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모든 성공적 성취에 대한 신뢰와 뜻하지 않은 행운은

전부 나폴레옹이 가져다준 것으로 일반화되었다.

한 암탉이 다른 암탉에게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의 지도 아래, 6일 동안 다섯 개의 알을 낳았어요."라고

언급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혹은 두 마리 암소가, 저수지에서 물을 먹으며 즐거이,

"이 물맛이 얼마나 좋은지, 나폴레옹 동지의 지도력에 감사드립니다!"하고

소리 지르곤 하는 것을 들을 수도 있었다.

농장에 대한 대체적인 느낌은 '나폴레옹 동지'라는 제목의 시 안에 잘 표현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미니무스에 의해 만들어져서 다음과 같이 쓰여졌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이정서 옮김 / 새움 104p

<영국의 짐승들>을 부르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동물들은 힘을 모은다.

농장 주인 존슨 씨를 몰아낸 동물들.

이젠 함께 하는 동물들의 사회를 만들어가기를 소망하며

동물들의 평등을 외친다.

하지만,

동물들의 평등과 더 나은 삶을 소망하며 만든 계명들은

벽에 적힌 낙서에 불과해진다.

많은 동물들이

단지 어리석어서 돼지들의 말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돼지들은 그 꾀 많은 혀로

동물들이 이해되는 충분한 명분을 말하며

마치 정말 그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희망하게 끔 말한다.

또한 돼지들은 자신들이 챙기는 이익들을

모두 다 동물들을 위함으로 합리화한다.

단순한 이익 합리화라면 모를까.

평등의 기반처럼 새겼던 계명들은

하나하나 변질되어가고

그 조항들은 돼지들에 의해서 무너져간다.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말 좋은 합리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나퐁레옹은 어미에게서 몰래 데려다가

어린 개들을 자신의 무기로서 키운다.

그리고 그 개들로 다른 동물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것도 다른 동물들이 보는 앞에서

끔찍하게.

그리고 이전의 소망을 담은 노래도

더 이상 부르지 못하게 한다.

그것도 '명령'으로 말이다.

더 이상의 평등이 없는 곳.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동물들은 더 겁에 질리고

그 과정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일하는 동물도 있었다.

소망하던 사회는 노래 속에만 존재했고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시점부터

불평등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합리화와 속임수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소름 돋는다.

돼지들의 모습으로 표현된 동물농장의 모습이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지!"

<동물농장> 조지 오웰, 이정서 옮김 / 새움 104p

동물들은 나퐁레옹의 행동과

현재 동물농장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때

그리고 동물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의견을 말할 것 같은 때쯤

양들이 오ㅣ치는 말이 있었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그 말을 여러 번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 그래도 존슨 씨가 돌아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동물들에게는 그 상황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는 지팡이를 사용해서라도

돼지들은 두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외치던

'두 다리는 나쁘다'가

돼지들이 두 다리도 걷기 시작하는 순간.

'두 다리는 더 좋다'가 되었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렇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이정서 옮김 / 새움 104p

동물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실제로 그 수확과 이익은 돼지들에게 돌아갔다.

맛있는 양식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을 때면

그 양식은 돼지들의 것으로 선포되었다.

그것에 대한 이유 또한 돼지들의 욕심이 아니라

평등하고 지켜내야 하는 동물농장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말 좋은 내용으로 합리화되고, 포장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하층 동물'이라는 표현도 생겼다.

애초에 무너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계명이지만,

그 무너짐이 이전에 합리화였다면

이제는 아주 명백해졌다.

그런데 그마저도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포장하며 말했다.

'평등'이라는 표현이 '다를 동물보다 더'라는 비교적 표현과

함께 쓰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표현이지만

그 또한 '평등'이라는 좋은 말로

마치 그 말이 이해가 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동물농장'이라는 그 이름은 폐기되었다.

오늘 이후로 농장은 '장원 농장'으로 알려질 것이며

그것이 정확한 원래 이름이라고 자신은 믿는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이정서 옮김 / 새움 104p

이제는 다시 '장원 농장'으로 돌아왔다.

폐기된 것은 비단 '동물농장'이라는 이름만이 아닐 것이다.

정말 폐기된 것은

동물들의 평등과

동물들이 소망했던 사회 일 것이다.


소설을 읽을수록

이런 소설을 쓴 조지 오웰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농장.

어릴 때 읽었을 때와

지금 다시 만나 읽었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그리고 동물농장을 읽으려는 분들께

'새움 출판사'의 책으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외에도

뒤에 '역자 노트'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새움 출판사는

번역에 대한 자부심 '번부심'이 강한 출판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뒤의 역자 노트 구성을 보면서 '그럴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노트 중 특히 '번역, 1%의 진실과 99%의 오해 : 21가지 오역 사례'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을 토해 변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제대로 된 번역'이라는 문구가 강조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은 어떻게 이러한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ㅣ?

조지 오웰은 나는 ~해서 이 글을 썼다가 아니라

'왜 이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 <나는 왜 쓰는가>가 바로

왜 그가 이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세상에 밝힌 글이다.

이 책은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글도 함께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의 연보 등이 함께 있어

작품을 더 깊이 있게 느끼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고

작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책이 다방면으로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유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새움 출판사로 만나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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