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게 재밌게 나이듦 - 일용할 설렘을 찾아다니는 유쾌한 할머니들
김재환 지음, 주리 그림 / 북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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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숫자도 못 읽는 할매들이 가나다라 삐뚤삐뚤 그리고 있는 교실의 풍경, 믹스커피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서 고스톱 치는 마을회관 풍경, 화려하지도 반짝이지도 않는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휑한 촌동네에도 따뜻하고 고운 풍경이 지천이구나. 노래자랑 두 번째 나가신 곽두조 할머니 뒤에서 (마치 이번에 또 땡하면 면사무소를 불살라버리겠다는 무력시위처럼) 막춤 선사하시던 친구 할머니들 이야기에서는 한참 빵 터졌고, 배꽃 흩날리는 ‘엄마의 무덤’ 에 가서 ‘엄마’ 라고 나지막이 부르시던 박금분 할머니 이야기에서는 책 부여잡고 엉엉엉 울었다. 칠순이 되어도 배움은 설렘이고, 팔순이 되어도 엄마가 보고싶고, 죽음이 목전이어도 봄바람 불면 쑥 뜯으러 다니고 싶은 거였구나.

<선량한 차별주의자> 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나 제도가 누군가에게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고. 글과 숫자를 읽고, 어플로 기차표를 끊고, 지팡이나 유모차 없이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평생 못 해봐 한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게 늦다고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무언의 압박을 해대던 내 비정하고 오만했던 일들이 마구 쏟아져서, 책을 읽는 내내 빵빵 터지게 웃기고 뭉클하다가도, 여러번 머리를 괴고 울고 싶어졌다.

고발 다큐로만 기억하던 김재환 PD님의 작품이라서 더 좋았다.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의 시선 안에, 날선 냉소만이 아니라 이토록 따뜻한 온기가 있어서. <타인에 대한 연민> 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지만, 정의를 주장하는 기저가 희망인지 두려움(혹은 분노, 혐오)인지에 따라서 세상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젊음을 특권이 아닌 선의로 사용해야지. 엄마한테 자주 연락해야지. 그리고, 최선을 다 해 자주 웃고, 고운 문장들을 머릿속에 가득 집어 넣어야지. 칠곡할머니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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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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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에서조차 냉담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법정에 앉아 있는 와중에도, 마치 그 사건 밖에서 제 3자의 입장으로 관조하는, 사람을 왜 죽였냐는 물음에 ‘햇빛’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넘실거리는 지중해와, 저녁 무렵의 알제, 그 거리의 향기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을 만큼 섬세하고, 반면 인간관계에서는 그 어떤 형용사도 갖다 붙일 수 없는 ‘무색무취’의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살인을 저지른 중범죄자이나, 그 어느 순간에서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인지하는 ‘보편성’, ‘상식’의 거의 모든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인물이다.
 
통상 그런 이들은 타인의 이해를 받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뫼르소가 투옥되었 듯 사회에서 (자의든 타의든) 격리되어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사연을 목도하면, 그 카테고리 안에 속해있는 (어쩌면 속해있다고 ‘믿는’) 보편적인 우리는, 자연스레 그 개인을 비난한다. 이상한 사람, 사이코패스, 이들을 표현하는 넘치게 존재하며, 비난은 쉽고 신속하다.
 
평화롭고 해악 없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개개인이 지켜야 할 규칙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규칙’은 뫼르소에게 그러했듯, 쉽게 왜곡되고, 자의적이며,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다. 작품 속 법정의 모습은 (살인자 옹호할 생각 추호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사학으로 치장된 ‘타인의 입’으로 증명되는 ‘보편’ 과 ‘상식’, 그리고 ‘규칙’ 이, 한 개인의 고유한 특징과 진실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흡사 들장미 한 송이를 가져다가 인간이 만든 장미 쇠틀에 넣어 찍어보고, ‘너는 잎이 이 틀의 모양과 맞지 않으니 소멸 되어야 하며, 그것이 사회의 정의(正義) 다’ 라고 말하는 듯.

 

굳이 실존주의, 데카르트식 명제 이런 어려운 말들로 치장할 것 없이, 서술되는 사건을 바라보는 자체로 사유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런 단어들을 들먹거리며 자신의 작품을 카테고라이즈 하는 광경을 보았다면, 카뮈는 쫌 불쾌해 했을 것도 같다. 또 이러네? 하며) 이 작품이 출간된 시대를 고려하면 이 작품이 주었을 충격과 반향이 어느 정도였을 지는 감히 상상도 안된다. 종교, 사상, 그딴 거 다 집어치우라는 스물 아홉 살 젊은 작가. 그 와중에 이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받아들인, 급기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버린 프랑스 문학계의 개방성. 무엇보다, 카뮈의 문장, 특히 자연과 햇빛을 묘사하는 문장은 정말 아름답다. 그저 놀라울 따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이방인은, 중간중간 주를 달아 해석과 번역에 도움이 될 정보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즉각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작품이기에, 처음 이방인을 읽어볼 이들에게는 특히 을유문화사의 이방인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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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와 혐오 - 모성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재클린 로즈 지음, 김영아 옮김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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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그대로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존재는 숭배인 동시에 혐오가 된다절대적인 사랑을 강요받으면서도그러한 절대적인 사랑으로 인해 발생되는 수많은 부작용들에 대해 어김없이 독박을 쓰고혐오의 대상이 된다어머니가 된 이후 여성으로서 혹은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내적 삶은 불가하며이러한 현상은 당연하거나혹은 미담으로 포장 되는 경우가 절대적이다어머니로서의 여성은 그 아래 깔려 압사당한다.


간과하던 것들이 보였다어머니 이전의 여자누군가의 절대적인 보호자 내지는 양육자 이전에 독립적인 한 개인그 관점으로 어머니라는 타이틀에 얹혀진 무게를 가늠해보니놓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모성으로 미화되는 완벽한 사랑이라는 것이나약한 인간으로 가히 해낼 수 있는 것인지신의 돌봄이 세상 구석구석 미치지 않아 어머니를 보냈다는 헛소리가이 땅의 어머니를 얼마나 학대하고 있었는지.


또한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과 의존이 자식에게도 얼마나 큰 멍울이 되는 지우리는 이제 잘 안다나 역시 엄마가 너는 내 인생 유일한 행복이야’ 라는 말을 할 때마다정말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엄마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만들어진 이유로엄마라는 거대한 존재를 행복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는 것그 얼마나 상호 가학적인가책에서도 나오듯요구가 강할수록 기대는 기만적이다.  


책은 기존의 숭고한 모성의 정의와 사회적 기대를 낱낱이 풀어 헤치며 문제점들에 대해 조곤조곤 반박하면서동시에 새로운 어머니 되기를 제시한다. ‘내새끼가 아닌 철저히 타인’ 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그리하여 어머니’ 역시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권한을 회복하는 것쓰면서도 어렵다정말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주저 앉고만 싶다하지만 어머니에게도 자식에게도 폭력적인 이 모성 신화의 철옹성은 한 번은 무너져야 한다그리고 이 책은 그 여정을 탄탄하게 뒷받침 할 기본서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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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꽃
조윤서 지음 / 젤리판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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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 앉아 수감중 변호사비를 대지 못한다고 욕설을 적어 편지로 보낸 아버지, 생활비 학비 요구를 하는 새어머니와 이복 동생들, 승무원이 된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저자.

승무원 생활부터, 일하는 아내,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일상까지, 그저 고상하고 우아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반면 책 디자인이나 삽화까지 한 편의 ‘순정만화’ 같은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모습 자체가 저자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된 일상에서도 그녀는 참 정갈하고 단단했다.

온 집안의 빌어먹을 희망인 딸, 그 마음 나도 좀 잘 안다. 그래도 미안해 하지는 말자고 저자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더 이상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겠냐고.

책임감 때문에 행복이 매몰된 삶은 틀린거다. 이 땅의 모든 딸, 엄마, 아내들이여, 그러니 마음껏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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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이기적인 년 - 날카로운 직감과 영리한 태도로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캐런 킬거리프.조지아 허드스타크 지음, 오일문 옮김 / 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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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이기적인년

마침 이 책을 다 읽고 운동을 하러 가던 중이었고, 마침 (무려)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고 크롭탑에 레깅스를 입은 내 몸을 아래 위로 훑는 아즈씨를 마주쳤고. 책을 읽고 난 나는 여느 때보다도 호기로웠고. 저자 언니들이 그러지 않았는가! “지랄은 해야한다!!”

“뭘 보고 지랄이야. 눈을 확!”

제목은 호쾌하기 그지 없으나, 내용을 곰곰 생각하면 나 하나 오롯이 지켜내어 건강하게 살아내는 것이 흡사 전쟁과도 같다는 처절함이 느껴져, 문득 서글퍼지기도, 애틋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쎈 언니에 속하는 본인이지만, 내 밥줄 내 생명 날라갈 수도 있는 와중에 ‘하지마세요!’ ‘싫어요!’ 이 두 마디를 내뱉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역으로 그러므로 더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고 지랄을 하고, 지랄을 하는 다른 이들을 응원해야겠다. 이 책은 특히 20대 여동생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언니들이 우선 지랄을 좀 많이 해서 동생들은 지랄 좀 적게 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도 해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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