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물, SF, 판타지, 성장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온다 리쿠의 패닉 코미디 소동극 《도미노》. 20여 년전 출간된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최근 후속작 《도미노 in 상하이》가 나오면서 함께 새 옷을 입고 재출간 되었다.패닉 코미디하면 우선 떠오르는 건 병맛 B급 영화인데 정확한 뜻이 궁금해 챗 GPT에 물어보았다. 그에 따르면 패닉 코미디란 죽음, 공포, 폭력 등 무서운 요소를 유머와 결합하여 만든 코미디 장르로 비극적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형식이라고 한다.찌는 듯한 더위와 숨막히는 습도로 괴로운 한여름의 도쿄, 그중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28명(정확히는 27명과 1마리)이 도쿄역으로 모여든다. 등장인물이 많아 이 무슨 요란한 군상극인가 싶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금세 적응된다.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간토생명 직원들. 이들은 매달 마감 직전까지 고군분투하는데 이번엔 1억엔 짜리 계약서를 본사에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어서 장이 바뀌며 나타나는 뮤지컬 오디션 현장. 이곳에선 아역 배우 마리카와 레이나가 배역을 위해 서로 은근한 견제를 하고 있다.한편 하이쿠에 빠져 동호회 활동을 하던 슌사쿠는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생전 처음 도쿄로 왔지만 미로 같은 역 주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영화관에서는 미스터리 동호회 회원들이 차기 회장직을 두고 경쟁하는 와중에 한켠에서는 연인의 배신에 복수를 다짐하며 변장한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도 등장한다.때마침 미스터리 동호회 회원들이 보던 그 영화의 감독은 반려동물과 함께 홍보차 도쿄에 방문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미처 인식하지 못한채 스쳐 지나가는 그 혼란한 역사 내에서 테러 조직 '얼룩끈'은 도쿄역을 날려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작가는 각 장마다 초점을 달리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물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뒤바뀌는 봉투를 두고 폭탄 돌리기를 하는 모습은 거듭된 우연이 빚어낸 나비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또한 사건의 전개 양상이 실제 도미노 게임을 하듯 블록이 차례로 촤르르 무너지는 듯해서 묘한 쾌감이 들기도 했다.온다 리쿠는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영화처럼 수많은 등장인물이 서로 티키타카하며 화려하게 이어지는 맛은 부족했지만 일본의 경쾌한 애니메이션을 보듯 소박한 재미는 충분했다. 등장인물이 재등장하는 후속작 《도미노 in 상하이》에서는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