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린저 평전 - 영원한 청춘의 상징,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평전의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2004년부터 꾸준히 J. D. 샐린저에 대한 웹사이트 ‘DeadCaulfields.com를 운영해 왔으며 『샐린저 평전』으로 2011년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2012년에는 ‘휴머니티스 도서상’을 수상했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아홉개의 이야기] [프래니와 주이]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를 읽고 깊이 파 보십시오. 그 작품들 속 깊숙이 각인된 작가의 영혼에 감사하며, 그를 다시 한 번 경험해 보십시오.” 라고 케니스 슬라웬스키가 저자 서문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샐리저 평전/케니스 슬라웬스키/ 김현우 옮김/ 민음사] J.D. 샐린저의 삶과 주요 작품(거의 모든 작품)을 줄거리 와 그 작품의 탄생 배경에서 출판이 되기까지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

그러나 이 평전은 어떤 의미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참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목차의 순서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소니의 기숙학교’에서 시작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정점을 찍고 ‘호밀밭 지나오기’로 구성하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튼 코필드는 기숙사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면서 혼동과 갈등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샐린저 역시 퇴학의 경험 갖고 밸리포지에 입학하게 된다. 이 학교와 그때의 경험들이 홀튼 코필드가 퇴학 당한 기숙학교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을 독자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일찌감치 작가의 길로 들어선 샐린저는 전쟁이 발발 하자 자원입대를 한다. 그리고 그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장인 “누구에게든, 무슨 이야기든 하지 말기를, 그러면 모든 이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니까” 를 읽을 땐 샐린저와 2차 세계대전을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그 만큼 전쟁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J.D.샐린저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쓰느 일은 일종의 정화과정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이 끝난 수에도 줄곧 짊어져야 했던 부담감에서 벗어났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사선이 파괴시킨 샐린저의 믿음, 암흑과 살육으로 붕괴된 그 신념은, 동생의 죽음 이후 마찬가지로 믿음을 읽어버린 홀든의 모습에 반영되었다.--.홀튼 콜필드의 투쟁은 샐린저의 지적여정을 반영하고 있다. 저자 샐린저와 주인공 콜필드가 겪은 비극은 동일 한 것, 바로 순수함의 상실이다. 홀든은 온통 가짜뿐인 어른들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것을 경멸했다. 샐린저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목격하고 깊은 무기력감에 빠졌다. 하지만 두 인물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이 짊어진 짐과 맞섰고, 똑같은 계시를 경험했다. 홀든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희생하지 않고도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면, 샐린저는 사악함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모두 저주를 받은 것은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다.(p308)

 

1951년 [호밀밭의 파수꾼]은 나오자 마자 논쟁에 휩싸여왔다. 특히 소설의 애매한 결말 부분은 독자들 스스로 그 자리에 각자의 의심과 열망, 그리고 불만족을 채워 넣으므로써 저마다의 홀든을 만들어나갈 여지를 주었는데 그 결과 2009년 호밀밭의 파수꾼의 속편이라고 주장하는 작품, [60년후: 호밀밭 지나오기/프레드릭 콜딩]가 세간에 나와서 홀든 콜필드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샐리저가 소송을 할 때, 언론은 샐린저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를 위해 수정헌법 제1조를 희생시키려 한다고 비난하며 소송중단을 요구하기 까지 한다. 이미 홀든 콜필드는 독자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독자 한명 한명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 창조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p568)

 

 

꾸준한 노력의 작가

 

샐린저는 자신이 밸리 포지에서 작가가 되었다고 종종 말했다(p35) 일찍이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휘트 버넷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작가 생활 내내, 그는 버넷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글 뒤에 숨어 있으려고 애썻다. 절대 독자의 경험과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독자와 이야기 속 인물 사이의 관계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p51)

 

작가로서 샐린저는 까다롭고 근면한 작가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입대한 샐린저는 꾸준히 작품을 써서 발표한다. 참혹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심지어 휘르트겐 숲에서도 “시간만 나면 글을 쓰고 있다.” 라고 ‘빈 참호’만 있으면 들어가 글을 쓴다고 했다 (p169) 훗날 샐린저의 방첨부대 동료들은 그가 틈만 나면 글을 쓰기 위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전쟁 후 어느정도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을 때도 화가인 버트런드 이튼이 증언하듯이 그는 작품을 쓰는 것과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출판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리는 개처럼 일합니다. 자신의 작품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고, 다시쓰는 섬세한 장인이지요” (p463)

1953년 뉴햄프셔 주 코니시의 언덕에 집을 짓고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자 샐린저는 집 근처에 자기만의 집필실(벙커)을 짓고 거기서 글을 썻다. 당연하게도 그의 선택은 사생활에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위해 그런 희생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 가족과도 거리를 두는 그런 생활을 고집했다는 것은 그의 야망이 얼마나 확고한 것이었는지 말해준다. (p396)

작가로서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보다는 완벽한 글을 쓰고자 했던 그의 야망과 끊임없이 쓰고 고치는 그의 열정이 [호밀밭의 파수꾼] 과 같은 작품을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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