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의 새로운 시리즈 '탐구'는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를 한눈에 보는 기획으로 주목해야 할 젊은 저자들이 자기 삶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제안을 독자에게 건네는 도서다.
탐구 시리즈 중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철학책 독서 모임』,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까지 3종의 도서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그 내용이 궁금하고 기대되었던 도서는 윤아랑 작가님의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이었다.
제목 부터 예사롭지 않은 책이었다. 그리고 탐구 시리즈들은 책의 앞 표지에 그 내용을 상징하는 듯한 이미지가 스티커로 붙여져 있는데, 그 이미지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해졌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윤아랑
비평가. 학부에서 영화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블로그를 비롯해 유어마나, [WeiV], GQ 등의 매체에 간간이 글을 쓰다가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본격적으로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 감각을 문제 삼는 문화비평에 관심을 갖고 있다.
들어가며 부터 소름이 돋았다.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민음사라는 출판사의 책이기에, 그리고 새로운 시리즈인 탐구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작가 소개부터 들어가며 등의 내용 앞 부분도 찬찬히 읽었다. 그런데 단순히 그러한 기대감에 부응해서 소름이 돋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긍정한단는 건'이라고 적힌 들어가며의 글은, 나의 생각과, 예상과는 다른 내용의 글을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달랐다는 것이 중점이 되는 사항이 아니다.
'윤아랑'작가의 문체가, 작가의 사고가, 그리고 그 사고를 표현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앞 부분을 읽어가는 순간 멈추어버렸다. 그 멈춤의 순간에 소름이 돋았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이렇게 들어가면서부터 멈추게 되는 이 책이 더욱, 너무나 읽고 싶어졌다.
저자는 처음에 '구조물을 상상해 보자'라고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 구조물은 구체화된 것이 아니다. 작가가 상상해 보자고 말하는 구조물은 바로 '삶'이다. '삶이라는 구조물'. 그 시작부터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추상적이며 하나의 흐름과 같다고 생각된 '삶'을 구조물로서 상상해보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삶에 대해 말하며 '긍정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과연 긍정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우리는 '긍정'이라고 함면 무조건 적인 수용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긍정하는 것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직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책의 제목은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한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를 이야기 하며, '내가 조영일의 말 한마디를 무기로 쓰고 있듯이, 여기에 있는 나의 긍정의 흔적들이 당신에게 무기로 쓰일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결국에는 그것이야말로 비평가인 나에게 주어진 책무이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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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은 긍정을 수행하려 애쓴 흔적의 모음인 만큼 내가 스스로에게 제시한 문제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종종 울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 나를 긍정한다. 부정적인 정동이 나의 말과 삶을 지탱하고 또 유지시키고 있다는 걸, 자기혐오 없이 나는 없다는 걸 기꺼이 긍정한다. 나와 내 친구들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라도, 나는 끝없이 긍정을 말하고 싶다.
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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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세 권의 책 중 가장 와닿은 책이었다. 가짜 사니이, 무한도전, 대탈출, 스위트홈 등 익숙한 프로그램들에 대해 이러한 생각과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시선으로서 방송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특히 '대탈출'이라는 시리즈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러한 탈출, 추리 등의 예능을 보면서 예능의 허구성과 프로그램 자체의 설정과 그 가운데 등장인물이 되어 해결 과정을 진행시켜가는 멤버들의 호흡에 대해서 그 설정으로서의 인물들의 역할과 예능이라는 허구성을 전제하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서의 특징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로서의 시선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는 네가 특이한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대탈출이라는 프로그램 멤버들의 호흡으로 이루어져 가는 과정과 매번 새로운 문제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계와 시리즈로 연결되어지는 세계관 자체가 흥미로워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여러 질문들을 붙잡고 이야기하기보다는 흥미로움을 가지고 즐겁게 보는 것에 만족했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가며, 해결되지 않고 흘려보냈던 질문을 다시 마주하는 듯한 기분에 반가우면서도 '하지만 아무리 완벽히 조율되어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이라 해도 그들이 서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한 이 봉합이 적당히 이뤄질 리 만무하고, 결과적으로 시청자는 잘 조율된 허구적 세계를 배경으로 멤버들의 존재자체에 결부된 모순이 계속 덜렁거리는 '파열된 서사'를 볼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서 냉소로서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저자의 이야기가 더 와닿았다.
어쩌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지만, 잘 알고 있는 익숙한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기에 더 이해하면서 그리고 그에 대해 나의 생각을 함게 말해보면서 읽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민음사 탐구 시리즈 중에서는 이 책을 가장 처음에 읽어보시는 게 다른 책을 읽는데도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생각을 나누며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민음사 탐구 시리즈는 정말 딱 손으로 잡고 읽어가기 좋은 사이즈의 책이다. 한참을 가야하는 버스안에서, 공원 밴치에 앉아 잠시 생각할 때, 쉬고 싶은 오후 쇼파 위에서 읽어가기 좋은 책이다.
그리고 윤아랑 작가님의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은 예사롭지 않으면서도 철학적이면서도 익숙하고 이해되어 더 대화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책을 만나고 생각하며 대화하는 독서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