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밑의 개
나하이 지음 / 좋은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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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밑의 개

 

[어린왕자의 재림]으로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게 한 동화작가 니하이의 신작 [눈 밑의 개]를 만났습니다.

평소 개를 키우고 싶은 미소는 아홉 번째 생일날 엄마로부터 손가락만큼 작은 개 엄지를 선물로 받습니다. 미소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엄지는 미소의 사랑이 지나쳤는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로 생활합니다. 어느 날 미소 이모가 잠시 맡겨 둔 메롱이의 농간에 휘말려 미소의 곁을 떠나 집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동안 미소의 사랑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아왔지만 바깥세상은 미소의 품처럼 따뜻하지 않습니다. 잠자리에서부터 먹을 것까지 스스로 찾아 나서야 했고 때로는 목숨의 위협까지 견뎌내야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손가락만큼 작은 개 엄지에게는 녹록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는 법입니다. 엄지도 숱한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이겨내며 나약한 존재에서 조금 더 강인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물론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기에 새롭게 사귄 건이, 유기견 나나아줌마, 그리고 고물상가게 소녀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존재였던 작은 개 엄지는 쑥쑥 성장해가는 동안 자기의 이기적인 행동들을 반성하며 배려와 협동심이라는 사회적 행동들을 배워 나갑니다. 어리고 나약한 존재인 엄지뿐만 아니라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보살핌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작은 개 엄지가 미소의 보살핌속에서 성장을 멈추고 정체되어 있다가 세상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자란 것처럼, 그런 보살핌을 박차고 나가 자기만의 자리를 굳건하게 만들어 내는 존재로 성장해야 합니다. 동화이지만 한편의 훌륭한 성장소설로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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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 -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학술총서 1
이규수 지음 / 어문학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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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

 

두 아이가 어렸을 때 헬로우 키티 캐릭터를 아주 좋아했다. 옷과 신발 학용품등을 헬로우키티 제품을 많이 사 주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중학교 들어간 후 일본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용품을 포함한 자신이 가진 일본관련 제품을 모두 거부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일본작가와 작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혹시 아이와 마찰이 생길까 나 스스로도 일본 작가의 작품을 잘 보지 않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도 한쪽 구석으로 조용히 치웠다. 간혹 아이가 너무 극단적으로 흐를까? 한마디씩 충고하곤 했다. 극우주의자들의 행태는 밉지만 과거 자신들의 국가가 행한 잘못된 행동들을 비판하면 반성을 촉구하는 분들도 점점 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등등 그렇게 아이와 대화를 하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민들은 과거 자신들이 행한 많은 잘못들을 반성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거의 한세기가 다 되어가는데 진짜 반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일전 축구경기를 보면 아직도 제국주의 깃발을 버젓이 들고 응원을 한다. 누구 한사람 제지하지도 않는다. 언론에서도 그런 행태들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 머리가 혼란하던 차에 [제국과 식민지사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당시 일본은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식량문제의 해결 그리고 원료공급지로서의 조선은 매력적인 대상지였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을 빠르게 안착시키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도 필요했지만 그와 더불어 조선민중과 꿋꿋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존재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조선에 들어와 다양한 활동을 펼친 일본인들이다.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식민지배할 수 있는 동력은 재조 일본인들의 든든한 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당시의 기억들이 지금의 일본이 힘이라는 제국주의의 논리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것과 함께 지금 일본국민들이 아무런 비판도 없이 제국주의깃발을 펄럭이는 이유가 아닐까?

[제국과 식민지 사이] 이 책은 학술서답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작은 디딤돌의 역할은 충분하다. 끝까지 읽기 쉽지 않지만 외면하고 덮어버리기도 쉽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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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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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빠르게 변화해 가는 세상 뚜렷한 자기 목표를 가지지 못하면 낙오자로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각종 실업률에 대단히 민감해 진다. 취업은 자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 잘 되는 유명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주야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 몰고 있다. 건강한 삶은 건강한 신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신체를 가졌을까? 의문이 든다.

고전평론가 고 미숙 작가의 신작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돈과 부, 권력, 명예에 미쳐 날뛰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지금 우리가 설정하고 있는 인생의 목표가 결국 돈과 관련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 우리의 삶은 무엇을 지향해야할 것인가? 4차산업혁명시대 드디어 노동으로부터 인간은 자유로워 질 것 같다. 이제껏 인류가 바란 희망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실현된다면 우리 인간의 삶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조선후기 최대 권력의 가문에서 태어나, 지금껏 우리가 바란 삶을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백수의 삶을 산 연암, 현 시대 우리 청년들의 삶과 비교하며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청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모두들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아래에서 새로운 삶을, 자유로운 삶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부귀영화를 헌신짝 버리듯 버린 연암이 추구한 것은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 맺기였다. 백수라서 골방에 쳐 박혀 머리를 지어 뜯으며 내 삶이 왜 이럴까? 괴로워 한 것이 아니라. 백수라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현실에서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청년들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노동은 나약한 인간을 세상의 지배자로 만들었지만 또한 이 노동으로 인해 인간소외가 일어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건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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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고진하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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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낮 기온 38도를 웃돌아 밤에도 잠을 잘 잘 수없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다. 올 해는 일찍 끝난 장마로 인해 한 달가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거라는 뉴스를 보며 지난밤의 그 끈적거림이 떠오른다. 평소 나는 여름은 덥게, 겨울은 조금 춥게 살아야 한다. 를 신조처럼 여기고 있다. 바깥이야 내가 어찌할 수 없고 집에서는 에어컨도 없고 그나마 있는 선풍기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내가 환경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아니다 발달한 현대물질문명을 적당히 누리며 잘 살고 있다. 연일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기상이변 뉴스를 보면 우리들이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바뀌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참을 수 있는 만큼만 나 자신을 바꾸면 어떨까?

고진하 시인의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을 읽으며 우리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편리한 도시문명의 삶을 뒤로 하고 강원도 산기슭에 불편당을 지어 놓고 살아가는 그의 삶은 도시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이렇게 한번 살아봐. 때로는 불편함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거야 웅변하는 것 같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핵발전소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찾는 당신, 각종 성인병에 오늘도 허리의 굵기를 보며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하면서 고기를 찾는 당신, 고진하 시인은 이런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준다. 때로는 불편함에 원망하는 마음도 생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도시의 삶에서 잃어버렸던 가족사랑을 확인할 수도 있고 바쁜 삶의 과정에서 잊고 있었던 과거의 추억속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처마밑 아기제비들의 속삭임이 주는 행복은 버릴 것은 버려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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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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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지금은 읽지 않지만 지난 십여년간 판타지 소설을 하루도 빠짐없이 두, 세권씩 읽었다. 이렇게 많이 읽다보니 나름의 원칙이 생겼다. 말장난하는 책은 읽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이 어린 친구들을 중심으로 많이 유행을 하다 보니 나이 어린 친구들의 작품이 종종 발간된다. 그런 이야기들에는 어김없이 지금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말투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린 친구들은 재미있게 읽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거부감을 느낀다.

류근 시인의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을 처음 접했을 때 몹시 불편함을 느꼈다. 매 글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비속어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꾸 맥이 끊어 졌기 때문이다. 평소 글은 글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쉽게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어떤 글이 글다운가라는 질문은 그냥 읏지요.) 하지만 페이지를 더할수록 거북스러운 마음보다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작가의 진심이 담긴 욕설이 주는 묘한 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들이 종종 뉴스시간에 욕쟁이 할머니식당에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욕을 들을 줄 알면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팍팍한 삶의 현장에서 할머니의 격의 없는 욕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기 위함이다. 류근시인의 글의 끝에서 만나는 욕이 그런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욕설이 주는 묘한 쾌감은 개인적 분노를 담아서는 생기지 않는다. 불쾌감을 줄 뿐이다. 하지만 사회적 분노를 그 속에 담았을 때 그런 쾌감이 가능하다. 류근 시인의 글들은 평범한 개인적 일상을 담은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사회적 분노가 담겨있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나도 조낸 시바다 느껴지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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