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국의 공(空)산당선언
고성국 지음 / 지우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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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48년 마크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고하며 프롤레타리아로 대표되는 노동자 계급의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공산당 선언이라는 강령을 발표한다. 이 사상을 받아들여 공산주의 종주국이 된 소련은 채 100년도 유지하지 못한 채 무너졌고 다른 나라들 또한 마찬가지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이념이란 걸 대다수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지구상의 단 한 곳 북한만은 예외다. 물론 이제는 공산주의라고도 할 수 없는 1인 독재국가이지만 그들은공산주의 이념의 탈을 여전히 정권 유지에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목표는 북한 내부에 한정되지 않은 데 있다.


고성국의 공산당선언은 제목만으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그가 말하는 '공(空)산당선언'은 과거의 공(共)산주의 이념과 전혀 다른 의미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며 겉으로는 평화와 공정을 내세우지만 되려 자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종북 좌파들의 만행을 저지하고자 하는 선언이다.


실패하고 상처를 입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는 게 우리의 삶이다. 정치 평론가로 활동 중인 저자 고성국은 이 책을 통해 이제는 뒤늦게 깨닫는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 탄핵과 함께 훼손된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바로잡고, 앞으로 어떻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지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진짜 공포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대서 비롯된다. 보이지 않기에 더 불안하고 더 쉽게 흥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을 시작으로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이어 몇 년 뒤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북한 추종 세력이 선동해온 조직적인 체제 전복 시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우파들의 내부 분열과 무능력함은 그대로 이어져 총선에서 결과로 나타나는데 이로 인한 자유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각종 입법들과 국민들이 입을 피해를 보며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것들이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신문을 보다가 지면 전체를 빌려 종북 주사파를 고발하는 취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실제 일어나는 일이 맞는지 좀처럼 믿기지 않았었다. 가짜 뉴스에 가려져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왜곡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선거를 할 때면 누구나 흠이 있게 마련이니 차악의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양쪽 진영에 교대로 정권이 돌아가도록 투표하면 좋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때 그 신문 기사를 계기로 이후 다양한 채널을 통해 관련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 마음이 바뀌었고 이 책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스스로 자조하는 의미로 냄비 근성을 드는데 돌이켜보면 나 역시 뉴스 기사 하나에 쉽게 흔들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선동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이면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개개인 스스로 일깨우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 같다.


광우병 파동, 세월호 참사, 대통령 탄핵 사건부터 문재인 정권으로 이어진 그간의 일들의 이면을 바라보고, 윤석열 정권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더불어 개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이를 위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일깨워 준 《고성국의 공(空)산당선언》


진흙탕 싸움을 많이 목격한지라 그 모습에 질려 아예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행적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반 국민들이기에 이들은 물론이고 정치인들까지 누구나 한 번쯤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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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세계 - 미국의 100개 팩트로 보는 새로운 부의 질서와 기회
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상미 옮김 / 리더스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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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던 미국. 하지만 지금 미국의 지위는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패권의 위기, 중국의 급부상, 기축통화 달러의 프리미엄, 양극화와 내부 분열까지 마치 도미노처럼 안팎으로 도전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경제와 경영 시스템, 관행이 이미 성패가 검증되었다고 보고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래서인지 스콧 갤러웨이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상황이 겹친다. 한국이나 이웃 일본의 현상인 줄로만 알았던 일들이 이미 미국에서 일어났거나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 스콧 갤러웨이는 《표류하는 세계》에서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을 100개의 데이터로 보여준다. 100개라는 숫자에 흠칫하지만 글밥 가득한 딱딱한 경제 도서와 달리 직관적인 데이터와 인포그래픽을 통해 쉽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지난 세기 동안 미국 땅에서 벌어진 전투는 거의 없었지만 미국은 전쟁을 통해 세계 1위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군수 산업은 자본주의 엔진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불황을 비롯한 몇몇의 큰 위기가 있었다.


1929년 경제 대공황,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와 같은 사상 최악의 증시 폭락 사태에서도 미국은 때마다 수단을 강구해 대응에 나섰고 국가적 위기에서의 대응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부신 경제 발전에는 명과 암이 극명했다. 전후 호황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주주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공동체와 제도 중심에서 견고한 개인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적 생산성, 세계화, 민주화를 견인한 강력한 힘은 바로 구속받지 않는 자본주의였던 것이다.


성공은 개인이 성취한 결과물이자 근성과 천재성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미국에서는 요즘 빅테크 기업의 혁신가들을 추앙하는 세태가 만연한다. 빅테크 기업의 오너가 차등의결권을 통해 전례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독점 유지를 위해 로비를 통해 정부를 지배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행해지고 있다.


한편 독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보유해 장악하려는 시도도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 포스트를 소유하고 있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소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법과 제도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가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사회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의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부익부 빈익빈은 점점 심해지고 있고, 여유가 없어 분노에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은 인종·성·세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존재감이 작아진 정부는 인프라 투자에 소홀한 탓에 미국인의 45%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며, 노후된 수도관은 2분마다 한 번꼴로 파열된다. 핵심 인프라에 수많은 결함이 생긴 나머지 미시간 주의 어느 도시에서는 12000명의 어린이가 납으로 오염된 물을 마신 적도 있다고 한다.


인터넷이 생기고 모바일과 소셜 네트워크가 보급되면서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라 불리는 요즘 분명 과거에 비해 편리하고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편리함에 가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지 그것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옭아맬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100가지의 데이터를 통해 만난 미국은 생각보다 많이 곪아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신기하게도 데칼코마니처럼 한국과 닮아 있었다. 갤러웨이 교수는 현 상황을 위기로 보고 미국은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표류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놀라운 번영을 이룬 미국은 발전이 멈추고 나라가 분열될 때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위기를 탈출했고 지금의 위기 또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수많은 영역에서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따르던 성공 방정식을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일 테지만 국제 관계는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한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선례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위기 탈출은 다른 나라를 담보로 한 경우가 많았기에 우리나라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영리하게 처신해야 할 것 같다.


한줄평 : 미국을 상황을 이토록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간만에 너무 재미있게 읽은 경제 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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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5 - 영락태왕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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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양으로 인해 시작 전엔 부담스럽게 여길 수 있지만 표지를 넘기는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장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역사소설이 아닐까 싶다. 광개토태왕은 지금껏 여러 곳에서 도서와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었지만 피상적인 모습만 만날 수 있을 뿐이어서 자못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잊혀가는 우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 중 엄광용 작가님은 지난 20여 년간 중국 등지를 돌아보며 부족한 사료를 찾아 메우고 보완하였다. 그렇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탄생한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담덕>.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줄어드는 게 아쉬울 만큼 재미있다.


대하 장편소설로 10부작의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는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담덕은 이제 절반을 지나고 있다. 지난 4권에서 담덕은 하대곤과 해평의 반란을 피해 서해바다 한가운데를 표류하다가 백제를 거쳐 다시 바다 건너 동진과 머나먼 서역까지 돌며 유랑 생활을 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운 후 돌아와 태자에 오른다.


5권에서 태자가 된 담덕은 자신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스승 을두미의 유지를 받들어 무명선사의 거처를 찾아 부여 땅을 수소문하며 헤맨다. 사실 담덕의 작은할아버지이기도 했던 무명선사는 그가 찾아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일생을 바쳐 고구려 무술을 집대성한 무명 검법이 담덕에게 전수되었다.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유랑 생활을 하며 얻은 혜안으로 담덕은 대왕 직속 부대인 왕당군을 조직하고 이들을 훈련시키는데 전력을 다한다. 그 사이 화병으로 시름시름 앓던 부왕 고국양왕이 승하하면서 드디어 담덕이 왕위에 올랐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그는 선대 왕들과 달리 처음부터 중국의 황제와 같은 태왕의 지위에 오르고 그에 걸맞게 영락이라는 연호를 쓰며 즉위 초부터 주변국과의 관계를 다져 나가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적의 선대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백제 소유의 부소갑과 관미성을 공략해 인삼재배권과 해상권을 확보한다.


때마침 과거 소수림왕 대부터 고구려의 중흥을 도모하고자 국가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불교 사찰이 평양성에 건립되었다. 이에 맞춰 대법회와 담덕의 혼사까지 함께 이루어지면서 이로써 대제국 건설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담덕이 펼친 국가의 경제 자립, 정신을 다스리기 위한 불교 진흥, 주변국 공략의 조치들은 나라를 위한 일들이지만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싶은 개인에게 적용해도 꼭 들어맞는 이치인 것 같다. 우리는 미래의 길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라고 하는 작가의 집필 의도가 담덕의 치세를 통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역사 시간에 배운 광개토태왕은 멀게만 느껴지는 고대의 인물이었지만 역사소설을 통해 만난 담덕은 마치 여기 이곳에 함께 존재하는 듯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섯 권의 책과 함께 이제는 애정이 생겨 우리 담덕이가 되어버린 18살의 광개토태왕이 앞으로 보여줄 거대한 서사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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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in 상하이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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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문단 데뷔 이래 미스터리, 추리물, SF, 판타지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발표한 온다 리쿠. 그녀는 나오키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에 이어 서점 대상까지 여러 차례 수상하며 문단과 독자 모두에 호평받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다.


2001년 처음 발표된 도미노는 온다 리쿠표 '패닉 코미디'의 경쾌한 출발점으로 혼잡하기로 유명한 한여름의 도쿄역에서의 한나절의 해프닝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출간된 후속작 《도미노 in 상하이》는 대륙이 무대인만큼 사건의 스케일도 훨씬 커져서 돌아왔다.


이 소설의 매력은 서술자가 직접 개입한다는 점이다. 인물에 대해 평을 한다거나, 서술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멀찌감치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지켜보던 절대자가(마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호통을 치듯 난데없이 곳곳에 나타난 온다 리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더 재미있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어우러져 시끌벅적한 군상극을 펼치던 도쿄역 테러 소동이 일어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영화 시작 전 카운트다운을 하듯 마이너스에서 시작해 플러스로 차츰 도미노 블록(각 사건)이 세워진다.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들 일부가 다시 나와 더 반갑게 느껴진다.


영화 홍보차 도쿄에 방문하며 반려 이구아나 다리오를 몰래 들여오다 소동에 휘말린 호러 영화감독 필립. 이번에는 상하이에서 영화 촬영을 하게 하는데 또다시 몰래 다리오를 데려온다. 화물칸에 탑승하느라 잠시 떨어져 있던 찰나 범죄조직이 노리는 세기의 보물 '박쥐'가 강제로 다리오 뱃속에 삼켜진 채 상하이로 향한다.


한편 결혼하면서 상하이로 이주한 에리코를 만나기 위해 전 직장 동료인 간토 생명의 유코와 가즈미도 휴가를 맞아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생에서 우연은 필연이라고 하는 온다 리쿠의 메시지를 증명하듯 24명의 인간과 3마리의 동물들은 모두 청룡 반점(호텔)으로 모인다.


보물을 품고 있던 이구아나 다리오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 뛰어난 실력의 청룡 반점 요리장 왕탕위안에게 요리되어 테이블로 오르고 주인 필립은 상심에 빠져 그만 촬영을 놓아버린다. 이 와중에 보물의 행방을 찾아 몰려드는 범죄조직과 그 뒤를 쫓는 홍콩 경찰 그리고 신속 배달에 여념 없는 초밥집 사장 겐지까지.


수많은 이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얽히고설키지만 결국 하나로 수렴하여 청룡 반점 꼭대기 층에서 폭발하고 만다. 전작에 비해 훨씬 큰 스케일과 디테일한 묘사 덕에 더욱 재미있었던 《도미노 in 상하이》는 서술자의 미묘한 목소리를 남기며 끝을 맺는데 또 다른 후속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품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킬링 포인트는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덩치 큰 판다 강강과 불의의 사고로 접시에 담겨 테이블에 오른 이구아나 다리오의 내면 묘사였던 것 같다. 동물들이 생각을 한다면 이런 식이지 않을까 싶어 웃음이 났다. 유쾌하고도 명랑한 일본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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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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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물, SF, 판타지, 성장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온다 리쿠의 패닉 코미디 소동극 《도미노》. 20여 년전 출간된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최근 후속작 《도미노 in 상하이》가 나오면서 함께 새 옷을 입고 재출간 되었다.


패닉 코미디하면 우선 떠오르는 건 병맛 B급 영화인데 정확한 뜻이 궁금해 챗 GPT에 물어보았다. 그에 따르면 패닉 코미디란 죽음, 공포, 폭력 등 무서운 요소를 유머와 결합하여 만든 코미디 장르로 비극적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형식이라고 한다.


찌는 듯한 더위와 숨막히는 습도로 괴로운 한여름의 도쿄, 그중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28명(정확히는 27명과 1마리)이 도쿄역으로 모여든다. 등장인물이 많아 이 무슨 요란한 군상극인가 싶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금세 적응된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간토생명 직원들. 이들은 매달 마감 직전까지 고군분투하는데 이번엔 1억엔 짜리 계약서를 본사에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어서 장이 바뀌며 나타나는 뮤지컬 오디션 현장. 이곳에선 아역 배우 마리카와 레이나가 배역을 위해 서로 은근한 견제를 하고 있다.


한편 하이쿠에 빠져 동호회 활동을 하던 슌사쿠는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생전 처음 도쿄로 왔지만 미로 같은 역 주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영화관에서는 미스터리 동호회 회원들이 차기 회장직을 두고 경쟁하는 와중에 한켠에서는 연인의 배신에 복수를 다짐하며 변장한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도 등장한다.


때마침 미스터리 동호회 회원들이 보던 그 영화의 감독은 반려동물과 함께 홍보차 도쿄에 방문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미처 인식하지 못한채 스쳐 지나가는 그 혼란한 역사 내에서 테러 조직 '얼룩끈'은 도쿄역을 날려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작가는 각 장마다 초점을 달리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물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뒤바뀌는 봉투를 두고 폭탄 돌리기를 하는 모습은 거듭된 우연이 빚어낸 나비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또한 사건의 전개 양상이 실제 도미노 게임을 하듯 블록이 차례로 촤르르 무너지는 듯해서 묘한 쾌감이 들기도 했다.


온다 리쿠는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영화처럼 수많은 등장인물이 서로 티키타카하며 화려하게 이어지는 맛은 부족했지만 일본의 경쾌한 애니메이션을 보듯 소박한 재미는 충분했다. 등장인물이 재등장하는 후속작 《도미노 in 상하이》에서는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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