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이나 지능이 높은 사람에 대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지능에 대한 개념과 일상에서 지능이 높은 사람들에 여러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지능이 높은 사람일 수록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며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저녁형 인간이나 동성애자가 되기 싶고, 노래를 동반하는 음악보다는 단순한 악기로만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약물을 사용한다. 그래서 과음하기 쉽고 주정도 많이 부리는 것이다. 저자는 질문한다 그래서 지능이 높은 사람이 휼륭한 것일까?우리는 똑똑한 사람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강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태어나 성장하고 교육 받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끝없는 ‘경쟁’에서 생존 해야 하는 사회적 환경이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좀 더 똑똑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그동안 ‘지능’과 ‘재능’의 키워드로 관련 도서를 여러권 사두고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진화심리학의 범주에서 접근해 보고 싶다.책을 읽고 새로운 관점을 갖게되는 것이 독서에 가장 큰 소득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돈벌이가 안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니힐리즘어째서 시대의 지식은 우리를 니힐리즘에 빠트리기 쉬운 것일까. 이를테면 현대의 자본주의적인 지식에서는 경제적 유용성에 합당하다면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긴다. 다음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 유용성이다. 가치의 히에라르키Hierarchie(피라미드 꼴의 계급 지배 제도. 상하 관계가 엄한 조직이나 질서를 가르키는 독일어)에서는 경제성이 늘 우선시된다. 이처럼 가치에 등급을 매기는 상황은 간단히 니힐리즘을 만든다. 말하자면 경제성과 관계없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에서는 가치를 찾아낼 수 없다. 현실 앞에서 돈벌이로 연결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인 지식에 지배되고 있는 현대뿐만 아니라 기독교주의적인 지대나 장소에서도 그런 이유로 니힐니즘이 생겨난다.<지성만이 무기다, 사라토리 하루히코, pp.77~78>‘긍정‘의 지식은 사회적 유용성에서 그 가치를 부여받고, 이를 통해 니힐리즘을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을까?˝긍정‘에 대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에피스테메(시대의 공통지)적 시각과 이테올르기 관점에서의 설명과 접근은 어떤 차이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긍정에 대한 강박적 집착과 판단 가치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시대에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책과 책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저자의 서로다른 내용과 관점이지만 각각의 주장에 적용해 볼 수 있어 재미가있다.
이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르기는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영향력에 지배받아 생각과 행위를 하고 있으나 인식은 선명하게 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이데올르기가 사회구조와 결합되어 작동할 때 한 개인은 무기력 해진다. 빈곤과 빈부격차,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층과 계급 신앙과 자유의지 등에 문제를 개인 대 국가 차원에서의 살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