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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까치글방 132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서성철 옮김 / 까치 / 1997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중남미 각국의 역사책을 뒤지다가.. (우리나라 인문학 수준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OECD를 그렇게 외치는 나라에서 이제 이 정도면 세계 각국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어야 할텐데... 여행기, 분야에 따른 관련 책은 몇 권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변변한 중남미 각국의 역사책이 없다는 사실에 통한을 금치 못했다. 이런 지경에 있으면서도, 우린 스스로 선진국대열이라고 강요하고 있으니...그게, 마치 절묘하게 법을 이용해 땅 사고 팔아 부자 된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라고, 상류층이라고 으스대는 것과 무엇이 다른 가?) 그래도 이 나마, 이정도의 역사책이라도 만족하자 하며, 그냥 뭉뚱거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라는 제목에 눈길이 갔고, 무엇보다 어라! 지은이가 멕시코의 그 유명한 작가, 아니 석학인 카를로스 푸엔테스라는 것에 무조건 ”콜“했다. 하긴, 내가 영어를 잘했으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동 지역의 무수한 저서들을 직접 접할 수 있었을 터이니, 내 무식 탓이라 돌리면 그만 이겠다만....


책 선택의 이유를 장황히 설명하는 것은 일단 딴지부터 걸어야겠다는 마음에서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라는 이 책의 원제는 “ The Buried Mirror : Reflections on Spain and the New World"다. 워낙 영어에 대한 급체가 있는 내가 뭐 영어원제를 가지고 폼 잡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어로 된 책제목을 접하고, 당연히 남미고대사부터 각국의 독립, 그리고 수난의 현대사 쯤으로 구성되어 있겠지 하고, 게다가 저자의 명성도 합쳐져서 고른 이 책이 글쎄, 읽기 시작하는 데, 좀 이상하다. 처음부터 스페인 고대사부터 언급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더니 참고문헌과 역자 후기를 제외한 본문 441면에 거의 60%이상은 스페인역사, 유럽사, 그리고 짧기는 하지만, 미국에 대한 언급이다. 한 300면을 읽다가 궁금해서 역자후기를 먼저 읽었다. (내 독서습관은 모조건 순서를 존중한 처음부터다.)


역자는 “묻혀진 거울이라는 시적인 제목을 버리고.. ... .. 제목을 택한 것은 그러한 은유적인 제목이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이 책의 성격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우려..... 나의 생각이 지나치다면, 저자와 독자들의 양해를 바랄뿐이다”라고 제목을 “과학적인 무미건조”하게 바뀐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은유”야 그렇다 치고라도, 어떤 것이 “과학”적이며, 어떤 것이 “무미건조”한건지.. 그리고 어떤 것이 “왜곡”될 수 있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혹시 미끼 상품처럼 나처럼 동 지역의 역사에 목마른 사람들이 주변의 책이 없음을 알고 이것이라고 택하라고 한, 그런 의도는 아니였을까? “양해”로 선수를 쳤으니..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으나, “왜곡”은 독자가 아니라, 역자 자신이 하고 있었다고 지적해야 하는 것은, 미친듯이 이 책에 빠져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이면지에 단어들을 한번씩 메모하며 외우고 싶을 정도로 “자자이 비점이요, 구구이 관주(춘향가 중 이몽룡 과거시험 답안지를 떠 올릴 것)”인 이 책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라는 쌩뚱맞은 제목으로 인해 얼마나 왜곡되고, 얼마나 그 감동이 반감되는 지를 역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나의 심통이다.



책 얘기로 들어가자. 젊은 시절,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소설에 미쳐있던 내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소설이 기억에 없는 것이 부끄럽지만, 분명, 남미 단편집 등 종합선물세트를 통해 한 두 번 접한 것은 확실하다. 낯설지 않은 이 이름은 가끔 문학과 문화사를 얘기하는 많은 글 속에서 아주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고... 그러니,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로 인지하고 있는 저자의 역사책, 나아가 문화사책 역시 그 이름값에 대한 적정한 칭찬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이 책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후 500주년이 되는 해인 1992년에 출판된 책이다. 침략당한 역사를 주년을 따져 가며 점검해야 하는 것은, 기념비적이라기 보다 자기반성적인 요소가 강할 듯 한데, 저자는 이 몹쓸, 소위 “주년”과 관련한 "묻혀진 거울“이라는 TV 다큐에 관여하면서, 그걸 기회로 그 프로그램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다시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러니까 고대 남미의 신화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울“을 다시 역사로 불러내어 그 거울을 통해 스페인, 그리고 중남미를 비추어 보고.. 그 결과, 우리 역사가 얼마나 부끄럽게 반복되고 있는 지, 아니, 한심할 정도의 이 부끄러움증이 계몽시대, 평등사상, 등등을 거쳐 지금 인권이 최고조로 올라와 있다고 주장되고 있는 이 시대에서도 역시,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고, 자행되고 있는 지에 모순에 대한 성찰이며, 고백이며, 경고이다.


제 1부 “성모와 황소”에서 고대 스페인의 신화부터 출발한 이 책은 제 5부 “미완의 작업” 중 라틴 아메리카의 오늘과 현대의 스페인, 그리고 미국과 히스파닉에 대한 간단한 언급까지 놀랄만한 자료와 꼼꼼한 대비, 그리고 무엇보다 비록 번역본이긴 했다만, 충분히 그 원문의 아름다움이 전달될 수 있는 기막힌 비유, 적절한 인용, 그리고 몸서리 칠 정도의 예견과 식견으로 가득차서 조금만 머리가 좋다면 아마 이 책 한 권만 가지고도 스페인, 아니 유럽과 중 남미, 아니 소위 말하는 신대륙.. 더 나아가자면 세계화와 지역화라는 명제로 까지 유추가 가능할 것이며, 종내는 우리 세계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낼 지까지도 생각하게 해주는 혜안이 들어있다. (도대체 가끔씩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뛰어난 문장력과 분석은 어떤 노력의 결과란 말인가?) 책 442p부터 463p까지 장장 22면에 걸쳐서 소개하고 있는 각 장별 참고문헌의 목록, 간간히 한 두 줄의 저자의 해설까지 부가되어 있는 그 모든 지식의 훌륭한 집약을 통해, 누천년의 두 대륙의 지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아무리 짧게 요약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적어도 이 책에서 받은 나의 감동에 대한 현란한 수사밖에는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종내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스페인을 비추어 보면서, 남미를 들여다 보고, 그 정복의 역사, 마치 오래전 그들이 당했던 그 절차를 그대로 아니, 더욱 발전한(?) 남미정복사를 들여다 보면서 정말 끝없은 이 탐욕의 역사에 대한 어찌 할 수 없는 분노는 가라앉힐 수가 없다. 그걸로 끝인가? 프랑스, 미국.. 그리고 메스티소의 탐욕.. 이제 동일 유전자들이 벌이는 오직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돈으로 사온 아프리카 노예들은 밑천이 아까워 먹을 것이라도 주지만, 인디오들은 들인 비용이 없으니 굶겨 죽어도 되는” 그 정복자들의 인식을 그대로 담습하면서 자해하던 독립이후의 역사들.. 결국 1970년이 넘어서야 인권이라는 화두가 대두되었지만, 그것이 세계화라는 암흑과 같이 하면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는 이 질곡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그걸 과연 중 남미 인디오들의 자각과 시민의식으로 돌릴 것인가? 유럽은? 엥글로아메리카는? 아시아에서는? 규모와 기간이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같은 상황에서, 같은 절차와 결과를 낳고 있는 이 인류사의 비극은 도대체 어떤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이런 자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저자가 바라는 바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단순히 서로 투영하고 있는 인류역사의 슬픈 자화상만이 아니다. 직접 경험 하려고 하면 평생을 걸려도 못 미칠 것 같은, 본문에 소개된 예술작품들, 시대별로 조망하고 있는 동 지역의 문화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작가의 해박함이 부러울 정도이고, 그 시대별 문화조류가 양 대륙에 미치고 있는 영향과 결과에 대한 결론내기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게다가 이 책은 비록 10년전 조판형식을 띠고 있기에 판면이나 활자크기가 요사이 신간이 주는 편리함에 있어서는 다소 부족했다만, 몇 페이지 넘기면 바로 본문과 연결되어 있는, 본문내용을 보다 확연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수많은 그림, 사진 등의 도판들의 가치만 보더라도 흠잡을 데가 없으니, 이런 저간의 느낌들을 정리해 보면, 이 책은 매우 정성이 들어 간 꼼꼼한 집필과정을 거쳤다는 것에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런 연유로, 독서의 즐거움을 꼽으라면, 이런 좋은 책을 우연히 만날 때, 부딪치는 그 신선한 느낌의 물결 높이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이 책을 혹시 읽어야 한다면, 또 하나의 부록을 권하고 싶다. 나는 이 부록과 본문을 함께 한 꼴이 됐는데, 그 부록이라는 것이 EBS의 다큐프라임 6부작 “안데스”란 TV 프로그램이다.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남미 인디오들의 오늘을 다룬 이 다큐가 시간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던 모든 지식의 궁금증을 나는 다행히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서 너무 잘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시청자 입장에서야 6부작으로 끝내기는 너무 아쉬웠으나, 방송사 사정이 있을 터라 더 이상 조를 수는 없으니, 그 부족분을 바로 이 책으로 감싸 안으면 될 것이다.


글을 닫자니 왠지 서운해, 본문 중에 이 두 대륙을 특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장들은 물론 아니지만, 요사이 내 개인사와 관련된 혼란을 달랠 역사속에서의 충고가 몇 구절 눈에 들어와, 그 문장을 올리는 것으로 이 감동을 맺으려 한다.


1534년, 인문학자였던 후안 루이스 비베스는 에라스무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저는 입을 여는 것과 침묵을 지키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위험한 지 알수가 없군요”


지각될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이 침묵과 밤에 싸여 존재한다면, 시인은 침묵과 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게 될 것이다.


호베야노스는 말했다 “인간의 속성으로서 나의 나약함을 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양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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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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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살고 있는 곳. 태어나고. 성장하고.. 아마 별일이 없다면 결국 이 곳에서 나의 삶을 마감할 지도 모르는 곳. 서울. 그러고 보니 정말 한번도 한달이상 이 도시를 벗어나 살아 본적이 없는 곳이다.  그것도 종로에서 태어나 소위 강북지역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덕분에 강북지역의 골목들. 재래시장, 오토바이 한 대 겨우 빗겨나갈 그 골목길과 가파른 산동네의 풍경들을 기억속에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커미셔너로 만난 정기용 선생는 그 분의 의사와 관계없이 난 팬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 당시 "방(Room)"이란 주제로 건축전에 참가했는데, 작가선정, 전시준비, 그리고 현지에서의 전시진행 중에 간간히 마주치며 보여 주었던 그를 통해서 나는 건축가가 얼마나 철학적이어야 하며, 아주 깔끔한 신사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는,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대지와 우주를 소통하게 하는 철학자였고, 주변의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아주 매력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몇년간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글 중, 서울에 관계된 것들만 모아서 얼마전에 책을 발간했다. "서울이야기"는 철학자 정기용이 서울의 구석구석을 보여준 글이다. 서울의 역사와 긴 골목길속에 숨어있는 기억들을 하나 하나씩 꺼내어 놓았으며, 용산기지 등 서울이 안고 있는 곳곳의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성실하게 제시한 그의 보물창고이다.

"서울은 아직 열어본 적이 없는 의미의 창고이며, 오직 쓰기만 하고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대하소설"이라고 명명한 서울을 그는 정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마치 이 넓은 도시를 뒤곁의 텃밭처럼 가꾸어지기를 소망했으며  그 속에서 누대로 이어져 온 우리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서울이야기 하면 흔히 표면적 추억과 상식으로 일관된 이야기들을 해 오곤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마치 고고학자처럼 서울의 지층에 각 단층마다 꼭꼭 숨어있던 지나간 삶의 화석들을 조심스런 손길로 발굴해 냈으며 그 기억의 징표들을 가지고 서울을 우주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로써 반짝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철거와 함께 소멸되는 기억들, 투기라는 광기앞에서 무기력해지는 땅의 개념들에 대한 안따까운 시선으로 서울의 부분부분과 주요 건물들에 대한 그의 성찰을 대하면서 건축적 이론보다도 바슐라르의 아름다운 사고를 냄새맡았다면 나의 억지인가?

당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면, 적어도 이 도시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아니 만일 서울을 사랑하고 싶다면 반드시, 정말 반드시 읽어야 할. 모처럼 아주 좋은 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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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야나
C. 라자고파라차리 지음, 허정 옮김 / 한얼미디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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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에 대한 책들은 선뜻 대하기 어려웠다. 워낙 풍부한 힌두의 이야기를 과연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겁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그 발음하기도 어려운 (물론 한글로 번역되긴 해도.) 그 많은 지명과 이름들을 읽고나면 바로 잊어버려 결국, 읽으나 마나한 헛된 노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있었다. 더구나 인도하면 떠오르는 신비..운명이란는 단어와 함께.. 지속적인 공부없이는 한 두권의 책으로 결국 포기할 바에야 시작도 말자는 얄팍한 계산도 숨어 있었다. 

아시아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이 시작된 몇년이래.. 나는 여행이든 관심의 마지막을 인도로 목표 삼았다. 그것은 어쩌면 인도를 시작하고 나서 아시아를 이해 하기 빠를 수 있다는 일반적 지침을 역행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도리어 나에게는 그것이. 주변 국가에 숨어 있는 인도를 하나씩 찾아내고 그 종합편으로 인도를 부딪치는 것이 도리어 유리할 것 같다는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인도는 늘 아시아로 얘기된다. 그런데 아시아.. 아마 그건 인도에서 발현한 종교들이 아시아 전역을 자리잡고 있는 현재를 감안해서 나눈 지역성이 아닌가 한다. 생겨먹은 모습이나 교역의 노련함등을 본다면 사실 중앙아시아, 그러니까 서역이라는 지역성이 더 가깝지 않은가? 정신적인 아시아와 지도로 구분되는 아시아의 경계에 대해 스스로 정의내릴 때가 된 것 같다만서도....

그런데. 결론적으로 아시아로 정의하자. 아리아 인들이 코카서스 언덕을 지나 어찌어찌 해서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던 간에, 토호세력의 역사적 창궐이던 간에.. 이 커다란 문명 덩어리를 서양이라는 범주에 넣기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로 시작된 나의 "아시아 문명 이해 프로젝트"는 늘 위대한 아시아를 주창하곤 하지만, 기원전에 서사시의 동일한 시대에  만들어진 신화덩어리를 이제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내겐 행운이다. 호모의 일리야드.. 그리스 로마 신화... 각가지 신들의 잔치와 엮임. 그리고 그들이 내려다 보며 즐기고 돕고, 삐치는 인간사..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섭리와 운명 앞에서 영웅들이 헤쳐나가는 법도와 숙명...."라마야나"는 그 중의 하나인 위대한 아시아의 신화이다.

라마 - 비슈누신의 화신. 야나- 이야기.행적(GOING). 즉 라마의 행적..인생.. 뭐.. 이런식인 책은.. 라마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신들이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고, 그 공으로 시타와 결혼하고, 왕위에 눈이 먼 작은 어머니의 음모로 숲으로 아내와 함께 쫓겨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한인 14년차에서 1년이 남아있는 시기. 저기 먼 남쪽의 란카(스리랑카)를 다스리고 있는 라바나에게 아내가 납치당하고 1년만에 구출해서. 고향인 아요디야로 돌아와 코샬라왕국을 다시 다스리게 된다는.. 뭐 그런 인생역경을 그린 동화, 아니 신화다.

인터넷 서점에서 판본을 뒤지다가, C. 라자고파라차리가 영문판으로 간행한 것을 골랐는데. 원전.. 원작을 가끔 거론하면서 훌룡한 묘사를 칭찬하는 것을 보면 원전이 궁금하기도 했으나, 어차피 샨스크리트어로 읽지 않을 바에야 그 묘사를 이해할 길이 없으니. 그냥..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 신들과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있었다. 이걸 시작으로 그저 혹시 힌두교 등.. 앞으로 만날 많은 아시아의 문화파편과의 조우시 그저 조금이나마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하는 바램 뿐이다.

백년전의 사람도 가끔 무시하는데.. 도대체 몇 천년전에.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이 역사의 산물앞에서 나는 어디까지 무릎을 구부려야 하는 것인지. 우리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 머리속에 있는 상상력이라는 것, 자연을 향한 끊임없는 경배와 숭배.. 그리고 그 결과로 얻는 문명.. 문화.. 역사. 아 정말 난,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선대가 이루워 놓은 이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참으로 경이롭고 경이로울 뿐이다.

인도에서는 라마야나를 구송해주거나,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 자체로 죄와 슬픔에서부터 구제당한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완독했으니.. 내 죄에서.. 내 슬픔에서 나를 놓을 수 있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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