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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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꿈이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때때로 꿈이나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것을 느끼고 있지 못하거나 인정하고 있지 못할 뿐 어떤 작은 실오라기 같은 꿈이나 희망을 품고 있다. 희망의 귀환을 펼쳐낸 저자 차동엽 신부는 희망을 예찬한다. 희망이 없더라도 아무 것이라도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붙잡고 희망하라고 이야기한다. 희망은 우리 지금 이순간에도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아닌가? 희망은 곧 꿈이자 현재 삼고 있는 목표다. 이 목표를 이뤄냈을 때 꿈과 희망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동엽 신부는 이책을 통해 '포옹하라', '춤추라', '심기일전하라', '즐겨라' 라는 4가지의 큰 틀을 통해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 특히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다고 말한다. 위에 언급했듯이 희망은 우리가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꿈과 희망이 없다면 삶의 의욕도 상실할 것이고, 점점 나태해지고, 나약해지는게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메시지를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꿈과 희망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난과 실패 등으로 인해 좌절한 사람들은 그 희망이 절망이 되고, 절망의 감정이 점점 부풀어올라 희망이라는 존재를 잠식해버리게 된다. 차동엽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좌절'이란 더이상 바라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 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서 어떤 희망이라도 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것은 지옥' 이며, '희망이 넘치는 곳은 천국' 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희망을 가질 때 느낄 수 있는 그 강력한 힘 때문일 것이다.

 

 피겨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피겨퀸' 김연아의 자서전에서 이런 문구가 있었다. "꿈은 꿈 꾸는 자의 몫이다." 라고 말이다. 맞다. 물론, 어느정도의 환경과 여건 그리고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건 꿈을 꾸는자가 그 꿈을 향해 얼마나 간절하게 염원하는지,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좌절과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이 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줄 수 없다. 그들이 먼저 좌절과 절망이라는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그렇게 일말의 노력을 통해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타인들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사람은 반드시 있다.

 

 꿈꾸고 희망하는 것. 이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일인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삶에 대한 의지를 놓고, 깊은 우울함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더이상 좌절하지도 절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좌절과 절망에 의한 감정을 꿈과 희망하는 것에 대한 감정으로 역 발상해보라.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고 벅찬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인생은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한번 사는 인생을 좌절과 절망으로 인해 낭비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처음이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탄탄대로의 길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부여잡고 꿈꾸고, 희망하자. 그것이 바로 변화의 시작이 되어 절망이라는 씨앗을 통해 희망을 열매 맺는 기적이 일어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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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맑아지는 낙서 명상, 젠탱글
카스 홀 지음, 김영수 옮김 / 인간희극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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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 학창시절에 교과서나 공책에 낙서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대부분 부질없는 낙서들 같다는 느낌 뿐이었고, 겉보기에도 지저분해보여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버릇이 자연스레 고쳐졌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 '버릇을 고쳤다기보단 그 버릇이 없어졌다.' 라고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 낙서는 그저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하는 안좋은 버릇이나 습관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나도 낙서에 대해서 언제부턴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처음 펼치지자마자 책장을 빼곡히 채운 입체적이면서도 빈틈없는 심오한 느낌의 그림에 살짝 거부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본것은 분명 낙서라기보단 그림이었다. 자고로 그림이란 여백의 미를 살려서 사물을 보다 정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내야 하는게 아니던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그림같은 것들을 처음본 소감은 참 정신이 없었다. 순간, "이건 뭔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계속 장을 거듭하고 더 많은 그림과 설명들을 보면서 책에 동화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을 하는 이유와 또 주제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보잘 것 없고, 지저분해보이는 낙서도 어떤 생각과 상상으로 인해 시작된다. 이 책의 저자 카스홀도 마찬가지였다. 티비를 보다가 혹은 기타를 치다가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시시때때로 느끼는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그리는 낙서 같은 그림. 하지만 이 낙서와 같은 그림에도 체계적인 패턴과 포인트가 존재했다. 말 그대로 내가 어렸을적 막 끄적이던 낙서들이 원시적이었다면, 이 낙서들은 과학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할 때 자신만의 포인트와 색을 가미하여 고유의 특성을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카스홀씨도 자신만의 상징적 의미를 낙서와 같은 그림에 남기고 있었다. 또한 원색 등을 통하여 색감을 입혀 문양 같아보이는 낙서와 묘한 조화를 보여줬다. 심리학적으로 그림이나 색감은 사람의 심리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낙서들은 심리학적으로도 해석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생각나는대로 떠오른대로 구상한 패턴과 색채를 통해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독특한 낙서였기 때문이다. 카스홀의 낙서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적 끄적였던 또한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그 낙서. 그 낙서를 하던 그 시점에 누구보다도 집중했고, 무엇보다도 몰두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젠탱글이 추구하는 형식의 낙서는 아니었지만 그러한 낙서를 통해 내 자신을 표현했었다. 그것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기도 했고, 나만의 독특함과 패턴을 살린 낙서도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낙서. 어쩌면 낙서를 하는 순간만큼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잊고, 낙서를 통해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승화시킴으로써 엉켜있는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주기 때문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낙서에도 힐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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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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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평소 집중력이 남들에 비해 많이 떨어짐을 느낀다. 그래서 어떤 책을 정독하더라도 내용 차제가 헷깔리기 일 수 였다. 거기에 소설이라고는 단편 소설만 주로 접해봤기 때문에 사실 읽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내가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허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극찬했고, 나 또한 이 이 책의 줄거리와 소개평을 보고 뭔가 굉장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마치 이 소설의 결말을 직접 확인해보지 못한다면 온 몸에서 진동하는 간지러움을 떨쳐내지 못할 것 같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자 부부인 에밀리와 닉은 이 둘은 첫 만남부터 서로가 통했고, 그렇게 사랑을 쌓아가며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둘은 어긋나고 있었다. 서로 대화는 하고 있었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는 듯 보였다. 처음엔 단순히 의사소통의 부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것 하나도 기념하기 좋아하고 의미를 두려는 에이미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아하지만 그래도 에이미에게 맞춰주려는 닉. 그래도 결혼 5주년 기념일까진 서로 표면적인 평화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헌데 결혼 5주년 기념일에 맞춰 에이미는 없어졌고,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남은 난장판이 된 집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 때 까지만 해도 닉이 뭔가를 꾸미지 않았을까? 결국 닉이 범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담당 경찰관들이 수사를 해나갈수록 닉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속속히 나왔으니까. 그래도 뭔가 반전이 있으려나? 라는 생각에 닉을 범인으로 단정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닉도 누구보다 답답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차분하고 의연한 모습이 어쩌면 진실된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에이미의 일기로 에이미의 이야기가 과거로 전개되고, 닉의 이야기는 현재로 이어져 전개되고 있었는데, 극이 마지막에 달할 수록 에이미란 여자가 무서워졌다. 단순히 유별나고 독특하지만 남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잘난 여자 '에이미' 가 아니었다. 그녀는 철저히 계획했고,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살인까지 저질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해까지 일삼는 에이미를 보며, 저 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싶었는데, 작가가 소설 중후반부에 에이미를 통해 전하는 "결코 등을 보여선 안되는 사람이 있다." 라는 말을 보면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잘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라고 느꼈다. 생각해보니 필자도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마찬가지로 가족들도 나에게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것이 심해지면 불신이 되겠지..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세상에 정신병을 앓지 않는 온전한 사람들중에 에이미와 같은 사람이 현존할까? 생각하게 됬고, 내 주변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만 할 것 같다. 어떤 것도 쉽게 단정지어선 안된다는 생각과 그리고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무언가에겐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실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과 경각심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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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오프닝 - 하루 한 끼, 당신의 지성을 위한 감성 브런치
김미라 지음, 조정빈 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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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시절 통학을 하던 저에게 라디오는 제 생활의 일부분이나 다름이 없었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유명인들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듣기 시작하던게 라디오를 자주 접하게된 계기가 되었지만요. 라디오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가 담겨있었어요. 치열하기 그지 없었던 제 학창시절에 숨통을 틔워줬달까요? 다른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와 세상 소식들을 라디오로 접하면서 제 자신도 돌아볼 수 있었답니다. 라디오가 제 인생을 바꿔주진 않았지만 제 인생의 활력소로 힘을 불어넣어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 당시 라디오를 접하지 못했더라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싶더군요. 항상 라디오로 하루를 시작하고, 라디오를 듣다 잠이 드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니까요.

 

 하루의 오프닝을 라디오로 시작하고, 또 저녁 시간에는 잔잔한 선율의 음악들과 몸이 나른해지게 하는 DJ들의 달달한 목소리에 하루의 피곤이 싹가시는 듯 했었죠.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소식들도 라디오를 통해 전해 듣게 되면 이상하게 귀담아 듣게 됬었답니다. 그래서 라디오를 한동안 놓치 못했었겠지요.

 

 헌데 오늘의 오프닝. 바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책 내용에 관련된 부분보다도 오늘의 오프닝을 장식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집필하는 작가들의 노고 말이에요. 항상 라디오를 청취하는 입장에서는 방송이 시작될 시간이 되면 방송이 흘러나오면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새로운 것을 깨닫는 과정들을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었죠. 오늘은 어떤 사연과 이야기가 소개될까? 오늘은 어떤 주제로 코너가 구성되었을까? 하는 기대감말이죠.

 

 학창시절에 라디오를 듣지 않던 친구들은 라디오를 즐겨듣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라디오는 그저 감성팔이용 아니냐?" 라구요. 그래서 전 이렇게 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가 즐겨보는 TV는 시간땜빵용이냐?" 사실 그 당시에 제가 라디오를 청취했었던 이유는 지루한 통학시간에 시간 땜빵용으로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유명인이 출연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라디오에선 시사, 교양 등 유익한 정보를 공유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전 편식만 하고 있던 셈이었죠.

 

 그래도 바쁜 학창시절 집에 도착하면 10시가 넘어가는 시간. 뉴스 소식 하나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시절 뉴스를 통해 세상 이야기를 스치듯 듣고 어렴풋이 기억날 때면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과의 괴리감을 느끼던 그 시절, 제 생활이라는 작은 울타리속에서 유일하게 세상과 저를 연결시켜주던 라디오라는 매개체. 그래도 라디오가 있었기 때문에 거센 바람속에서도 휘청이지 않고, 질풍노도와 같던 그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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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된다
이도준 지음 / 황소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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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인마다 몇 가지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무언가를 소망하고 갈구하며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처럼 인간은 꿈이 크던 작던 항상 꿈을 꾼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꿈을 어떻게 꾸게 된 것일까? 바로 누군가가 이뤄놓은 꿈이라는 결과물 때문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흔히 롤모델이나 우상 등 처럼 자신만의 아이돌을 정해놓고, 그 사람이 이루어놓은 업적 등을 본 받아 자신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허나 오늘날에는 노력만 가지고 꿈을 이룰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점점 자신의 꿈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여 남들과 같은 진로를 정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비슷한 스펙을 쌓고 비슷한 업종에 몸을 담구려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요는 정해져있는데, 공급량은 차고 넘쳐서 잉여가 되버린다. 요즘 세대들이 청년 실업,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고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사회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야기시켰고, 부추기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목표로 우리스스로가 인생의 길을 바늘 구멍과도 같게 만들고 있다. 

 

 물론, 꿈이 같을 수도 있다. 선망 받는 직업이 있으니 그것을 목표로 삼아서 진심으로 열의를 다해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남들이 하니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니까, 성공하는 길이라고 하니까. 라는 고정관념속에서 같은 길로 뛰어든다. 그렇다고 이것을 잘못된 행동이라고 꼬집기 힘들다. 다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짓인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허나 남들이 부추기는대로 자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은 길을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꿈이라는 것이 꼭 남들과 차별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희소가치와 대체불가성의 특색을 지니고 있기에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자신이 즐기며 나아갈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길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내일이 당연하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현재에도 계속 흘러가고 있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오늘, 지금 이순간에 살아있으매 꿈을 꿀 수 있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라고 말이다. 인간은 단 하나의 목숨으로 단 한번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가지고 그저 꿈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통탄한 일일까?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는 없다지만 꿈을 가지지 않는 것만큼 미련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꿈은 개인과 타인의 성정과 발전을 동시에 도모하며, 더 나아가 인류의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다. 혼자만의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뤄놓은 꿈을 어느 누군가도 꿀 수 있다. 어차피 혼자만의 꿈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 공존하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사회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서로 공존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옛 말에도 상부상조하며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미덕을 강조했고, 현대 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개인주의적으로 사회가 변화되면서 전처럼 강조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직 사회의 분위기는 인간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 대학에서도 '멤버링'을 통해 상호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는 교육시스템으로 최고의 대학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혼자보다 같이 우리라는 울타리속에서 더 빛이 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꿈은 꿈꾸는자의 몫이다. 꿈은 가져야 한다. 꿈 없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꿈' 때문이지 않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을 저버린 채 그저 흐르는 강물에 떨어진 낙엽이 되지 않길 바란다.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지금이라도 꿈을 꾸며 그 꿈을 향해 달려나갔으면 한다. 내가 이루어놓은 꿈이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책임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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