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아이
조영지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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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싹싹싹!"

"으아악~~"
가위바위보에서 진 아이의 절규다.
"아싸!"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아이의 환호다.

내게 감자란,
가위바위보에서만 '특별 출연'하는 친구였다.
난 감자나 옥수수 같은 구황 작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감자를 쪄도 흥!
옥수수를 쪄도 흥!

그런 감자가 내 손에 책으로 들려 있다.
그 감자가 불안하게 날 쳐다 보고 있다.
자기에게 관심없는 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 감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보고 있다.
왜 내게 그런 대우를 해 왔던 거냐고 시위하는 듯이.
그런 감자들이 내게 한 소쿠리나 들려 있다.

감자아기가 태어난다.
처음 보는 낯선 세상을 마주하는 놀랍도록 크고 동그란 눈에서
여과없이 드러난 감자아기의 내면 상태를 본다.
세상을 신기해 할 새도 없이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음성.
"가림막 밑에서 절대 나오면 안 돼.
빛을 쬐었다가는 불량 감자 신세가 될 테니까.
불량 감자는 곧장 쓰레기통으로 가게 된다는 걸 잊지 마."
이것은 감자아기 너의 인생은 고난 뿐일 것이라고 말해주는
인생 드라마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호기심'이란 녀석은 예고편 속에 갇히지 않는다.
예상을 깨고 솟아오른다.
감자 아기의 '호기심' 성장과 함께, 뾰족.
감자 아기 머리에 '싹'이 솟아오른다.
싹 덕에 아기티를 툭툭 벗어 버린 감자아이.
그러나 누구도 바라는 성장의 방향이 아닌 '싹'의 돌출은
결국 살아 남기 위한 감자아이의 탈출로 연결된다.

상처 난 감자와의 탈출.
동지가 있는 모험.
그렇기에 두렵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마저 생기는 함께함의 순간들.
그 함께함의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두 감자아이들은
돼지의 시커먼 입을 피해,
불량 감자 추적대의 추적을 피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북쪽에서 까만 흙을 본 적이 있어.
거기라면 너희들이 꽃도 피울 수 있을 거다."
뾰옹.
붉은 수염 돼지의 말에 '희망'이 봉긋 솟아 올랐다.

솔라닌이라는 독성에 대한 지식은 감자를 알기 전부터,
감자를 터부시하는 분별적 지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감자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감자는 감자꽃에서 떨어지는 씨앗을 받아 심는 작물이 아니기에
감자꽃을 볼 필요가 없다는 실용적 지식은
감자꽃을 마주할 기회마저 삼켜 버렸다.
대신, 콘크리트 안에서 진행된 삶의 지속은
싹 난 감자를 폐기 처분의 대상 그 이상으로 볼 수 없는 근시안을 선물했다.

'내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눈을 감고 꿈을 꾸며 미래를 그리는 감자아이.
분별적 지식을 넘어,
실용적 지식을 넘어,
콘크리트 속 삶을 넘어,
그 너머의 삶을 그리는 감자아이 덕에 개안을 선물받았다.

"우리 까만 흙을 찾으러 가자!"
상처 나 감자의 언어가 다시 들린다.
"우리 너머의 삶을 그리러 가자!"라고.
"그래, 좋아!"
어쩐지 잘 해낼 것 같은 기분이다.
여전히 분별지, 실용지, 콘트리트 속 삶일지 모르지만
감자아이를 따라나서는 나의 마음은 이미 너머에 가 있으니깐.

감자꽃의 꽃말처럼 "감자아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감자아이
#조영지
#키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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