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양으로 인해 시작 전엔 부담스럽게 여길 수 있지만 표지를 넘기는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장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역사소설이 아닐까 싶다. 광개토태왕은 지금껏 여러 곳에서 도서와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었지만 피상적인 모습만 만날 수 있을 뿐이어서 자못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잊혀가는 우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 중 엄광용 작가님은 지난 20여 년간 중국 등지를 돌아보며 부족한 사료를 찾아 메우고 보완하였다. 그렇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탄생한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담덕>.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줄어드는 게 아쉬울 만큼 재미있다.대하 장편소설로 10부작의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는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담덕은 이제 절반을 지나고 있다. 지난 4권에서 담덕은 하대곤과 해평의 반란을 피해 서해바다 한가운데를 표류하다가 백제를 거쳐 다시 바다 건너 동진과 머나먼 서역까지 돌며 유랑 생활을 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운 후 돌아와 태자에 오른다.5권에서 태자가 된 담덕은 자신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스승 을두미의 유지를 받들어 무명선사의 거처를 찾아 부여 땅을 수소문하며 헤맨다. 사실 담덕의 작은할아버지이기도 했던 무명선사는 그가 찾아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일생을 바쳐 고구려 무술을 집대성한 무명 검법이 담덕에게 전수되었다.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유랑 생활을 하며 얻은 혜안으로 담덕은 대왕 직속 부대인 왕당군을 조직하고 이들을 훈련시키는데 전력을 다한다. 그 사이 화병으로 시름시름 앓던 부왕 고국양왕이 승하하면서 드디어 담덕이 왕위에 올랐다.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그는 선대 왕들과 달리 처음부터 중국의 황제와 같은 태왕의 지위에 오르고 그에 걸맞게 영락이라는 연호를 쓰며 즉위 초부터 주변국과의 관계를 다져 나가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적의 선대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백제 소유의 부소갑과 관미성을 공략해 인삼재배권과 해상권을 확보한다.때마침 과거 소수림왕 대부터 고구려의 중흥을 도모하고자 국가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불교 사찰이 평양성에 건립되었다. 이에 맞춰 대법회와 담덕의 혼사까지 함께 이루어지면서 이로써 대제국 건설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담덕이 펼친 국가의 경제 자립, 정신을 다스리기 위한 불교 진흥, 주변국 공략의 조치들은 나라를 위한 일들이지만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싶은 개인에게 적용해도 꼭 들어맞는 이치인 것 같다. 우리는 미래의 길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라고 하는 작가의 집필 의도가 담덕의 치세를 통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역사 시간에 배운 광개토태왕은 멀게만 느껴지는 고대의 인물이었지만 역사소설을 통해 만난 담덕은 마치 여기 이곳에 함께 존재하는 듯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섯 권의 책과 함께 이제는 애정이 생겨 우리 담덕이가 되어버린 18살의 광개토태왕이 앞으로 보여줄 거대한 서사가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