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입은 늑대 4 - 난 게으름뱅이가 아니야 팬티 입은 늑대 4
윌프리드 루파노 지음, 마야나 이토이즈 그림, 김보희 옮김, 폴 코에 도움글 / 키위북스(어린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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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신가요?”

언제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시나요?”

저는 근무 시간 중 받게 되는 깜짝 간식 선물, 퇴근 후 차려진 밥상, 시험 문제 출제 후 노트북 놓고 가볍게 퇴근할 때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때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생각하구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일하면서 행복했다는 이야기가 없네요? 평소 수업 준비를 하면서 수업 중 몰입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왜 행복을 떠올릴 때 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처음 해 본 고민인데, 아마도 행복은 슈팅스타 아이스크림 자체이기보다 슈팅스타 안에 들어있는 팝핑캔디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행복이라는 감정은 매일 내가 살아내는 일상이라는 기본값이 아닌 평안한 기본값 안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기분 좋게 깜짝 놀랄 팝핑캔디같은 이벤트에 크게 반응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여기가 바로 팬티 입은 늑대를 통해 고민하는 지점과 만나는 부분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쉽게 말하면, 팬티 입은 늑대가 하는 일들은 모두 팝핑캔디라는 말이죠. 슈팅스타 아이스크림 자체가 아니라요. 팝핑캔디의 역할이 그거잖아요. 아이스크림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달콤함을 줄 생각 자체가 없어요. 팝핑캔디 역할은 바로, 상대를 깜짝 놀래켜서 웃게 하는 것! 그것이 다거든요.

하지만 수상합니다. 누구든 달콤함을 주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정상이잖아요.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존재하며 가끔씩 웃게 해 주는 것에 누가 만족을 하냐구요. 누가 만족한다면, 그건 분명 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 정상이 아닌 늑대가 있습니다. 팬티입은 것도 수상한데. 일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 늑대가 어디서 난 것인지도 모르는 돈을 내고 국수를 사먹는 것은 더 수상합니다. 정상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늑대잡는 부대가 팬티입은 늑대의 족적을 따라다녀보니 정말로 이상합니다. 부글부글 낚시 권법으로 낚시꾼 토끼를 도와주고, 몸개그로 순록 의사 선생님를 도와주고, 아이들 인솔 보조 교사로 버드나무학교 교사들을 돕습니다. 뜨개질하는 부엉이 할머니를 도와 털실을 감습니다. 숲 속에서 팬티입은 늑대의 도움을 받지 않는 동물이 있다면 간첩일 정도입니다. 더더더 수상한 것은 온갖 종류의 일을 도우면서 돈은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비정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안되는 일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을 해야만 행복할까요?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해야만 행복할까요?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못하는 존재들은 게으름뱅이인가요?

돈이 되지 않는 봉사는 유익한 일이 아닌가요?

 

멧돼지 간수 말처럼 일해서 번 돈으로 을 좀 사야, 나도 먹고 아이들도 먹이며 생계 유지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생계 유지에서 행복이 나올까요? 생활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직장 생활, 매일 똑같은 일상은 우리에게 지루함이라는 형벌을 안겨 줍니다. 하지만 월급이라는 결과에 얽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냥 그러한 지루함들을 억지로 참아내죠. 그러니 어느 순간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도울 때,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매일 다른 삶과 만나 톡톡 튀는 즐거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쉬지 말고 일할 때가 아니라, 잠시 쉬며 상대를 어떻게 도울까 고민할 때 행복이 솟습니다. 월급을 위해 부서져라 일하면 병원비가 더 나갑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부서져라 뛰어다니면 누군가는 또 나의 필요를 채워 줍니다. 돌고 도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에, 우리들의 삶 역시 함께 돌고 돕니다. 결국 도움이 도움을 낳고 사랑을 낳고 의미를 낳습니다. 그렇게 삶도 행복도 당신과 함께라서 거대해 지고, 충만해 집니다.

늑대는 게으름뱅이였습니다. 무관심에 게으른 게으름뱅이. 이 게으름뱅이와 함께라면 어떤 모의 작당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매일 죽어가는 삶이 아닌 매일 톡톡 터지는 삶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대를 위한 팝핑캔디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팬티입은 늑대가 제게 선물한 행복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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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감성놀이 - 감정을 조절하고 마음을 나누는
그림책사랑교사모임 지음 / 교육과실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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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고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았을 뿐인데
자기 감정을 여유있게 콘트롤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무조건 그림책을 읽고 놀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바로, 이 책입니다.

‘그림책 놀이 제작의 천재들’이 모였다. 그들이 정교하게 구조화시켜 놓은 그림책 감성 놀이판이라는 장(場) 안에서 온 몸으로 신명나게 그림책을 맛보고 즐기는 ‘그림책 감성놀기의 천재들’이 보인다. 그 선생님의 그 학생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은 감성 놀이를 통해 경쟁이 아닌 협동으로, 나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너의 감정에 공감한다. 나의 생각을 잡아 채면서 너의 생각을 읽어 낸다. 창의적인 나의 생각 씨앗을 발견하고, 너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확인하며 확장된 사고로 나아가는가 하면, 나와 같은 생각을 확인하며 동지애를 나누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응원자가 되어 있다. 그렇게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이 책은 이렇듯 그림책을 통해, 놀이를 통해, 감정을 두드리고 자연스런 감정의 드러냄을 유도하여 균형을 잡게 한다. 감정의 기울기, 생각의 기울기, 관심의 기울기, 관계의 기울기를 사라지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에게 성장할 여백을 충분히 부여하는 그림책 감성 놀이라니! 이제 이 책을 읽은 선생님들이 ‘그림책 감성 놀이의 천재’가 될 차례다.

#그림책감성놀이
#그림책놀이책추천
#그림책사랑교사모임
#그림책을사랑하는교사들의바이블
#교육과실천
#이책으로실천해보세요
#가정에서도아이와함께이렇게놀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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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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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백년째 열다섯 살로 지내는 삶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가끔 불멸의 삶을 꿈꾼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 궁금하고

내가 보지 못할 세상이 궁금해서다.

언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생각을 하면,

무언가 모르게 무척이나 아쉬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을'이를 만나고 나서 불멸에 대한 소망을

가진 모습 그대로 내려놓았다.

야호의 우두머리 '령'을 구한 대가로 '종'야호가 되어 계속된 삶을 살아가는 가을이.

계속되는 하루하루를 다이어리 쓰는 것으로 그저 묵묵히 '견디는' 가을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함께 흘러가지 못하고 열다섯에 멈춰 있는 가을이.

중간고사를 따로 준비할 필요없을 정도로 그 나이의 삶이 그저 무료할 가을이.

목숨을 건진 대가가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가을이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구슬을 삼킨 순간 육체의 시간이 멈춘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령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는 듯한

악에 받친 가을의 외침과 발악이 귀에 쟁쟁하다.

그렇게 가을은 계속 아파한다.

오백년째 열 다섯인 자신의 삶을 저주한다.

언젠가 결국 떠나거나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인간과의 모든 관계에 대해서 기대함이 없다.

이토록 강력한 부정에너지도 해결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도움으로?

그것 봐. 너는 가을이야. 나는 상관없어.

네가 야호든 뭐든 다 괜찮아.

너는 가을이니까.

(p.166)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는 신우.

운명같은 만남의 연속 선상에서 만난 그의 존재가

그를 좋아하는 가을이의 마음에

결국, 봄의 햇살을 부여한다.

생을 끝내는 건 불행일까?

생을 계속한다는 건 축복일까?

야호로 살아간다는 건 저주일까 선물일까

(pp.198~199)

나에게만 멈춰있는 시간.

모두에게 흐르는 시간.

그 시간 자체가 질문이었을 가을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질문이었을 가을이.

춘희, 선화, 지현, 혜교, 진주, 지금의 가을로..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스스로를 축복하지 못했던 가을이가

신우를 만나 신우를 위로하며 신우에게 들려 준 말처럼

존재의 틀을 조금씩 깨고 나오기 시작한다.

 

 

좁고 어두운 곳에서 계속 그렇게 문 닫고 살면 답답해.

문 열고 나와야지.

(p.35)

성장통을 겪고 있을 십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존재가 질문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멀리서 답을 찾고 있을 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의외로 주변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라서 더욱 그렇다.

종야호가 되고서부터

가을이가 갖게 된 운명같은 질문.

"늙지 않는삶. 계속 되는 나의 삶은 저주가 아닌가?"

성장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질문은 언제나 통증을 동반한다.

성장하는 아이들은 질문이 불편해서 아프고,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기만 한 무한한 시간들의 무게가 무거워 아프다.

그래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성장통이 존재한다.

그러나 령, 휴, 수수, 유정, 신우와의 시간을 통해

가을이가 질문 자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시간을 무게를 버텨 온 용감한 가을이라서

숱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만남의 깊이를 더해가는 가을이라서

만남을 통해 답을 얻어나간다.

유한한 삶이지만

오늘이 계속될 것처럼 살고 있는 우리라서

사실 우리 한 명 한 명은 가을이인지도 모른다.

삶에 다치고,

시간에 다치고,

만남에 다치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분명 또 다른 가을이다.

그러니 우리도 가을이처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을 한 번 만나보길 바란다.

그리고 신우에게 해 주었던 가을이의 말을 빌어,

오백년째 가을이를 만났을 모든 존재를 대신하여 가을이에게 전한다.

"잘 성장했네!!

너의 성장통은 우리에겐 또 하나의 배움이 되었단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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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아이
조영지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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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싹싹싹!"

"으아악~~"
가위바위보에서 진 아이의 절규다.
"아싸!"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아이의 환호다.

내게 감자란,
가위바위보에서만 '특별 출연'하는 친구였다.
난 감자나 옥수수 같은 구황 작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감자를 쪄도 흥!
옥수수를 쪄도 흥!

그런 감자가 내 손에 책으로 들려 있다.
그 감자가 불안하게 날 쳐다 보고 있다.
자기에게 관심없는 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 감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보고 있다.
왜 내게 그런 대우를 해 왔던 거냐고 시위하는 듯이.
그런 감자들이 내게 한 소쿠리나 들려 있다.

감자아기가 태어난다.
처음 보는 낯선 세상을 마주하는 놀랍도록 크고 동그란 눈에서
여과없이 드러난 감자아기의 내면 상태를 본다.
세상을 신기해 할 새도 없이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음성.
"가림막 밑에서 절대 나오면 안 돼.
빛을 쬐었다가는 불량 감자 신세가 될 테니까.
불량 감자는 곧장 쓰레기통으로 가게 된다는 걸 잊지 마."
이것은 감자아기 너의 인생은 고난 뿐일 것이라고 말해주는
인생 드라마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호기심'이란 녀석은 예고편 속에 갇히지 않는다.
예상을 깨고 솟아오른다.
감자 아기의 '호기심' 성장과 함께, 뾰족.
감자 아기 머리에 '싹'이 솟아오른다.
싹 덕에 아기티를 툭툭 벗어 버린 감자아이.
그러나 누구도 바라는 성장의 방향이 아닌 '싹'의 돌출은
결국 살아 남기 위한 감자아이의 탈출로 연결된다.

상처 난 감자와의 탈출.
동지가 있는 모험.
그렇기에 두렵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마저 생기는 함께함의 순간들.
그 함께함의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두 감자아이들은
돼지의 시커먼 입을 피해,
불량 감자 추적대의 추적을 피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북쪽에서 까만 흙을 본 적이 있어.
거기라면 너희들이 꽃도 피울 수 있을 거다."
뾰옹.
붉은 수염 돼지의 말에 '희망'이 봉긋 솟아 올랐다.

솔라닌이라는 독성에 대한 지식은 감자를 알기 전부터,
감자를 터부시하는 분별적 지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감자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감자는 감자꽃에서 떨어지는 씨앗을 받아 심는 작물이 아니기에
감자꽃을 볼 필요가 없다는 실용적 지식은
감자꽃을 마주할 기회마저 삼켜 버렸다.
대신, 콘크리트 안에서 진행된 삶의 지속은
싹 난 감자를 폐기 처분의 대상 그 이상으로 볼 수 없는 근시안을 선물했다.

'내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눈을 감고 꿈을 꾸며 미래를 그리는 감자아이.
분별적 지식을 넘어,
실용적 지식을 넘어,
콘크리트 속 삶을 넘어,
그 너머의 삶을 그리는 감자아이 덕에 개안을 선물받았다.

"우리 까만 흙을 찾으러 가자!"
상처 나 감자의 언어가 다시 들린다.
"우리 너머의 삶을 그리러 가자!"라고.
"그래, 좋아!"
어쩐지 잘 해낼 것 같은 기분이다.
여전히 분별지, 실용지, 콘트리트 속 삶일지 모르지만
감자아이를 따라나서는 나의 마음은 이미 너머에 가 있으니깐.

감자꽃의 꽃말처럼 "감자아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감자아이
#조영지
#키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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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당 사탕의 맛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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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면 나도 갈거여~”
나의 외할아버지 이양재씨의 찐한 사랑고백이었다.

태양이 대지를 삼키려던 준비를 실행하던 날, 외할머니 김쌍례씨도 그렇게 대지에 삼켜져 버렸다. 뇌에 생긴 똬리때문이었다. 목숨을 하늘에 맡긴 채 수술이 진행되었고, 외할머니가 이대로 눈을 못 뜬다 하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수술 후, 흰 천으로 머리를 친친 감고 누구보다 평안히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는 할머니를 가족 모두 마주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눈 뜰때까지 식사를 물리시던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수차례의 사랑고백을 하신 것이다.
죽음보다는 그래도 사랑이었을까. 기적처럼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죽고 못살게 사랑한 애처가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젊었을 때 너무 잘생긴 외할아버지는 얼굴값을 하셨고, 6남매는 외할머니 차지였던 것이다. 그런 외할아버지가 반려자의 죽음 앞에서 참회하듯 사랑의 고백을 내뱉게 된 것이다. 이 역시 기적이었다.

눈을 뜨셨지만 모든 것이 온전했던 것은 아니다. 외할머니는 결국 죽음의 문턱을 다녀 온 흔적을 지닌 채, 반신불수로 사셔야만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처럼 두 분은 한 몸처럼 행동하셨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위대한 사랑의 승리라고 한 입 모았다.

나는 자주 외할머니 댁을 찾았다. 이유는 외할머니 댁에는 과자 ‘오란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이걸 ‘오카시’라고 부르셨고, 나는 조부모님을 보고 싶어 온 척 하다 마지막엔 결국 오카시있냐고 묻기 일쑤였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위해 장롱 한 켠에 검은 봉지 속 오란다가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놓으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나누어 먹으며 그렇게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반쪽 몸이 된 외할머니 수발을 15년 정도 드셨고, 그 누구보다 평온해 보이셨다. 두 분의 삶 속 시간은 그대로 멈춘 것만 같이. 그렇게 잔잔한 시간들은 결국 흐르고 흘러, 7살 차이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각각 87세 86세의 나이로 천국에 가셨다. 그리고 두 분의 천국행 일자는 마지막 사랑에 대한 확증인 양 10일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고정순 작가의 옥춘당을 보며 당연히 울었다. 이양재씨와 김쌍례씨의 애처롭지만 잔잔한 사랑이 기억나 울었고, 고자동씨와 김순임씨의 맞잡은 두 손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을 뚫고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삶의 승리가 엿보여 울었다. 옥춘당을 순임씨 입에 넣어주던 자동씨의 손길에서 오란다를 쌍례씨 입에 넣어주는 양재씨가 보여 또 울었다. 그 사랑들의 흐름 덕에 내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또 눈물이 났다. 고자동씨와 김순임씨의 몸에서 시간들이 빠져나가는 순간순간들이 아파 또 다시 울었다.

옥춘당의 사랑은 여러 존재들 사이 속 여러 다른 순간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랑들은 화려한 외피의 옥춘당처럼 시끌벅적한 사랑은 아닐지언정, 내피 속 단단한 여러 결들의 사랑의 흔적들은 옥춘당의 색처럼 다양할테다. 나는 그 사랑들을 사랑한다. 고정순 작가가 지닌 조심스레 마음을 울리고 눈을 울리는 삶의 모습들을 사랑한다. 옥춘당이 보여주는 사랑을 사랑한다.

#옥춘당
#고정순작가님
#내인생의레젼드작가님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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