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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작은 아씨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이야기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평점 :
전 세계가 사랑한 영원한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책 <작은 아씨들>,
그리고 작은 아씨들 그 후의 이야기인 <조의 아이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 두 권 (1~2 부, 3~ 4부) 책의 저자 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야기인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까지 읽어야
비로소 책을 모두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조의 이야기> 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조’와 책의 저자인 ‘루이자’가 닮았다는 것과
저자인 루이자의 특성과 이야기를 조금씩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읽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이야기 밖의 루이자가 이제는 작품 안으로 들어왔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통해 읽었던 책의 장면들이 다시 펼쳐지고
책 안의 인물들이 실제 인물들과 연결되며 스토리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의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인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보고
루이자의 성격에 궁금증이 생겼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서는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라는 책 제목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되었다.
우선 ‘고집쟁이’ 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어학 사전에 고집쟁이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고집쟁이 (固執쟁이)
[명사] 고집이 센 사람.
[유의어] 고집통, 고집통이, 독불장군
좀 더 구체적인 뜻을 알기 위해 한자 사전에서 ‘固執’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다.
固執 (고집)
자기(自己)의 의견(意見)만 굳게 내세움
평소에 생각했던 ‘고집쟁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 ‘고집쟁이 (固執쟁이)’를 영어로 하면 ‘obstinate person’ 이라고 나온다.
고집쟁이 (固執쟁이) obstinate[stubborn headstrong] person
obstinate
1. 고집 센, 완강한
2. 없애기 힘든, 난감한
그렇지만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의 영어로 된 책 제목은
< Invincible Louisa> 다.
‘고집쟁이 (固執쟁이) obstinate[stubborn headstrong] person’ 이 아닌
‘Invincible’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여기서 ‘Invincible’은 ‘천하무적의, 아무도 꺾을[바꿀] 수 없는 (=unconquerable) ’ 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제목은 ‘천하무적 작가 루이자’가 아닌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다.
영어와 한글의 표현이 달랐지만, 둘 다 그렇게 표현한 이유가 이해되었다.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해석해 보려 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책을 읽고 두 제목의 차이는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 것이다.
루이자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풍족함 가운데 있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스물 아홉번 이상의 이사를 다녀야 했으며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이겨내고 버텨내는 삶에 가까웠다.
모두 소망이 있었지만 환경적 여건을 보면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들이 아니었다.
루이자가 가진 소망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었다.
책을 보면 자신의 필요와 환경보다 가족의 행복과 필요를 먼저 살피는
루이자의 따뜻함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런 루이자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루이자가 삶에서 이루고 싶었던 꿈은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었으니,
진정으로 행복한 결말이었다.
<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어쩌면 힘든 환경과 그 모든 과정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닌 여성으로서
‘천하무적’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루이자가 그런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신체적 조건이나
좋은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신체적인 조건으로는 루이자는 ’굽은 어깨‘, ’어색하게 긴 팔과 다리‘ 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전에는 건강하였지만, 자원했던 간호병 생활에서 몸이 약해지고
이전처럼 건강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성격적인 측면에서 루이자는 수줍음이 많았으며 매우 예민했다.
그렇기에 루이자는 좌절이 다가올 때 다시 웃으면서 기운을 내려 했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루이자는 자기 성향을 이른 나이에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좋은 쪽으로 바꾸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루이자는 자신의 성향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런 성향을 다르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에 필요한 부분을 알고 필요한 부분에서 용기를 내고,
노력하며 자신의 강점을 잘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루이자의 글을 보고는 한 잡지사 편집장이 “작가가 될 일은 없을 거야” 라고 말했을 때
루이자는 좌절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되어서 그 편집장이 운영하는 잡지에 글을 쓰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루이자의 이런 모습은 작가로서의 ‘고집’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루이자는 그 잡지에 글을 싣게 되었다.
그런데 단지 ‘오기’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집쟁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해한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는 앞서 살펴본 ‘고집쟁이’라는 뜻이 아닌
‘고집’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가깝다.
‘고집’
[명사]
1.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
2. 마음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심상이 재생되는 일.
그리고 이런 ‘고집’의 뜻에 ‘-쟁이’가 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쟁이
[접사]
1.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그리고 이 의미가 이해되는 이유가 바로
내가 루이자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내용을 설명하면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이라는 뜻은
옳지 않은 것을 고집 있게 버티는 의미 말고 다른 의미로서 다가왔다.
내가 느낀 루이자가 바꾸지 않은 의견과 태도는
어린 시절 마음에 지닌 소망과 관심, 사랑이었다.
열세 살 루이자는 마음속에 희망을 품었다.
‘배우, 극작가. 작가’
이아기를 구성하고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는 루이자의 관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연극을 좋아하고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다.
그렇지만 이 때 품은 희망은 배우나 작가가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직업 보다도 더 큰 희망이 있었다.
열세 살 루이자의 마음에는 ‘가족’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하든, 루이자는 자기 능력으로 해낼 생각이었다. 의욕이 넘쳤지만,
루이자의 마음 한쪽에는 확실한 결정을 방해하는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몸을 회복했지만 혼란스러운 세상 물정을 잘 몰랐고,
어머니는 생계 문제로 지쳐 있었다.
애나도 자기만의 야망이 있었고, 엘리자베스는 몸이 허약했다.
어린 메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아이로 커가고 있었다.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루이자가 느낀 사랑과 아끼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열세 살 소녀가 이토록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고 아끼고 있다는 마음이 정말 예뻤다.
그저 가족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루이자는 자신의 가족을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방에서 인생 계획을 세우며 사랑하는 가족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맹세했다.
이 어린 소녀의 다짐과 사랑은 고난이 온다고 무너질 소망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부터 앞서서 생각할 나이인 열세 살에
이렇게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한 루이자의 마음은 루이자의 온 삶에 묻어나 있다.
인생 계획을 세우는 시작부터 이제는 떠나야 하는 마지막까지도 루이자의 마음에는 가족의 행복이 있었다.
"언니가 곁에 있으면 힘이나" 라고 말한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루이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그렇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하무적이라는 제목이 붙을 정도로
(한글로 된 <고집쟁이 루이자>에서는 ’천하무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지만)
힘든 상황을 마주하고 무너지지 않는 강한 루이자 였다.
전쟁 가운데 간호병으로 자원한 루이자는 ‘내가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을 때 도
“메이 가문의 기운으로 헤쳐나갈 거야.” 라고 말했다.
간호하다가 자신의 몸이 안 좋아졌을 때도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엾은 환자들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까봐 걱정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표현 된 보스턴에서 생활하던 시기에도 루이자는 강했다.
아무리 애써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렇지만 루이자는 한숨만 내 쉬며 우울함에 빠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 가운데도 루이자는 "분명히 나를 위한 일이 있을 테고, 반드시 찾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으로 절망에서 벗어났다.
분명히 나를 위한 일이 있을 테고, 반드시 찾을 거야.
<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이렇게 정리하며 생각해보니 루이자의 작품과 루이자의 삶에 대한 내용의 첵 제목으로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와 <Invincible Louisa> 둘 다 맞는 의미였다.
이렇게 루이자를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알고 싶었던 누군가를 알아가고 그 삶에 감탄하게 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조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조’의 따뜻함에 감탄했었다.
‘어떻게 이토록 아이들의 눈에 맞춰 같이 웃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아이들을 보며 한계를 짓거나 어렵고 힘들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믿어주고 희망하고 품어 줄 수 있을까. ’
가상의 인물이라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읽으며 루이자의 삶에서 조가 보였고, 낸, 넬리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각 인물들에서 ‘루이자’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 책은 ‘루이자’만을 알게 되는 책이 아니다.
작가로서의 루이자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으면서도
‘작은 아씨들’ ,‘조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과 각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루이자는 가상의 인물들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자 자신과 자매들의 이야기,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작은 아씨들> 과 <조의 아이들>에 담겨 있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읽으면서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에 나오는 인물들과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저 스토리로 만났던 이야기 속 인물들의 실제 삶을 만날 수 있는 책이면서도
책 속의 인물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이 더욱 좋아졌다.
그리고 ‘루이자 메이 올컷’을 알아가며 ‘조’와 친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부족한 글로 담기 어려운 정말 좋은 책이었다.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독자님들과
‘루이자 메이 올컷’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님들이라면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꼭 만나 보셨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윌북서포터즈4기 활동을 통해 받은 책을 읽은 후 작성한 개인적인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