까 이 조합은...

그래도 움베르토 에코는 그 이름 만으로도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의 난해함을 넘어 읽고 싶게 만드는 큰 힘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이라고는 장미의 이름 밖에 읽어본 적이 없지만 워낙 인상깊고 재미나게 읽었던 책인데다 그의 백과사전 같은 방대하고 깊이있는 지식에 놀라며 읽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한편으론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과 각오도 같이 갖고 읽기 시작한 책.

장미의 이름을 읽은지가 꽤 오래전 일이라 움베르토 에코는 이미 고인이 되었을 거라고 내멋대로 추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작이 나왔다는 사실은 진짜 놀랍고도 반가웠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그리고 미학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볼로냐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다.

책의 제목이 적을 만들다가 된 이유는 작가 자신이 머리말에서 곧장 밝히고 있었다. 원래는 이 책의 부제인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이라고 하려던 거였는데 편집자의 염려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첫번째 칼럼의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붙였다면서.

그러니까 이 책은 적을 만들다. 라는 제목으로 한권을 이루고 있지 않고 10년여 동안 에코가 각종 매체를 통해 발표했던 글 열 네 편을 모아 엮은 칼럼집이다.

적을 만들다, 절대와 상대, 불꽃의 아름다움, 보물찾기, 들끓는 기쁨, 천국 밖의 배아들, 오, 빅토르 위고! 과잉의 시학, 검열과 침묵, 상상 천문학, 속담 따라 살기, 나는 에드몽 당테스요!, 율리시스, 우린 그걸로 됐어요, 섬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 이렇게 열 네 편의 칼럼들인데 제목만 봐도 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별로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로 글을 썼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보물찾기라든가 속담 따라 살기 같은 평범(?)한 주제를 가지고 쓴 글도 풀어나가는 내용을 읽다보면 이 양반은 아는 게 너무 많아 탈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흥미롭고 재밌었다. 뭐랄까 내가 그동안 너무 뻔한 글만 읽어왔던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할까. 읽는 독자마저 더불어 깊은 탐구정신과 해박한 지식에의 동경을 갖게 해 주더랄까...

그러나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첫번째 칼럼이기도 한 적을 만들다는 한 문장 한 문장을 특별히 더 공들여 읽고 얼핏 이해가 잘 안되는 문장은 몇번씩 더 읽었음에도 부분적으로는 동의가 잘 안되는 내용들도 있었다. 내 개인적인 동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겠으나..

어쨌거나 그의 글은 다 읽고 나면 뭔가를 알게 되거나 지식을 더 갖추게 된다는 느낌보다는 생각할 것이 늘어난 기분이 든다. 그의 글을 통해 나의 사고를 확장하고 더 깊이 있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 역시도 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식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고백하고 있다고 하니 지식의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나보다며 스스로 위로..

호락호락하게 읽히지 않아서 하루 한편씩 읽겠다는 심정으로 읽었으나 솔직히 어려웠고 어려우면서도 재밌었고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