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도 이뤄냈으니까
허우령 지음 / 부크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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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허우령 앵커를 아시나요? 아직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어쩌면 어른들 보다도 학새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 왜 일까? 유튜브 채널 <우령의 유디오>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유튜브를 많이 그리고 자주 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중에서도 초등학생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바로, '대한민국 1교시!' 2024년도에 초등학생이었다면, '대한민국 1교시'를 통해 '허우령 앵커'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영상을 보았거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라고 다시 묻는 다면 우선 책의 표지를 보기 바란다. 얼핏보아도 알 수 있는 안내견의 노란색 조끼와 하네스가 보인다. 그리고 책의 이름을 표지를 보고 읽었다면 그 아래에 점이 찍혀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의 언어 점자다. 

 어쩌면 책을 보고 '잃어도 이뤄냈으니까' 라는 제목에 내용을 짐작하며 판단해버릴 수도 있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혹여나 '극복'이라는 이전의 시선이나 '저 정도 되면 같이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라도 하지'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를. 대단한 분, 맞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도서의 저자 허우령 앵커님이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되어지기보다는 자신 다운 삶을 살아가는 분이라는 생각이든다. 스스로를 알아가고 마주하고 꿈을 꾸고 노력하고 자신 다운 삶을 가꾸며 살아가는 분. 아주 극적이거나 가볍거나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저자 만의 삶의 스토리와 고민을 가지고 문장으로 적어낸 에세이. 개인적으로, 시각장애인이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결과적인 부분에 치우친 시선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어려움을 마주하고 노력하고 자신 다운 빛을 발견하며 꿈을 꾼 삶의 과정으로서 이 글을 읽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 구성도 섬세하다. '잃어도 이뤄냈으니까.' 제목 아래에 보여지는 점자는 그저 그림 처럼 그려낸 것이 아니다. 책 표지를 만지면 올록볼록 점이 입체적임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점판에 점필로 찍은 듯이 표지 뒷장에도 그 부분이 볼록하게 들어가 있다. 그런데, 표지의 점자만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표지를 넘기고 '잃어도 이뤄냈으니까'의 프롤로그로 들어가 기전, '본 도서를 음성 변환할 때 시각 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지 설명입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우와, 솔직히 표지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넘겼던 터라 안내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우와- 라는 말을 하게되었다. '감명 깊다'라는 표현은 이럴때 잘 어울리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목의 의미와 같이 잃어도 이뤄 내려 노력해 온 우령의 밝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담고 있는 표지' 그런데, 그러한 삶의 자세는 예쁘고 밝은 이미지에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었다. ? 책 페이지마다, 글 마다, 문장 하나 마다 저자의 삶으로 담겨져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담고 싶은, 책 속 문장들으 오래 간직하며 나누고 싶은 에세이를 만났다. 어쩌면 '장애'라는 글자로 일반적인 에세이가 아니라 특별한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로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시선을 거두고 이 도서를 읽어가셨으면 좋겠다. 사람은 모두 각자만의 특징과 개성을 지니고 있고 모두의 삶은 같은 순간과 비슷한 경험에도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추억하고 다른 길을, 자신만의 길을 걸어나간다. 장애도 그러한 다름 중 하나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장애라는 단어를 극복이나 치료를 해야하는 것이나 안타까움의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그 개인의 특징이며 살아가는 과정도 의존적으로 맹목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의 삶으로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도움이라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건 장애인이어서가 아니다. 도움을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이 도서를 만나며 더 구체화 되어지는 시간이 되어지기도 했다. 읽어가며 적혀진 문장을 만나며, 이렇게 삶의 과정을 기록을 담아주신 저자에게 감사하기도 했다. 


 어쩌면 장애라는 단어로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여전히 다름을 차별로 인식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고 쓰는 것이 우선일 수도 있겠다. 하자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도 우선은 글을 듣거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각장애를 지닌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대학생이나 책을 좋아하는 학생들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학생들에게,  이 책 한 권이 아니더라도 허우령 앵커의, 저자의 문장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 혹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과 사고에도 변화가 필요하지만 변화는 한 방향의 전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절대적 도움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비장애인들에 대한 부분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이니 혹은 장애가 있으니 당연히 옷을 입는 것이나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등과 같은 일상생활적인 부분에서도 어려움이 있다고 표현하거나 항상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들이 고학년의 학생들 혹은 청소년시기가 되어가도 그런 일상생활의 경험을 하지 않은채, 신체는 자랐지만 그리고 인지적으로도 할 수 있고 알 수 있어도 그것을 스스로 해야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의존적인 학생들과 그러한 도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있기도 하다.  이 도서를 만나며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도움의 삶이나 다름의 삶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삶에서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성장을 생각해보시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함께 하는 사회는 장애를 지닌 분들만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함꼐'의 의미를 생각하며 변화해야하는 시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요즘에는 교육적인 부분에서의 변화가 있다고 하지만 교육자료로서 끝나는 것은 변화로 바로 연결되어지지 않는다. 실질적인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어른들이 먼저 변화되어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아직 나아가야 할 부분이 많운 것 같지만 '똑같은 일상에서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요즘은 이런 나의 소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중임을 몸소 느끼고 있다. '는 저자의 문장을  떠올리며 함께 변화될 미래를 기대해 본다. 

 도서를 읽으며 감명깊은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감동이 되어지면서도 반성이되어지고, 그러면서도 감사해진다.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기호의 형태를 따라 흩날리는 꽃들 처럼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다아 '& = 그리고, 더하기'를 이루어가는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눔이 아니라 그리고의 연결과 스며듬. 차별의 시선을 빼고 함께 하는 삶을 더해가길 바란다. 저자의 문장을 읽으며 그리고 이러한 책을 마주하며, 어쩌면 우리 미래에는 스며들며 함께 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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