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표류하는 세계 - 미국의 100개 팩트로 보는 새로운 부의 질서와 기회
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상미 옮김 / 리더스북 / 2023년 4월
평점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던 미국. 하지만 지금 미국의 지위는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패권의 위기, 중국의 급부상, 기축통화 달러의 프리미엄, 양극화와 내부 분열까지 마치 도미노처럼 안팎으로 도전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경제와 경영 시스템, 관행이 이미 성패가 검증되었다고 보고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래서인지 스콧 갤러웨이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상황이 겹친다. 한국이나 이웃 일본의 현상인 줄로만 알았던 일들이 이미 미국에서 일어났거나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 스콧 갤러웨이는 《표류하는 세계》에서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을 100개의 데이터로 보여준다. 100개라는 숫자에 흠칫하지만 글밥 가득한 딱딱한 경제 도서와 달리 직관적인 데이터와 인포그래픽을 통해 쉽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지난 세기 동안 미국 땅에서 벌어진 전투는 거의 없었지만 미국은 전쟁을 통해 세계 1위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군수 산업은 자본주의 엔진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불황을 비롯한 몇몇의 큰 위기가 있었다.
1929년 경제 대공황,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와 같은 사상 최악의 증시 폭락 사태에서도 미국은 때마다 수단을 강구해 대응에 나섰고 국가적 위기에서의 대응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부신 경제 발전에는 명과 암이 극명했다. 전후 호황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주주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공동체와 제도 중심에서 견고한 개인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적 생산성, 세계화, 민주화를 견인한 강력한 힘은 바로 구속받지 않는 자본주의였던 것이다.
성공은 개인이 성취한 결과물이자 근성과 천재성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미국에서는 요즘 빅테크 기업의 혁신가들을 추앙하는 세태가 만연한다. 빅테크 기업의 오너가 차등의결권을 통해 전례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독점 유지를 위해 로비를 통해 정부를 지배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행해지고 있다.
한편 독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보유해 장악하려는 시도도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 포스트를 소유하고 있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소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법과 제도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가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사회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의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부익부 빈익빈은 점점 심해지고 있고, 여유가 없어 분노에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은 인종·성·세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존재감이 작아진 정부는 인프라 투자에 소홀한 탓에 미국인의 45%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며, 노후된 수도관은 2분마다 한 번꼴로 파열된다. 핵심 인프라에 수많은 결함이 생긴 나머지 미시간 주의 어느 도시에서는 12000명의 어린이가 납으로 오염된 물을 마신 적도 있다고 한다.
인터넷이 생기고 모바일과 소셜 네트워크가 보급되면서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라 불리는 요즘 분명 과거에 비해 편리하고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편리함에 가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지 그것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옭아맬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100가지의 데이터를 통해 만난 미국은 생각보다 많이 곪아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신기하게도 데칼코마니처럼 한국과 닮아 있었다. 갤러웨이 교수는 현 상황을 위기로 보고 미국은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표류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놀라운 번영을 이룬 미국은 발전이 멈추고 나라가 분열될 때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위기를 탈출했고 지금의 위기 또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수많은 영역에서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따르던 성공 방정식을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일 테지만 국제 관계는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한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선례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위기 탈출은 다른 나라를 담보로 한 경우가 많았기에 우리나라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영리하게 처신해야 할 것 같다.
한줄평 : 미국을 상황을 이토록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간만에 너무 재미있게 읽은 경제 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