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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ㅣ 위대한 클래식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차은화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5년 3월
평점 :
어머니는 6남매 중 맏이셨는데 어렵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꽤 책임감을 크게 느끼며 사셨던 것 같다.
큰 딸이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뭐든 새 것으로 구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용돈은 고스란히 모아 두었다가 부모님께 돌려 드리고 엄마 스스로 벌어서 쓰시는가 하면 책 한 권도 사 보질 않고 빌려다 보셨단다.
그러다 다 자라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시던 엄마께서, 서울에서 대학 다니느라 자취하고 있던 외삼촌과 이모들 자취방에 가보니 방 전체가 책으로 뒤덮혀 있더라나. 동생들 생각해서 새 책 한 번 사 읽은 적 없던 엄마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셨던 듯. 아낌없이 마음껏 책을 사서 쌓아놓고 보는 동생들이 철 없게 보이기도 하셨던 것 같고... 그러면서도 엄마는 나중에 은퇴하셨을 때 받은 퇴직금의 일부를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셨었다. 나는 못 그럴 듯..
암튼 그렇게 절약이 몸에 밴 엄마께선 지금껏 그런식으로 사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불 꺼진 다용도실에서 손빨래 하고 계신 엄마를 보곤 했다. 부엌에는 밥이 되고 있고 엄마는 언제나처럼 불을 켜지도 않은 채로 세탁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탁기란 이불 같은 거 빨 때만 쓰는 물건인 줄 알았다. 엄마랑 사는 동안 세탁기 돌아가는 걸 몇번이나 봤던가) 대부분의 세탁물들은 다 손으로 직접 빨아 입히고 쓰셨더랬다. 엄만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었음에도 이른 아침 일어나 신문 읽고 밥 짓고 우리들 도시락 싸고 청소하고 빨래까지 해서 널어놓으신 후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셨던 것. 나로서는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아봐도 엄마의 백만분의 일도 흉내내기 어렵다.
다만 그렇게 아끼며 사시다보니 우리에게도 저절로 그런 습관이 대물려지긴 했다. 종이 한 장, 휴지 한 장도 허투루 쓰는 걸 죄악시 하는 엄마 덕분에 아주 캄캄해지기 전엔 불도 켜 본 일이 없고, 쓰는 물도 수없이 재활용해가며 쓰고, 휴지 한 장도 잘라가며 써야 했던 것이다.
책 역시 쉽게 사 보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서점에 데리고 가셔서 직접 고르게 하셨고 그렇게 한 권을 사면 마르고 닳도록 읽게 하셨다.
전집으로 들여놓고 골라 읽는 재미 같은 건 없었다는 것.
그런데 어느 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보니 곁에 아빠가 계셨다. 책장을 새로 놓고 그 책장에 100권의 새 책들을 순서대로 꼽고 계셨던 것이다. 당연히 흥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벌떡 일어나 웬 책인가 여쭤보니 그냥 웃기만 하셨다. 잘 읽어봐라 하시며.
알고보니 아는 분이 책 외판원을 하시게 되면서 아빠께서 그분께 그 책들을 사 주셨던 거였다.
어쨌거나 한권을 사서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고나서야 다른 책을 사 볼 수 있었던 내게 책 100권이 한꺼번에 생겼으니 부자가 된 기분.
그 100권은 좋은 책을 한 권씩 사서 읽어가며 책장을 채우는 게 더 낫다는 엄마의 예상을 깨고 내 어린 시절의 삶을 대단히 윤택하게 해 주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100권 안에 보물섬도 있었다.
보물섬은 워낙 유명하여 사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버전으로도 여러번 읽은 기억이 있다. "꿈과 모험이 가득한"이라는 말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이 보물섬 아닐까 싶다. 피터팬, 보물섬... 이런 책들이 내겐 그런 느낌을 주는데 영국 작가들이 쓴 책이 주로 그렇더라.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 환타지한 요소가 가득하고 뭐 그런. 영화면 영화, 소설이면 소설이 다 아, 내가 영화를 봤다, 소설을 읽었다. 하는 느낌을 강하게 주더랄까. 가깝게는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도 그렇고 잭과 콩나무,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올리버 트위스트, 로빈 후드, 원탁의 기사 같은 것들.
아이들이 어릴 땐 유쾌하고 즐겁고 명랑하며 교훈적인 이야기들 혹은 학습과 연계된 책들 보여주느라 바빴는데 나는 아이들 나이 때 뭘 읽었더라? 하고 기억을 되돌리다가 저 책들 생각이 났다. 그리고 정말 흠뻑 빠져들어 읽곤 했던 그 이야기들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읽게 해 주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용하우스에서 보물섬이 나왔다. 80일간의 세계일주와 더불어 이 책 두 권은 출간이 되었고 발간 예정인 책들로는 아이반호, 삼총사, 로비슨 크루소, 지구 속 여행 등이 있다고 한다.
제목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무척 유명한 고전들이라 그림책으로부터 두꺼운 책으로까지 다양하게 다들 읽었음직한 이야기들.
크레용하우스에서 나온 보물섬은 하드커버로 되어 있고 책 갈피 할 수 있는 가름끈도 달려 있어서 책 읽다 덮혀도 문제없다.
사이사이 삽화들이 컬러로 삽입되어 있고 256페이지로 되어 있어 중,고학년의 초등생이 읽기에 딱 적합하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갑자기 해적놀이가 하고 싶어지고 난데없이 보물지도를 그려 종이를 일부러 구긴 후 오래된 종이처럼 보이게 만드는가 하면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보물을 찾아나서는 상상을 하게 되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눈부신 보물상자란 과연 뭘까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그리고 주변인들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꺼진 불 다시 보듯 사람도 다시 보게 되더라나 뭐라나.. 이 책에서는 표지에 실버를 꽤 음흉한 모습으로 묘사해 놓았는데 정작 나는 책을 읽다 실버에게 정이 들었는지 괜한 연민을 느끼게 되더란. 앵무새가 예전처럼 신기하게만 보이지는 않게 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앵무새 한 마리 키우고 싶어지게 되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어딘가에 꼭 보물섬과 보물상자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책이면서 동시에 다 허황되다는 생각, 함부로 그런 걸 탐내면 안된다는 그런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워주기에 알맞은 책. 보물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