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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 산다 ㅣ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평점 :
나도 도시에 산다, 그러나 이런 느낌을 갖지 못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난 정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이건 나에게 꿈만 같은 일이였다. 나름 시골스러운 작은 소도시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이모 따라, 엄마 따라 놀러 온 서울의 모습은 거침없었다. 처음 먹었던 KFC 치킨의 그 크리스피한 맛을 절대 잊지 못했다. 서울은 너무 볼것도 많고, 놀 것도 많고, 살 것도 많은 거대한 놀이동산이었다. 놀이동산 그 표현이 순간 정말 절묘하구나 하고 느껴버렸다. 자고로 사람이 성공하려면 "큰 물" 에서 놀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 일으켰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도시에 대해서 '놀이동산' 이외의 깊이 있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즐비하고 하늘 한 번 보기가 힘들며, 에스컬레이터 위라도 무조건 빨리 뛰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의 도시. 그런 게 나의 삶의 터전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시큰둥해질 무렵 <나는 도시에 산다> 포토 북을 만나게 되었다. 그윽한 흑백의 빛깔이 저 먼 세상에 대한 동경을 칭하는 것 같은 표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글을 박훈하님이 쓰시고, 사진을 이인미님이 찍으셨다. 둘의 빅 매치가 예상되는 감성 북을 만나보았다.
책의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다. 저자들이 부산 토박이임을 가만하여 글과 사진들은 모두 '부산'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급속한 근대화로부터 탈근대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부산이 갖는 독특한 위상 때문이었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양, 무역 , 물류 교통 지로써 우리나라 제 2의 거대도시로 성장하였지만 서울에 온갖 기능이 치중되어서 우리나라 저 맨 끝자락에 놓여 모든 것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산을 가본 경험은 많지 않지만 내가 본 부산은 현대적인 느낌보다는 아직 더 발전해야 할 것이 많은 도시였다.
그 느낌을 참 멋지게도 담아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도시에 살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찾아주는 기분이랄까. 누가 더러운 하수구에 핀 꽃을 그리워한단 말인가. 누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길을 외워서 다니고 싶어 한단 말인가. 매번 아파트 입구에 오는 후박나무 밑의 과일장수에게 달콤하고 시원한 과일 맛 이상을 기억한단 걸까. 과일 장수 이야기가 나와서 말하는 거지만, 모두가 똑같아지는 세상을 절묘하게 풍자하는 글이 참 시원스럽다. 자신의 고유성을 빨리 버리고 모두들 도시인들 입맛에 맞게 더 풍부하게 맛을 변모해버리는 과일들에게 "지겨워, 맛있는 건" 이란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순간 적으로 건물들도 도시에 맞게 똑같아지고, 아파트도 똑같아지고, 사람들 얼굴마저도 모두 똑같아지는 세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가 ? 그 기억들을 뚜렷이 단절된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단층 이라고 말하면서 신경숙님의 "외딴방"을 이야기 한다. 단절이라는 것을 향하여 끊임없이 대화의 물고를 트는 작가의 글 솜씨가 사뭇 부러워졌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사진 찍을 맛도 날 것 같은데 란 단편이 뚝 하니 떨어졌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세대 간의 경험 단절을 꼬집는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는 이러지 않았어! " , "내가 신입사원일 때만 해도 당신 같지는 않았네. " 라는 식의 소통. 현재 속에서 영원히 살아감을 우리는 깨닫고 진짜 소통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 도시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거기에 어울리는 사진을 수평으로 뚫여있는 건물 창틀에서 부둣가를 내다보는 풍경으로 잡아냈다. 흠, 너무나도 절묘하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포토 에세이를 접할 때마다 내게 중요한 것은 '포토'가 아니라 '글'이었다. 사진도 물론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사진에 대해서 얼마나 엄청난 글을 토해내느냐가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 마력을 이 책에서 느꼈다. 단 한장의 사진, 한장의 순간 포착에서 절묘하게 현재를 말하고, 도시를 말하며, 미래를 말하는 이 책은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글이 비단 미학적으로 아름답게만 묘사하지 않았다. 비판할 것은 풍자하듯 꼬집었다. 그것이 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오로지 검은 승용차뿐'인 세상에 소리쳐 외치고 싶은 예술가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이 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