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당 사탕의 맛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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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면 나도 갈거여~”
나의 외할아버지 이양재씨의 찐한 사랑고백이었다.

태양이 대지를 삼키려던 준비를 실행하던 날, 외할머니 김쌍례씨도 그렇게 대지에 삼켜져 버렸다. 뇌에 생긴 똬리때문이었다. 목숨을 하늘에 맡긴 채 수술이 진행되었고, 외할머니가 이대로 눈을 못 뜬다 하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수술 후, 흰 천으로 머리를 친친 감고 누구보다 평안히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는 할머니를 가족 모두 마주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눈 뜰때까지 식사를 물리시던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수차례의 사랑고백을 하신 것이다.
죽음보다는 그래도 사랑이었을까. 기적처럼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죽고 못살게 사랑한 애처가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젊었을 때 너무 잘생긴 외할아버지는 얼굴값을 하셨고, 6남매는 외할머니 차지였던 것이다. 그런 외할아버지가 반려자의 죽음 앞에서 참회하듯 사랑의 고백을 내뱉게 된 것이다. 이 역시 기적이었다.

눈을 뜨셨지만 모든 것이 온전했던 것은 아니다. 외할머니는 결국 죽음의 문턱을 다녀 온 흔적을 지닌 채, 반신불수로 사셔야만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처럼 두 분은 한 몸처럼 행동하셨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위대한 사랑의 승리라고 한 입 모았다.

나는 자주 외할머니 댁을 찾았다. 이유는 외할머니 댁에는 과자 ‘오란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이걸 ‘오카시’라고 부르셨고, 나는 조부모님을 보고 싶어 온 척 하다 마지막엔 결국 오카시있냐고 묻기 일쑤였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위해 장롱 한 켠에 검은 봉지 속 오란다가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놓으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나누어 먹으며 그렇게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반쪽 몸이 된 외할머니 수발을 15년 정도 드셨고, 그 누구보다 평온해 보이셨다. 두 분의 삶 속 시간은 그대로 멈춘 것만 같이. 그렇게 잔잔한 시간들은 결국 흐르고 흘러, 7살 차이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각각 87세 86세의 나이로 천국에 가셨다. 그리고 두 분의 천국행 일자는 마지막 사랑에 대한 확증인 양 10일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고정순 작가의 옥춘당을 보며 당연히 울었다. 이양재씨와 김쌍례씨의 애처롭지만 잔잔한 사랑이 기억나 울었고, 고자동씨와 김순임씨의 맞잡은 두 손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을 뚫고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삶의 승리가 엿보여 울었다. 옥춘당을 순임씨 입에 넣어주던 자동씨의 손길에서 오란다를 쌍례씨 입에 넣어주는 양재씨가 보여 또 울었다. 그 사랑들의 흐름 덕에 내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또 눈물이 났다. 고자동씨와 김순임씨의 몸에서 시간들이 빠져나가는 순간순간들이 아파 또 다시 울었다.

옥춘당의 사랑은 여러 존재들 사이 속 여러 다른 순간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랑들은 화려한 외피의 옥춘당처럼 시끌벅적한 사랑은 아닐지언정, 내피 속 단단한 여러 결들의 사랑의 흔적들은 옥춘당의 색처럼 다양할테다. 나는 그 사랑들을 사랑한다. 고정순 작가가 지닌 조심스레 마음을 울리고 눈을 울리는 삶의 모습들을 사랑한다. 옥춘당이 보여주는 사랑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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