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재밌다. 448페이지의 두꺼운 분량이 무색할 만큼.

유머와 재치가 살아 있어, 군데군데 폭소를 자아내는 문장들이 있다. 그런 문장들은 전체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전혀 작위적이지 않다.

"5월, 초록으로 뒤덮인 오후의 강변에서 나와 내 코트를 입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육십 살만 젊었다면 로맨틱한 광경이 됐을 수도 있었다."

이런 문장들. 아무렇지도 않게 써 내려간...

단문으로 끊어지는 명쾌한 문장 속에 유머를 담뿍 담은 <하드 보일드 에그>는 험하고 각박한 세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그야 말로 '하드한' 세상을 살아가는 두 사람, 탐정이 되고 싶었던 심부름센터 사내 '슌페이'와 멋지게 살고 싶었던 독거 노인 '아야'의 짦은 만남을 이야기한다.

말로 같은 탐정을 꿈꾸었으나, 결국 집 나간 동물을 찾는거나 불륜을 뒤쫓는 일을 하는 슌페이는 이력서가 빽빽하고 늘씬하고 예쁜 여자를 비서로 뽑는다. 하지만 막상 온 사람은 80을 훌쩍 넘긴, 아야. 이렇게 언발라스하고 쌩뚱맞은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몇 번의 일을 함께 하면서도 늘 앙숙인 두 사람. 하지만 슌페이가 아야를 내쫓지도 못하고, 끈질긴 아야가 그 사무실을 나가지도 않으면서 어처구니없고 유머러스한 둘의 관계는 지속된다.

우연히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슌페이, 드디어 진짜 말로처럼 탐정이 되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게 될 것인가? 

역시, 세상은 하드했다.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일 대 오의 적을 한방에 물리칠 수도 없었고, 대단히 재치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멋지게 탈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멋진 세상은 책이나 영화 안에서나 존재했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인간 슌페이와 아야는 서로에게 최선의 도움이 되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주 현실적인 방법으로 서로를 구할 수 있었던 것. 아야가 조직 폭력배에게 갇힌 슌페이를 정신 나간 손자 취급해서 데리고 나온 것이나, 슌페이와 아야가 오줌을 지릴 것 같이 두려운 상황에서, 아주 힘겹고, 처절한 방법으로 탈출한 사건 등. 조금도 멋지진 않았지만, 둘은 함께 했기에 서로를 위험에서 건질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처절하리만치 현실적이다.

 

피터팬처럼 꿈을 꾸며 살았던 슌페이와 아야, 이 나약한 둘은 꿈을 이루었다.

슌페이는 살인 사건을 해결했고, 아야는 그 조력자로, 비서로, 사건을 해결하는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신나는 모험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 아빠의 죽음을 보았고, 학창 시절에 따돌림을 당해 창고에 갇혔던 슌페이.

전쟁과 격동의 시절을 살아 가며 가족 하나 없이 독거 노인으로 살고 있으면서 질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아야.

이 나약하고 외롭고 보잘 것 없는 두 사람이 이 하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 그래서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친구로 어떤 존재가 되는지 <하드 보일드 에그>는 이 무거운 주제를 코믹한 터치로 가벼운 듯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슴을 때리는 여운.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힐 때도, 박장 대소를 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꿈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에서처럼 "멋지게"는 아니더라도, 둘은 분명 하드한 세상을 가장 멋지게 살아 낸 인물들이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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