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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일처럼 여행처럼 - KBS 김재원 아나운서가 히말라야에서 만난 삶의 민낯
김재원 지음 / 푸르메 / 2015년 1월
평점 :
힘겹게 계단을 오르던 어느 할머님께서 숨 가빠 하시며 "아이고 죽겠네"를 연발하셨다.
그 곁에서 손을 잡아 주시던 친구분 같아 보이는 할머님께서 "죽긴 왜 죽어. 숨만 잘 쉬면 살아." 그러신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구나.
신께서 우릴 창조하셨을때도 지으신 후에 (생기)숨을 불어 넣으셨고, 데려 가실 때도 숨을 거두어 가시는거지 참...
라다크. 내겐 참 생소한 지역이름이었다. 대체 어딘데 내가 좋아하는 김재원 아나운서가 다녀와서 책을 냈을까.
하지만 라다크에 대한 궁금증은 사실 별로 없었다. 오직 김재원 아나운서가 글을 썼다는 사실 만으로 집어 들고 읽어나갔다.
읽는 내내 읽고, 덮고, 생각하고, 다시 펼쳐들고 읽고, 다시 덮고,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쉽게 썼는데 글은 깊고 따뜻했다. 그가 쓴 말처럼 한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틀림없다.
그의 말처럼 글에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기 때문이고 덕분에 저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라다크는 인도 히말라야에 있는 고지대라고 한다. 라다크라는 뜻도 '높은 고개들의 땅'을 뜻한다고 한다.
해발 3500미터에서 출발하여 해발고도 5000미터 이상되는 지역에서 산악 자전거 트랙킹을 하고 돌아왔다.
2014년,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20년지기 김홍성 아나운서와 함께 다녀온 것이란다.
일처럼, 여행처럼.... 하늘 가까이 있는 라다크에.
대학 때 제주도에 갔다가 한라산을 오른 적 있다. 무척 완만한 코스여서 힘들 것은 전혀 없었는데 다만 몹시 긴 코스였다.
'별 것 아니네, 뒷산 오르는 것보다 쉽잖아' 하며 한라산을 정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씩씩하게 걸었는데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얼마나 남았나요?" 오르는 동안 마주친 하산길에 있는 등산객들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다들 한결같은 대답을 해 주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되요. 30분 남았어요. 힘내요!"
순진하게도 정말 30분이면 갈 거라고 여기고 산을 올랐다. 하지만 오르고 또 올라도, 30분씩 세번, 네번씩 보내도 여전히 정상이 아니었다. 나중엔 온 만큼의 시간과 공이 아까워 뒤돌아서지 못하고 올랐다.
내가 왜 산을 오르고 있는거지? 산을 끝까지 올라야만 한라산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 그만 내려갈까?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가 중요하랴...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함께 독려하며 올랐던 친구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하지만 이내 말은 사라져갔고 나중엔 내가 왜 걷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어졌다.
그렇게 산을 끝까지 올랐고 다시 길고 긴 하산길을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오는 동안 많은 생각들을 했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중엔 그냥 "나" 자신만 남았다. 걷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무아지경에 빠진 그냥 현재의 나 자체에만.
여행이 주는 느낌과 경험과 깨달음 배움 같은 건 그런 것들 같다. 다르게 나를 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짧은 동안이나마 그들과 삶을 나누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만, 현재의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 되돌아 왔을 때는 여행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나로 살아가게 되고. 그게 "일"로써 가는 여행이더라도.
히말라야 라다크 산악지대를 자전거 트랙킹을 한다는 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일까.
2000미터도 안되는 한라산을 걸어서 오르고 내리는 일과는 비교도 안되는 일일텐데.
그들이 다녀온 곳은 가만가만 다녀도 숨 가쁜 고산지대인데 그런 곳을 자전거 트랙킹이라니...
국경분쟁지역이라 가져간 위성전화도 안되고 무전기도 못 쓰는 그런 형편에 불편함만 가득했으련만 그들은 그곳에서 '몸이 불편한 마음의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자신만을 돌아보는 성찰보다는 있을지도 모를 갈등에 양보할 마음을 기꺼이 갖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생각하고 배우며 또한 바쁜 일상 속에서 혹은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담아 두었던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저자는 여행속 이야기들을 참으로 소상히 기록해 놓았고 그래서 그 방송을 본 적 없고 그곳에 함께 가지도 않은 나조차 마치 함께 여행을 다녀온 듯이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아픈 기억들도 드러내 보여준다. 내 놓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일거다.
어떤 아픈 기억은 전혀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온다. 여전히 이해는 안되고 사실이 아니길 원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외롭고 아픈 시간들을 홀로 견디곤 하는지...
저자도 똑같이 느꼈나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영역 밖에 있는 태풍과 비바람은 그저 맞고 흘려보낼 수 밖에 없다. 내 인생에 태양이 비추지 않아도 삶은 살아져야 한다."
1부터 100까지.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0. 이 책은 그렇게 나뉘어 글이 쓰여 있다. 매겨진 숫자마다 다른 장면,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지듯 하는가 하면 새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재미있고 뭉클하고 맑다.
자전거도 못타고 불편한 행복 같은 것에 관대하지도 않고 라다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대체 이미 방송까지 된 보름간의 라다크 다녀온 이야기가 무에 특별할 것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었고 그 경험을 나누어 진 나는 또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숨 쉬는 순간순간 현재의 나에 최선을 다하며 일처럼 여행처럼 매일을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