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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아일랜드 영국
정유선 지음 / 뮤진트리 / 2014년 12월
평점 :
지난 해 여름,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오랜시간 날아간 끝에 다다른 곳은 독일의 뮌헨. 하지만 거긴 런던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였을 뿐, 우리는 공항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곧장 영국의 히드로 공항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를 기다렸었다.
히드로 공항은 대단히 붐비는 바쁜 공항이었고 날씨와 교통(항공상황, 활주로 상황)을 고려하여 예정보다 훨씬 늦게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그 뿐 아니라 런던에 도착해서도 활주로가 붐비는 관계로 영국 상공을 다섯번도 넘게 선회한 후에야 착륙 허가를 받고 간신히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비행기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본 후에야 내릴 수 있었고 8월에 느낀 런던의 첫 느낌은 "대단히 스산하며 춥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준 끝에 얼굴을 보여주었는데 그만큼의 기대감도 증폭시켜 주었더랬다.
기다려야 했던 많은 시간동안 나는 내가 아는 영국에 대해, 그러니까 영국에 대해 내가 아는 것 모두를 떠올려 보았는데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내가 영국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많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많은 것 중에 문학작품과 작가가 다수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문학과 예술의 힘은 그래서 참 크고 놀라운 것이 아닌가 싶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 대해 그 나라를 가 보지 않고도 이해하고 느껴볼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갖고 있으니.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이기도 하고 소개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정신에 영향을 미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지배하는 영향력까지 갖는 것이니.
그러나 나의 영국 여행은 달랑 하루였다. 애초에 유럽의 6개국을 오가는 날까지 포함하여 12일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인거지. 영국에서 박물관 한군데만 12일을 보라고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아쉬움이 가득한데 어쩔도리가 없었다.
다만 우리의 여행 콘셉트는 "종교개혁지 성지순례"였기 때문에 그 주제에 충실하게 다녔다.
그러면서 느끼길 다른 주제를 가지고 찾으면 또 다른 재미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의 다양한 콘셉트를 가지고 말이다. 그땐 많은 나라를 훑는 듯한 여행이 아니라 한군데를 가더라도 보다 더 깊이있게 보고 느낄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의 작가는 그걸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어린 딸아이와 함께였다.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거나 홀로 어떤 컨셉트를 가지고 하는 여행이었다면 보다 쉬웠(?)으련만 여섯살 아이와 함께 아일랜드와 영국의 한달여, 동화와 동화작가들을 쫓아 떠난 여행이라니 그 여정이 만만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도전이 만만치 않아 쉽게 누구나 할 수 없으면서도 다들 한번쯤은 꿈꿔보는 일. 게다가 여행 마지막 일정에는 저자의 친정 어머니와도 동행을 하여 3대가 함께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참 부러웠다.
아일랜드에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 그리고 잉글랜드를 돌며 오스카 와일드, 조너선 스위프트, 제임스 조이스, 예이츠, 로버트 스티븐슨, 조앤 K. 롤링, 제임스 매튜 베리, 월터 스콧, 루이스 캐럴, 하워드 파일, 셰익스피어 등등 그들의 작품과 그들을 만나는 여정.
책을 읽어가며 나도 다시금 어린시절 접했던 그들의 작품과 동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의 어린 딸은 그 동화를 직접 만나는 시간을 보냈을테고, 저자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만났을 것 같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유년시절의 재경험이기도 하다. 잊고 있었던 시절을 아이를 매개로 다시 기억하며 아이에게는 한층 더 나아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주는 엄마로서의 역할과 경험은 의미있고 행복한 일이다. 생각만큼 간단하고 낭만적이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들여 여행을 하였으니 꼭 뭔가를 배워야만 하고 그러기엔 아이가 너무 어린거 아닌가 하는 계산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책을 다 읽어갈 즈음 해보았다. 비록 아이가 어른만큼, 그 여행에 들인 비용만큼의 결과를 얻지 않을지라도 함께 하는 그 시간의 귀함, 그 자체의 중요함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어리면 어차피 다 잊어버릴텐데 하는 계산과 어린 아이와의 동행이 가져다 줄 불편을 더 크게 생각하느라 여태 아무것도 못해왔으니...
삽입된 사진들을 통해 엿보는 그곳, 그리고 저자가 인상깊게 여겨 인용한 작품 속 글귀들이 나도 또한 좋아서 베껴적어 놓았던 부분들과 같아 반가운 마음도 가져보며 읽었다.
길을 잃은 앨리스가 나무 위에 있는 체샤 고양이를 보며 물었다.
"내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해줄래?"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지."
"어디든 별로 상관없는데..."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가든 무슨 문제가 되겠어."
우리 삶도 그렇지 싶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걸을만치 걷다보면 어디든 가서 닿기 마련이다...
여행 중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엄마인 저자의 질문에 저자의 딸은 "오늘이 가장 좋았어." 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을 가장 좋게 여기며 살아가는 지혜가 나에게도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