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한국사 - 고대에서 현대까지 북쪽의 역사
여호규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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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 한국사 관련 책을 종종 읽으면서 엄마도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책의 제목인 절반의 한국사라는 말이 통일이 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지만 역사를 공부한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북쪽의 역사 이야기는 한국사를 보는 시야를 넓혀 주었다.

절반의 한국사는 그동안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북쪽 땅 중심으로 한국사를 엮은 책이다.
10명의 전문 학자들이 참여해서 집필한, 최초로 시도되는 북방 중심의 한국사라고 볼 수 있다.
사건, 시간, 공간 등 어느 편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서술할 것인지 방법이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이 책은 한반도 북쪽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건 자주 등장하는 지도였다.
지도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 중에 하나인데 지도를 통해 최초의 국가 고조선, 만주 지역까지 세력을 떨쳤던 고구려,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 마지막 왕조 조선의 건국자들이 활약한 광활한 땅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함을 느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지만 만약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통일을 했더라면, 만약 발해가 오래도록 이어가며 드넓은 땅을 유지했더라면 등의 다양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역사를 서술하기에 앞서 개괄적으로 북쪽의 위치적 상황과 자연환경을 알아본 후 본격적인 서술에 들어갔고 전공 역사학자들의 글을 시대순으로 배열해 놓아서 북쪽 땅에서 이루어졌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기 좋았다.
북쪽 땅은 대륙에서 가장 먼저 침입을 받은 곳이기도 했지만 가장 먼저 신문물이 들어온 곳이기도 했다.
최초의 나라 고조선이 일어났고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던 고구려가 흥했던 곳이며 고구려 옛 땅에 발해가 세워져 해동성국의 영화를 누렸다.
이후 우리의 국토는 발해의 멸망으로 쪼그라들었지만 고려는 거란, 여진, 몽골과 전쟁을 하며 자주적 국가의 면모를 지켜나갔고 북녘땅 출신 세력이 조선 건국을 이끌며 4군 6진의 개척으로 현재의 영토가 형성되었다.

조선 후기 평안도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세도 정치 아래 수탈에 허덕이는 농민들의 의식 성장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자연재해와 부패한 관리와 토호 세력의 수탈과 가혹한 통치 때문에 북쪽 땅에서 살기 어려워진 한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이러한 문제로 청과의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한인들이 많이 이주한 북간도는 국외 독립운동 기지가 가장 많이 세워진 지역이며 대한독립군, 대한신민회, 의군부, 대한정의군정사, 북로군정서 등의 활약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20세기 한국의 엘리트를 출신 지역별로 분류해서 조사해 보면 평안도 출신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이 제법 많았다.
항일운동을 이끈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양기탁, 유일한, 해방 직후 한국 교육계를 주도한 유명 대학의 총장들, 예술 분야의 이광수, 주요한, 김동인, 김소월, 주요섭, 계용묵, 정비석, 황순원, 안익태, 윤심덕, 김동진 이중섭, 손기정 등이 있으며 통일교 교주인 문선명도 평안도 출신이라고 한다.
1898년 한국 장로교 전체 교인 7,500여 명 가운데 평안도와 황해도 교인이 79.3%를 차지할 정도로 평안도가 한국 기독교의 본고장이었다니 놀라웠다.
평안도에서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청일 전쟁의 격전지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절대자에 의존하려는 심리가 강했고,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 운동이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교세 확장을 통해 친미 성향의 엘리트를 많이 배출하게 되는데 그들은 평안도 지역은 조선 시대에 정치적으로 지역 차별을 많이 받은 거부감 때문에 법학, 정치학보다는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 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신학, 교육학, 이·공학 등의 근대적 전공 분야를 선호했다.
북쪽 정권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대 내각의 핵심을 이룬 사람들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 세력이었고 김일성의 가계가 기독교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독립운동 가문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북방이라고 했을 때 광활한 영토를 호령했던 호방하고 장대한 기개, 자유분방하면서도 강직한 기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또한 간도와 두만강, 압록강을 중심으로 한 만주 지역 일부가 20세기 초까지 실질적인 연고가 있는 우리 민족의 생활 공간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피폐한 삶,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의 비극이 서린 현장으로서의 슬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북방 땅을 노래한 북쪽 출신 시인이 여럿 있는데 김동환은 '국경의 밤'에서 장엄한 서사를 품은 생명의 공간으로 묘사했고 백석은 고향 마을에 대한 기억을 이상 공간으로 다루었으며 이용악은 '오랑캐꽃'에서 연이은 북방의 비극과 시련, 슬픔을 보여주었다.
북간도 한인 마을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그의 시에서 자기를 성찰하며 절대적 양심을 지향했다.
처음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넘치는 기개로 신나게 달려갔다가 읽다 보면 아련한 슬픔이 맴돌면서 가슴 한편이 시려지는 북쪽의 역사였다.

-이 후기는 해당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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