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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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만나다

 

내가 시인 백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큰애였나 작은 애였나의 교과서에 실린 [수라] 라는 시였다. 방에 나온 거미를 방 밖으로 버렸는데 날이 너무 차서 그게 마음이 아팠는데 이게 웬걸 거미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거미들을 방밖으로 내몰면서 마음 아파한다.

왠지 확 공감이 왔다. 제목이 수라 [불교에서 싸우기를 좋아하는 신]다. 거미가 격을 찬밤을 걱정한것일까? 그것을 보고 마음이 편하지 못한 시인의 마음이 수라같다는 것이었을까?

언듯 본 시였지만 참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수라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날인 것을 나는 아모 생각없시 문밖으로

쓸어벌인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곧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벌이며

찬밖이라도 새끼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설어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

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서진 곧으로 와서 아물걸인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손에 올으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벌이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곻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벌이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맞나기나 했으면 좋으렸만 하고 슳버한다

 

이번에 백석평전(안도현 지음/다산책방)을 읽게 되었다. 시라고는 달랑 한편밖에 모르면서 평전을 읽자 하니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았다. 시인 안도현은 스무살 무렵, 백석의 시 [모닥불]을 읽고 백석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평전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마치 백석인 듯 백석을 보고 있 듯 써나간 글은 백석의 시를 적절히 인용하며 백석의 시와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나에게는 다소 정신없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시를 정리한 “시인 백석(송준 지음/흰당나귀)”를 같이 읽었다.

 

나쁜 남자

 

난 아줌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순응하며 한 남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역시 그럴꺼라고 기대하고 사는 평범한 아줌마다. 그래서 나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사랑을 찾아다니는 남정네들을 이해 하기는 싫다.

예전에 [달과 6펜스]를 읽고 주인공이 처와 자식을 버리고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을 때 언듯 자신의 꿈을 쫏는 삶을 선택한 주인공에게 갈채를 보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주인공의 모델이 되었던 고갱의 삶을 알게 되자 나는 극심한 혐오를 그에게 느꼈다.

그리고 미처 시인 백석의 시를 제대로 알기 전에 읽게 된 [백석평전]에서 백석은 나에게 나쁜 남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버렸다. 아줌마인 내 눈에는 그의 일생에서 지워져버린 두 명의 정실이 너무 크게 보였다.

“... ‘낙원’을 찾아주지 못할 망정 아예 ‘낙원’으로 가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두 번이나 애인을 찾아간 이가 백석이었다. ‘모던보이’의 윤리성의 파행을 근대성의 파행이라고 변명하기에는 찜찜한 감이 없지 않다. (p. 207 )" 라고 안도현씨도 말하듯이 그의 행동은 너무 무책임 했다. 그리고 이름 조차 알 수 없던 그 두명의 부인이 너무 불쌍했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다던 ‘란’ 과 결혼이 성사되었다면 그의 행동은 달랐을까?

 

1941년 발표한 그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 이런 대목이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뿐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생략

 

대부분 그 시 속의 ‘내 사랑하는 어여뿐 사람’으로 통영의 란(박경련)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애인 자야와 헤어진 것이 1939년 이었으니 불행이도 ‘자야’조차 그의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게다. 자야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비천한 여자로서 분에 넘치는 행복”을 느꼈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1941년 백석은 평양에서 문경옥과 결혼을 한다. 그의 결혼 생활은 1년 남짓이었다는데 송옥은 [백석시전집(송옥지음/흰당나귀)]에서 문경옥과 결혼 전에 여러 해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를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백석시전집 p. 636) 그럼 백석은 자야와 동거를 하면서 부모가 정했던 결혼도 했었고 그 와중에 문경옥과 연애편지도 주고 받았다는 애기가 된다. 그리고 첫사랑의 그녀에 대한 시를 쓰고...이정도면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김자림의 [부르지 못한 이름의 당신에게](학원사, 1986)에는 문경옥과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말 마, 얼마나 신경질인데. 가랑잎에 불이야. 시인은 다 그렇대나. 우리 언니가 가엾어. 저런 병적인 남자하고 어떻게 사누, 나 같으면 하루도 못살아. 빽빽 파랗게 소리만 지르구, 에그 에그......” 그 후 부터응 “시인=병적인 신경질‘로 단정해 버렸다.(p 263)

 

문경옥과 이혼 후 3년뒤 리윤희와 결혼해 살게 된다. (달라진 상황 때문이었는지) 그녀와는 아들 딸 낳고 해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어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가?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백석은 일제와 6.25전쟁을 겪어야 했다. 그시대 지식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의 요구에 행동이 강요되는 시기에 살았다. 1940년대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광복이 되자마자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이 그어졌고 남과 북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보는 관점도 서로 달라졌다.

1946년 함경남도 원산의 원산문학동맹에서 광복기념시집 [응향] 출간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먕 중앙위원회는 이 시들이 현실의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진 토안, 애상 따위의 표현을 일삼고 있으며 퇴폐적이며 반인민적인 경행으로 흘러버린 반동의 작품이라고 비판하고 그 이후 시집에 대한 판매금지, 검열원 파견, 사상겸토등 후속조치가 잇달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구상은 월남했고 이에 반해 서울의 순수문학론이 말만 그럴듯 하지 오히려 순수하지 않다고 판단한 허준과 이태준등은 월북하게 된다.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국토가 38선으로 갈라지는 것도 모자라 이후부터 남쪽과 북쪽의 문인들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고 문학의 분단도 점점 굳어지게 되었다 (p306)

한국전쟁 기간중에도 남과 북에 머물던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월북과 월남의 교차로에서 갈등을 빚고 행동에 옮겼다. 하지만 백석은 북한에서 오로지 번역작업에 매달렸다 전쟁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는 3년 동안 백석은 10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을 번역했다. (p317)

북한에서 백석은 1956년 동화시를 발표하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동화의 특질을 과장과 환상이라는 두 요소로 명쾌하게 제시했다. ‘아동의 교양’이라는 목적의식적 글쓰기에만 사로잡혀 있던 북한의 아동문학계에 제시한 이 주장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p330)

북한에서 백석은 스스로를 주류로부터 격리하거나 분림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고 했다. 백석은 정치적인것과 예술적인 것의 경계에 서 있고자 하였다. (p330)

그의 그러한 경향은 비난을 받았고 1959년 현지파견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원래 남편은 글밖에 모른는 사람이었지요, 삼수군으로 내려와 농장원으로 일했지만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어요. 남편은 도리깨질을 못해서 처녀애들에게 배웠을 정도였으며, 너무 창피해서 달밤에 혼자 김매기를 연습하기도 했지요.”

라윤희의 증언 (p371)처럼 그의 삼수군 생활은 처음부터 그리 녹녹한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농군으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하나의 개인을 평가하기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바람은 너무도 거셌다. 마치 방밖으로 내보내진 거미처럼 너무 춥고 차가왔다.

우리는 시인 백석의 삶을 평가할 수 없다. 안도현의 말처럼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알지 말 껄 그랬다.

 

나는 책을 읽을때 그 시대배경이나 저자에 대해 연구를 하길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백석의 시를 읽었어야 했다.

내 입에서 한 두 개쯤 외어진 시가 흘러나오 때 쯤 이 책을 보았어야 했다.

나는 시인 백석보다는 인간 백석을 먼저 알아버렸다. 어쩌지? 그가 가난을 노래 할 때 그가 신었다던 비싼 양말을 떠 올리고 그나 나타샤를 노래할 때 이름도 모르는 그의 두 아내가 생각나니....

너무 알지 말 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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