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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이별할 때 - 간호조무사가 된 시인이 1246일 동안 기록한 생의 마지막 풍경
서석화 지음, 이영철 그림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세상의 불길한 상상은 다 내 몫이었다. 긍정과 안심, 여유 등은 이미 나와 내 일상을 떠난 단어였고, 당연히 나는 늘 가파른 빙벽 위에 매달려 있었다. 체온은 뚝 떨어져 대낮에도 나는 벌벌 떨었다.
완쾌가 불가능한 부모, 형제가 있는 세상의 모든 핏줄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곳이 병원이든 요양 시설이든 내 품 안에 두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긴 모든 핏줄은 정말, 다 그럴 것이다.
나는 그렇게 16년을 살았다. 설렜다가 무서워 떨고, 어머니를 보면 다시 안도하고, 돌아서 오는 순간부터는 극심한 불안에 몸 안의 피란 피는 죄다 붉은 고드름이 되는, 16년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16년간 투병 중이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50대에 간호조무사가 된 시인이 있다.
그녀가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인의 문체로 담아낸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처음 컬처 블룸 카페를 통해서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책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너무 고민이 되었다.
책 소개만 봐도 얼마나 슬픈 사연들이 적혀 있을지 가늠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처음 책을 받은 날, 외출하며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책을 펼쳤는데 [사람 하나-할머니를 따라간 초록 개구리] 이야기부터 눈물이 나서 창피함에 누가 볼세라 황급히 책을 덮고 눈물을 훔쳤다.
'아, 이 책은 공공장소에서는 절대로 읽어선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결국 집에서 문 닫고 혼자 훌쩍 거리며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슬픈 이별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생의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하는 요양병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조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중에는 물론 안타깝고 슬픈 사연들이 많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혹은 옅은 미소를 머금게 되는 사연들도 여럿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또 다른 식구가 되어 주는 의료진들.
간호조무사가 된 시인이 1246일 동안 기록한 삶의 마지막 풍경 [이별과 이별할 때]는 유병장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삶을 매듭지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다.
작가의 말처럼 태어난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돌아가는 순간만큼은 내가 스스로 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민폐를 끼치는 걸 (가족에게조차)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스스로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기준에 부합하는 적절한 시기가 오면 그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행운(?)이 깃들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저런 병에 걸리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저런 병에 걸리기 전에 죽어야지'라고 생각한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행복했고 평생이 서로에게 고마웠던 사람들은 상대가 죽으면 죽음보다 삶을 말했다.
살았던 시간은 그래서 정직한 것이다. 사람은 죽었는데 그가 살았던 시간은 오히려 더 확실하게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 P.314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나의 에필로그를 어떻게 적을 것인가 하는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죽음보다 삶으로 말해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현실을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해본다.
이제 하루하루 살아가며, 이별과 이별할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