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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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피로사회>에서 집요하게 드러낸 것은 외부의 억압이 사라진 대신 인간이 스스로를 착취하게 된 세계였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연결되어야 하며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삶은 점점 소진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피로 그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이 계속되는 자기소모다.

이번 신작 <신에 관하여>에서는 성과와 효율의 언어로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삶 앞에서 한병철은 내재의 세계 바깥을 다시 묻는다. 한병철에게 ‘신’은 종교적 귀환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신은 믿음의 대상이라기보다 성과와 교환, 설명과 관리의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생존을 넘어 존재로 건너가기 위해 다시 호출되는 이름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이 책은 혼자 말하지 않는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신에 관하여>는 시종일관 100년 전의 철학자 시몬 베유와의 대화 속에서 전개된다. 한병철이 베유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그녀는 고통과 결핍을 제거해야 할 오류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그 빈자리를 통해 세계를 다시 사유하려 했기 때문이다.

베유의 ‘탈창조’와 ’빈자리‘ 개념은 특히 인상 깊다.
그것은 무언가를 더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아를 비워 세계가 스며들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성취와 자기계발로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하라고 요구받는 오늘의 삶과는 정반대의 태도다. 베유에게 중요한 것은 가득 찬 존재가 아니라, 신이 도달할 수 있는 빈자리였다.

내가 물러남으로써, 나를 철회함으로써, 나를 취소함으로써, 나는 사물들에게 왜곡되지 않은 실재성을, 아름다움을 되돌려준다. 탈창조가 창조를 해방한다. “내가 사라진다면, 내가 보는 이 사물들은 완벽하게 아름다워질 텐데! p.57

우리는 너무 많은 것으로 자신을 채우느라 비대해진 자아로 아무것도 머무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정보는 넘치지만 고요는 사라졌고 소통과 연결은 강화되었지만 주의 깊게 바라보는 능력은 약해졌다. 한병철이 말하듯 종교의 위기는 곧 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들을 수 없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답을 주는 책이라기보다 삶을 다시 다른 속도로 바라보게 만드는 질문에 가깝다. 무위와 빈자리의 가능성을 건네주어 뜻밖에 위로를 준다.

빈자리의 신역학은 사물들을 모든 상상된 미래가 제거된 순수한 현재에 처하게 한다. 즉, 상상을 무력화한다. 어떤 상상도 끼어들지 않은, 단지 여기 있음이야말로 신성하다. (중략) 아름다움은 목적 없는 수단이다. 제자리에서 쉬며, 그럼으로써 모든 목적에서 벗어난다. 오직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고 무위할 때만 아름다움에 다가간다. p.108

책에 따르면 평소 내가 존경했던 근대의 화가 세잔은 주의의 천재란다.
세잔은 사물들의 신적인 질서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 시몬 베유의 어법으로 말하면, 세잔은 자신을 탈창조한다. 그는 없는 것이 되고 없는 자가 된다. 그렇게 다름 아니라 탈창조를 통하여 그는 창조에 참여한다. (중략)시몬 베유의 어법으로 표현하면, 신이 화가의 눈으로 자신의 피조물을 바로본다.p.111-112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의 과도한 자의식과 상상력은 동물에게는 없는 불행을 자처하는 몹쓸 능력처럼 보인다. 세계는 본래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판단하고 평가하며 목적에 매달리고, 기타 등등.
사심 가득한 인간이 끼어든 자리에서는 뭐하나 아름다움을 찾기 어렵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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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 현대 예술의 거장
피터 F. 오스트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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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에 문외한이고 듣는 귀도 무딘 편이지만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만큼은 분명히 구별해낼 수 있다. 기묘한 허밍이 하나의 표식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 음도 뭉그러뜨리지 않고 또렷하게 귀에 꽂히는 명료함 때문이다. 그 명료함은 어떤 날에는 신경질적으로, 또 어떤 날에는 맑게 들렸고 한동안은 1981년 버전 변주 1을 아침 알람으로 설정해 두기도 했다.

라이너스의 담요처럼 늘 함께하던 낡은 의자, 그로 인해 굽은 등.

글렌 굴드를 떠올릴 때 따라붙는 기이한 이미지들은, 어쩐지 천재 예술가라면 으레 갖추어야 할 기벽처럼 여겨지곤 했다.

평생 건강 염려에서 비롯된 심인성 질환에 시달리며 한여름에도 겨울 외투를 입고 다녔고 청중을 견디지 못해 이른 나이에 무대에서 물러나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던 스튜디오로 숨어든 사람.

이런 삶은 전기로 쓰기 좋은 소재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굴드는 생전에 글, 일기, 인터뷰, 방송 출연, 다큐멘터리 등 방대한 기록을 남겼고, 그만큼 많은 전기와 연구서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마냥 괴짜 피아니스트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 복잡한 인물이다.

글렌 굴드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들의 총합이 있다면, 아마도 이 전기가 아닐까. 이 책은 1997년, 오랜 세월 굴드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인이자 깊은 우정을 나눈 피터 F. 오스트왈드 박사가 쓴 전기다. 저자는 굴드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이 기묘한 예술가에게 강하게 매료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한편으로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내 말을 들어줘. 그러면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요구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거리를 유지해.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난 혼자 있고 싶으니 방해하거나 상관하지 말아 줘’라는 이중적인 요구를 하고 있었다.“ p.74

이 첫 만남에서 이미 예고되었듯, 오스트왈드 박사는 굴드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예술가의 친구로 살아가게 된다. 그는 정신과 의사이지만 굴드를 직접 진료한 적은 없으며, 끝까지 친구이자 관찰자의 위치를 지킨다. 덕분에 이 전기는 임상적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관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굴드를 바라본다.

또한 음악적 조예가 깊은 저자는 음악적 이해를 바탕으로 굴드의 연주와 철학을 해석하고,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그의 기벽과 질환을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상세히 풀어낸다. 심야마다 이어지던 굴드의 장황한 전화 통화 같은 사적인 일화들은 이 전기를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이 책은 굴드의 천재성을 신격화하는 대신, 가까운 친구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조망한다. 그의 문제점들마저도 굴드가 추구한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퍼즐 조각처럼 읽힌다.

굴드에게 스튜디오는 청중 대신 선택한 피난처였다. 무균실처럼 고요한 그 공간에서 그는 방송과 녹음이라는 매체가 지닌 가능성을 일찍이 꿰뚫어 보았다. 완벽주의 성향의 그에게 스튜디오는, 실황 연주의 수많은 변수를 피해 이상적인 굴드 사운드를 빚어낼 수 있는 공작소였다. 말년의 굴드는 피아니스트라기보다 라디오 제작자이자 영상물 제작자로서 피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른 은둔의 시기를 거치며 굴드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피아노 스타일을 완성해 나갔다.
“스타카토와 레가토의 뚜렷한 대비, 보통 이상으로 빠르거나 느린 템포, 생동감 넘치는 뛰어난 리듬감, 지극히 투명한 터치, 대위법적 특징을 누구보다도 잘 살려내는 능력, 그리고 음악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소리를 의식적으로 끌어내는 힘을 갖추게 된 것이다.” p.223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굴드만의 연주가 형성되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견고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천재성뿐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다치기 쉬운 사람인지도 알아주길 바랐다.“ p.225

굴드는 피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할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음악가의 책을 쓰는 거야.“
글렌은 자기 자신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을까? p.641

전기의 제목처럼, 황홀경과 비극 사이를 오간 글렌 굴드는 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잔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글렌굴드
#피아니즘의황홀경
#글렌굴드피아니즘의황홀경
#피터F오스트왈드 지음 ㅣ 한경심 옮김
@eulyoo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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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 도시의 집에 관한 스물여섯 가지 관찰기
구선아 지음 / 진풍경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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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구선아 작가의 에세이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저자는 건축을 전공하고 대기업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책방 연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에는 도시에서 살아오며 경험한 다양한 주거 형태와, 집만큼이나 의미를 지닌 장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투자 가치로서의 부동산을 말하는 실용서가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장소로서 ‘집’의 의미를 묻는 책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집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개인의 자산 상황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문제와 맞닿아 있어, 에세이로 풀어내기 쉽지 않다.

책에는 건축을 전공한 저자의 시선에서 이상적인 담론이 담겨 있으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도 외면하지 않는다.

좋았던 점은 집과 저자 개인의 삶의 서사가 맞물려 있다는 점. 여기서 확장되어 책과 영화에서 풍부한 인용이 이어지며, 책을 덮고 나면 이런저런 화두가 떠오르게 된다.

아파트 키즈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부터, 나는 그 개념이 만들어내는 여러 논의가 흥미로웠다. 이제는 이 책에서 말하듯,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게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다르지 않은 무게로 존재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그 자체로 다양한 서사를 품은 노스탤지어의 상징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나의 많은 추억은 아파트 단지의 구성 요소들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집보다 더 좋아했던 옆집 언니네집은 나에게 최초로 서재방이라는 로망을 심어줬고, 단지 내 상가 피아노 학원에 대한 추억은 나만의 추억이 아니지 않을까. 오래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주워온 길고양이는 우리집 가족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기억이자 정체성의 일부다.

정연두 작가의 〈상록아파트〉(2001) 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 동일한 이름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32가구의 가족을 각자의 거실에 배치해, 일종의 가족사진처럼 촬영한 작업이었다. 같은 구조의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가구 배치와 인테리어, 생활의 기운이 드러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거실의 풍경들. 나는 그 작품이 무척 재미있었다. 전형적인 구조 속에서도 각자의 사연과 개성이 드러났고, 그 점이 평생 아파트에만 살아온 나에게 묘한 자존감을 안겨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는 초록이 우거진 숲이 보이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었다. 순진하게도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집은, 책에서 말하는 작가주의적 주택. 이를테면 알바 알토의 알토 하우스 같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제일 비용이 많이 드는 집이였다. ^_^; 서울 같은 도심에서는 불가능한 선택지이지만, 꿈꾸는 일은 자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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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 의식성장을 통한 진정한 삶의 여정
알렉스 룽구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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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너무 빡세요. 그리고 매 글마다 예시 나열이 너무 많아요. 예를들면 “성공을 향한 욕망, 허영심,욕심, 나르시시즘, 이기심, 권력 추구, 인정욕구로 강화되어~~”
“의미는 커녕 행복, 내적 자유, 정서적 안정, 위대한 가치, 경외, 풍부함, 깊이, 연결감을 얻지 못한다.” 읽기 숨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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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봄
한연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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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봄 #한연진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여느처럼 칙칙한 겨울 날, 화사한 봄을 닮은 그림책 한 권을 받았다. 숨은 봄이라니! 아직은 이른데? 하면서 펼쳐 보았다.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 이야기야. 봄이 우리를 잊었나 싶을 정도로 차갑고 시린 날들이었지.”
책은 무리에서 홀로 낙오된 작은 새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새는 한참을 헤매다 새하얀 눈 밭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작은 집에서 아이와 조우한다. 아이는 창문을 열고 얼어붙은 새의 몸에 작은 숨을 불어 준다. 그렇게 작은 새와 아이는 함께 봄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할미새가 해줬던 이야기처럼 높고 높은 곳에 올라 봄을 만나러. 언덕을 오르면서 만나는 동물들. 고양이, 순록, 올빼미, 눈표범, 검은 거북은 하나 같이 봄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와 작은 새에게 숨을 불어 주고, 호수를 건너게 도와준다. 어디선가 움트고 있는 봄의 숨결이 모여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책의 제목의 ‘숨은’은 두 가지 뜻이 아닐까. 곳곳에 숨어 있는 봄의 씨앗과 또 생명이 불어넣는 따듯한 숨. 여기서 봄도 계절 그대로 봄이거나 좋은 날을 은유하는 것 같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긴 무채색의 시간을 지나 색색으로 물드는 봄은 반드시 온다.

“우리는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해. 봄이 오면 가장 작은 것들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이 세상 가장 높고 높은 곳에서 모두의 숨이 흩뿌려졌지. 하늘에서부터 땅속 깊은 곳까지 작고 작은 틈새, 뾰조록이 솟은 우듬지까지.”
“그렇게, 우리의 봄이 왔어.”

상투적 표현 하나 없이 봄 그 자체를 흠뻑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해가 조금 길어진 것 같다. 기나 긴 겨울 끝에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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