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를 삭제할까요? 도넛문고 10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표지를 보면 파란색 배경에 두 명의 아이가 보인다. 유령처럼 뭔가 뒤집에 쓴 아이와 이상한 암호같은 것이 적힌 왠지 고대 바위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위에 앉아 있는 소년이 보인다. 그리고 지직 거리는 듯한 디자인으로 '이 아이를 삭제할까요?'라는 글씨가 보인다.

제목이 질문인 경우 그 저 쓰여 있는 글씨지만, 읽는 독자는 질문처럼 읽게 되어 반사적으로 무언가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작부터 무언가 적극적 개입을 하는 것 같다. 이 아이가 표지 속 누구를 가리키는 지 몰라도 왠지 둘 중 한명을 삭제할건데, 독자- 자네가 답해보세. 그런 느낌이든다.

읽는 독자는 글을 볼 뿐 무엇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왠지 선택권이나 주도성을 지니게 되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느낌은 관심을 끌기 위한 제목 전략으로만 남지 않는다. 책의 전반적인 주제와 스토리와도 연결되어진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을 '아이들에 관하여', '부모들에 관하여', '교사들에 관하여', '파란 나라에 관하여'로 나누어 적으려 한다.





* 아이들에 관하여.

아이들은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 그리고 어른들이 감추어 놓은 진실 가운데 그런 의무 가운데 조작된 환경과 기억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저 살아가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문'이건 진실을 마주하고자 하는 시작이되었다.

물론 이러한 의문을 마주하고 진실을 헤쳐나가는 역할은 주인공인 소년 탐정 한파랑이다. 그런데 파랑이만 이런 의문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였던, 혹은 여전히 아이인, 또는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교사 미로샘과 또 다른 친구가 조력자로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교사인 미로샘이 어른의 등장이 큰 요소로 영향을 준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다. 청소년 문학이고 주인공인 아이들이 존재를 건 모험을 청소년인 파랑이와 친구들이 풀어갔다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청소년 문학에 종종 등장하기도 하는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한계점 역할이기도 해서 특별히 아쉬운 부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미스터리 적 요소 아직 이 소설에서 다 풀어지지 않은 세계관의 공간적 부분에 해당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서 2탄이 나온다면 중요한 시작이 되어줄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간 것 같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면, 존재에 대한 고민 그리고 파란나라에 대한 진실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아이의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나라와 어른들의 상처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면 한참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오히려 아이의 시선으로 새롭게 진실-탐정-모험으로 구성한 부분이 스토리에 흥미와 궁금증을 더하고 몰입력있게 읽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단순히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기보다 주인공인 아이의 시선을 따라 독자인 청소년 들이 읽어가는 과정의 시선이 연결되어진다.

또한, 꿈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이 선생님이란.. 의외였다. 아이들이 꿈이 선생님이었던 아주 오래전의 시절이 있기는 한데, 점점 변하면서 치킨집 사장님, 피시방 사장님, 건물주 그러나 공문원이 등장했다가 다시 연예인, 유튜버, 돈 많은 백수 등이 등장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현실적인 직업이나 과를 고려하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 모습은 부모들이 원하는 환경적 요소와 기억, 추억을 가지고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의 원하는 대로 꿈꾸며 자라나 부모의 만족대로 삶을 살아가는 겉모습인간, 그저 아주 섬세하게 잘 발달하여 만들어진 기계와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장래 희망 분류표에 없는 '기타'에 속하는 꿈을 꾸는 파랑이의 존재가, 그러한 꿈 부터 어쩌면 그러한 과정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나아갈 기반적 요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파랑이, 중점이 되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파랑이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는 것은 세림이었다. 아니, 세림이 뿐만 아니라 괜찮은 척 하고 있을 많은 아이들. 엄마의 옷을 입고 몰래 거닐어 보는 등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상처를 마주할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눈에 보이는 상처와 다르다. 밴드를 붙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상처를 가리면 눈에 보이는 상처와 달리 나아지지 않는다. 과연, 이 아이들은 어떠한 삶으로 나아갈까.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마주할까. 그 아이들의 과정이 그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겠지만, 나아가는 걸음을 응원한다.



*부모들에 관하여.

파란나라는 '아이들 키우는데 최적인 마을'이라고 한다. 그럼 초점이 아이들에게 있을까, 부모에게 있을까? 개인적으로 '부모'라고 생각한다. '키우는데 최적'이기 때문이다.

파랑이가 아빠에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뭔데요?"라고 물었었다. 파랑이의 아빠는 그 질문에 "사람이지. 너희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대답은 "사람이지."에서 끝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지"에 해당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닌 부모들이었다. 즉, "사람이지. 부모들이란다" - 그리고 뒤의 말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부모들이 너희를 사람이라고 하니 너희도 사람이어야 한다. - 그래서 "너희란다"가 따라 붙은 것 같다.

엄마가 진짜 '파랑이'를 한 사람으로, 살아 있는 자신의 아들로서 생각했다면 '초기화' 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마치 '엄마'와 반대되어 파랑이의 편에 있는 존재처럼 그려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무책임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어른이었다. '사실 우리는 부모 놀이를 하고 있잖습니다.'라는 대사가 더 와닿는 행동이랄까. 초기화 된 상황에서 아이들을 복구한다. 그런데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다른 아이들은 부모를 잃더라도 나는 내 아이를 잠시라고 보고 싶은 욕심이었을까? 혹은 그러한 일을 막지 못했던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 내고 싶은 행동이었을까? 덩그러니 남겨질 아이들을 생각해 보기는 했을까? 그 무엇보다 클 갑작스러운 부모와의 이별 가운데 아이들의 혼란과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을까? 소설에서는 어떻게 풀어갈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상처는 현실에서는 결코 간단히 풀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아무리 매꾸려도 매꿔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인정하기 싫어 이러한 온새미로를 만들었고, 그 가운데 억지로 웃으려 아이들을 위한다,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표현을 붙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의 기반에는 우리 아이는 이미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죽어있는 존재이며 프로그램이며 초기화 할 수 있고 기억도 조작할 수 있다. 이미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곳 온새미로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은 그저 그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상처로서 얼룩져 그 상처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 자신이 지금 그 상처를 치료하고 돌봐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다른 대체적 방식으로 자신을 위한 구멍을 파고 있고, 그곳을 온새미로, 파란나라라는 이름을 붙인 모습이었다.

파랑이가 왜 자신은 동생이 없는지를 묻는 물음은 그러한 현실이 반영된 (물론,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든 의문과도 연결되어지지만) 질문이라는 생각이든다. 그 상처 가운데 시리고 아린 상처를 인정하지도 돌보지도 치료를 받지고 않았기에 죽은 파랑이, 너와 함께 그 아픔과 슬픔 가운데도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을 인위적으로 반영하는 욕심과 흔들리고 잠겨버린 정서적 고통의 모습이었다.

"사랑해, 아가야. 사랑해" 부모들이 사랑하는 이는 커가는 아이들이 아닐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어린 모습으로 그리고 슬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너무나 감당하기 벅찬, 아리고 시리고 쓰러질 듯 아픈 그 마음으로 이별을 해야 했던, 그 어리 아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쉽게 없애고 자신이 원하는 아이를 다시금 살아있게 한다. 아니, 자신을 그 죽음의 시간 가운데,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가운데 갇히게한다.


*교사들에 관하여.

도서에는 세 분의 선생님이 나온다. 한 분은 파랑이가 자신의 꿈이 탐정이라는 것을 싲가으로 이 스토리가 진행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고 다른 한 분은 스토리 전반적인 부분에 있어 영향력을 가지면서도 인물의 한계점이 드러나기도 하는 역할, 그리고 아직 풀어지지 않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마지막 한 분은 어쩌면 이 도서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이자 설정이지만 진짜 삶을 삶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이었다.

가장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분은 수학 선생님 미로 샘이었다. "파랑이 어머니, 파랑이를 저처럼 키우실 건가요? 저처럼 불완전한 어른으로 키우고 싶으세요? 파랑이한테 그냥 진실을 알려 주세요. 파랑이는 강한 아이에요."라는 대사. 하지만, 결국 '권리'를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적 착각으로 사건을 전 뒤집듯이 뒤집는 분.

그런데, 그러한 모습과 태도는 미로 샘의 교장 선생님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작가님은 이러한 부분에서 폭력성이 있었다는 표현을 말씀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폭력적이라고 느꼈다기 보다는 다른 듯한 미로샘과 교장선생님은 결국 부모와 자식으로 그 태도가 닮았다는 연결고리를 넣은 부분처럼 느껴졌고, 미로 샘의 선택은 파랑이를 강한 아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좋은 선택은 어른이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고 보여졌다. 그리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 자신은 삭제 되기를 바라고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부모의 존재 여부로 연결지어 말하는 대사를 읽으며 좋은 말로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는 파란 라나의 어른들과 닮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금 삶의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며 삶을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반대로 언급하는 것 같았다.


*파란 나라에 관하여.

파란나라 노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전 속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번 가 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파란 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그런 나라여야 했다. 동화책을 보면 아이와 함께 읽던 시절이 생각나고, 텔레비전을 보며 아이와 보았던 시간이 생각나고, 꿈을 꾸면 아이가 나오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아이의 얼굴이 아른 거릴 것이다. 언제나 엄마와 아빠의 모습과 마음에 아이가 잇다. 그렇지만 아무리 보아도 아이는 없다.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보고 싶다. 다시 한번 아이를 만나고 싶고, 너와 함께 사랑하며 부모로서 살아가고 싶다. 그렇지만 분명한 거, 생각만 해야 한다. 파란 나라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노래 가사처럼 생각만 하는 나라여야 했다.

책을 읽고 나니,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자연스레 상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 생각난다. 그들의 온새미로는 얼마나 계속 될까? 혹은 얼마나 반복되어질까? 파랑이가 파랑이라면, 이 과정은 또 다시 반복되어질 것이다. '온새미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아이를 위한 것도 아닌 부모를 위한 것도 아닌 어쩌면 인정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 안으로 파고든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새미로'의 뜻은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본래의 모습 그대로'다. 이러한 뜻 처럼, 온새미로라는 그곳이 기억을 지우고 조작하고 없애며 그들을 위한다 말하는 거짓으로 자신들의 상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떠난 이를 보내지 못해 같이 있으려는 욕심으로 구축하는 세계가 아닌, 아픔을 인정하며 그 아픔도 아이들도 부모들도 본래의 모습 그대로 그들의 삶을 인정하며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을 들으며 리뷰를 쓰는데, 노래의 가사가 이 도서와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추억 가운데 그립고 보고 싶고 미안하고 고맙고 아프고 슬프고 그럼에도 너오 함께한 시간 가운데 웃기도 하고, 하지만 그 시간과 아픔 속에 자기 자신을 그리고 타인도 가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워할거고 고마웠지만, 이제는 그 시간과 아픔을 보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북토크 후기.

이 도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건, 다른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으로 나오는 도서들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올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님의 북토크도 진행된다고 하여 참여하였다.

북토크에서 '파란나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낱말은 아마도 '손' 일 것이다. 줌으로 이루어진 과정에서 조용히 들으려 했는데, 손을 들어야 했다. 파란나라는 '손에 주세요' 라면, 북토크는 '손을 드세요' 라는 생각도 들고.. 조용히 있으려 했는데, 편집자님과 작가님이 힘들어보이셔서 몇번 손을 들고 이것저것 나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다른 분들도 점점 자신의 생각과 궁금했던 부분 등을 말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들으며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렇게 서로의 생각과 기대점, 시선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다른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라인 도서들이 괜찮은데, 마지막 3분의 2 지점을 넘어가며 사건이 해결되어지는 부분에서 종종 급마무리 혹은 갈등에 비해 아쉬운 마무리가 있었는데, 이번 도서는 그러한 측면에서는 오히려 사건 전개의 흐름과 스토리의 진행이 준비되어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무리 부분에서는 서로의 생각과 이러한 방향이 최선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했지만, 개인적을 책을 읽었을 때 다른 도서들보다 마무리까지, 힘을 다해 고민하며 스토리를 완성한 도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부분에서 작가님이 말하는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이번 도서는 플롯을 다 정하고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스터리적 요소와 스토리 흐름에서 급마무리가 아닌 탄탄히 고려한 흐름 진행이라는 것이 느껴졌던 것 같다.

이 도서는 중점을 두어 보는 부분에 따라 나누어지는 시선도 많고 논하게 되는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데 '청소년 도서'라는 점에서 청소년들과 이 도서를 어떻게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메타버스, 가상 공간 등이 생각나는 배경적 요소를 활용해 흥미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이들이 아픔을 지니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러한 이들의 마음에 필요한 위로 혹은 마음의 약을 만들어보는 과정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삶'에 초점을 두고 나누고 싶다. 죽은 아이들이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삶이 주어졌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것은 물론 힘들다. 단순하지 않고 형제, 부모 등으로 그러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선은 상처와 죽음보다도 살아가는 삶에 대해 그 삶을 살아갈 힘과 노력하며 나아갈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누고 싶다.

그리고 다른 어떠한 측면으로 수업이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누가 잘못했는지를 잘, 잘못을 가리는 시선으로는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어린 아이를 잃은 그리고 그 아픔이 해결되지 않고 그 상처를 인정하지 못해 자신의 아픔 안으로 파고든 모습인 온새미로를 만든 어른들이나 갑작스럽게 태어나 자신의 죽음을 알게되고 거짓 가운데 살았음을 알게되어진 아이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러한 상처를 인정할 시간조차 가지기 전에 갑작스레 부모를 잃어버리게 된 아이들.

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시선은 잘못이 아니라 아픔이 있음을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그러한 과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라는 시선이나 '너 힘들구나 아프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래 너의 인권-생각-취향을 존중할게'라는 왜 그렇게 아프고 힘든지 바라보는 것이 아닌 좋은 말인 척 포장하는 무책임적 회피 시선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 전의 <소녀 A 중도 하차합니다>가 많이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그런데, 나는 <소녀 A 중도 하차합니다>라는 작품의 이름을 알고는 잇었지만 읽지는 않았었다. 서평과 후기를 남기는 분들께 <소녀 A 중도 하차합니다>도 보내준다고 한다. 음, 개인적으로 <소녀 A 중도 하차합니다>를 받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리뷰를 남기고 있다.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받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