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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평점 :
5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살고 있는 곳. 태어나고. 성장하고.. 아마 별일이 없다면 결국 이 곳에서 나의 삶을 마감할 지도 모르는 곳. 서울. 그러고 보니 정말 한번도 한달이상 이 도시를 벗어나 살아 본적이 없는 곳이다. 그것도 종로에서 태어나 소위 강북지역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덕분에 강북지역의 골목들. 재래시장, 오토바이 한 대 겨우 빗겨나갈 그 골목길과 가파른 산동네의 풍경들을 기억속에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커미셔너로 만난 정기용 선생는 그 분의 의사와 관계없이 난 팬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 당시 "방(Room)"이란 주제로 건축전에 참가했는데, 작가선정, 전시준비, 그리고 현지에서의 전시진행 중에 간간히 마주치며 보여 주었던 그를 통해서 나는 건축가가 얼마나 철학적이어야 하며, 아주 깔끔한 신사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는,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대지와 우주를 소통하게 하는 철학자였고, 주변의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아주 매력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몇년간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글 중, 서울에 관계된 것들만 모아서 얼마전에 책을 발간했다. "서울이야기"는 철학자 정기용이 서울의 구석구석을 보여준 글이다. 서울의 역사와 긴 골목길속에 숨어있는 기억들을 하나 하나씩 꺼내어 놓았으며, 용산기지 등 서울이 안고 있는 곳곳의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성실하게 제시한 그의 보물창고이다.
"서울은 아직 열어본 적이 없는 의미의 창고이며, 오직 쓰기만 하고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대하소설"이라고 명명한 서울을 그는 정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마치 이 넓은 도시를 뒤곁의 텃밭처럼 가꾸어지기를 소망했으며 그 속에서 누대로 이어져 온 우리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서울이야기 하면 흔히 표면적 추억과 상식으로 일관된 이야기들을 해 오곤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마치 고고학자처럼 서울의 지층에 각 단층마다 꼭꼭 숨어있던 지나간 삶의 화석들을 조심스런 손길로 발굴해 냈으며 그 기억의 징표들을 가지고 서울을 우주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로써 반짝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철거와 함께 소멸되는 기억들, 투기라는 광기앞에서 무기력해지는 땅의 개념들에 대한 안따까운 시선으로 서울의 부분부분과 주요 건물들에 대한 그의 성찰을 대하면서 건축적 이론보다도 바슐라르의 아름다운 사고를 냄새맡았다면 나의 억지인가?
당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면, 적어도 이 도시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아니 만일 서울을 사랑하고 싶다면 반드시, 정말 반드시 읽어야 할. 모처럼 아주 좋은 글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