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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전면 개정판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평점 :
우리에게 친숙한 건축가이자 여러 권의 저서를 낸 유현준 교수의 대표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왔다. 그 사이 세상도 빠른 속도로 변했고 그만큼 이 책 역시 업데이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걷고 싶은 거리와 머물고 싶은 장소에 대한 취향도 달라졌다. 성수동 같은 옛 공업지역은 새로운 감각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고, 신사동 가로수길은 한 시대의 정점을 지나 저물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개정판은 그렇게 달라진 도시의 진화를 다시 읽는 책이다.
어떤 거리에는 사람이 모이고, 어떤 거리는 왜 사람이 뜸한지 생각해 보았는가. 책은 익숙한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든다. 늘 지나던 거리와 공원, 골목과 상권 안에도 시대의 취향과 욕망, 사회의 질서가 스며 있다는 사실을 짚어낸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벤트 밀도’라는 개념이 특히 흥미롭다. 걷고 싶은 거리의 조건을 막연한 감각이 아니라 정량화된 방식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일정 구간 안에 얼마나 자주 가게의 입구와 시선이 머무를, 이벤트 요소가 이어지는지에 따라 거리의 활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시속 4킬로미터 정도로 걷기 때문에, 그 속도에 맞는 리듬이 있는 (상점의 입구가 자주 나오는)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
유현준 작가는 도시를 건물의 집합으로만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머무르고 소비하는 방식,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위계와 시선, 시간이 지나며 용도가 바뀌는 장소들까지 함께 읽는다. 그래서 이 책의 관심은 건축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를 통해 인간의 생활방식과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는 서울 뿐만 아니라 서구의 도시 사례 파리, 로마, 뉴욕등 경유하고 종교건축의 역사로까지 확장된다.
실무는 낭만보다 훨씬 복잡했다. 건축은 한 사람의 취향만으로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무수한 건축 법규와 허가, 건축주와 시공자 사이의 조율, 설명과 설득, 수정의 반복 끝에 비로소 하나의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책 속에서 건축가는 늘 여러 사람 사이를 오가며 협업해야 하고, 자기 생각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에 깊이 공감했다. 대중음악처럼 콘셉트부터 편곡과 연주까지 혼자 밀고 나갈 수 있는 예술을 부러워한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도시가 거창한 관념이 아닌, 구체적 실제로 다가 왔다. 도시라는 것은 멀리 있는 담론이 아니라, 시시콜콜한 인간들의 삶이 겹쳐지며 진화한다. 마치 유기체처럼. 걷고 싶은 거리와 그렇지 않은 거리, 남고 사라지는 상권, 낡은 산업 공간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장면들까지. 도시의 변화는 곧 인간의 변화이기도 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건축가의 전문 용어와 지식을 담으면서도, 편안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인문 교양서이기도 하다. 결국 도시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도 맞닿아 있다. 책을 읽고 나면 건축물과 도시를 바라보는 눈이 전과 조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