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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의 시대 - 들뢰즈와 사건의 철학, 소운 이정우교수 강의록
이정우 지음 / 거름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홍세화는 인물과 사상 1999년 5월호에서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프랑스의 철학자들과 아무 관련이 없는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에 편승해서 그대로 수입되어 형성된 것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와 영·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과 문학이라는 경계의 차이 이외에도 겹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어 있다. 한국에서 포스트구조주의가 진지하게 사유되지 못한 것은 이 둘의 구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강의를 그대로 녹취해서 기록한 글로 현장감이 많이 느껴지는 책이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토론기록은 특히 그러하다.) 다만 제한된 시간에 이루어지는 강의의 특징 때문인지 핵심개념을 제외하고는 언급된 여러개념들에 대한 설명이 다소 거칠다. (아마도 나의 지적수준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책만으로 모든 개념을 이해하려는 것은 무모한 생각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 책을 후기구조주의 입문서로 보기보다는 들뢰즈의 사건철학에 관한 입문서로 보는 것이 더 적확한 것 같다.
저자는 총 8번의 강의를 통해서 들뢰즈가 제시한 의미, 사건, 계열화, 특이성, 무의미와 역설 등의 개념을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후기구조주의가 가지는,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들뢰즈철학이 가지는 기존철학과의 차이점을 밝혀낸다. 토론기록은 이러한 개념을 내 수준에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강의의 끝무렵에 반인간중심적인 구조주의에서 인간중심적인 실존의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모든 지식은 결국 인간 실존에 대한 이해로 귀착했을 때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실존의 사유를 통해 자리-이름의 체계를 벗어나는 주체, 그런 체계의 격자를 가로지는 주체인 노마드적 주체(혹은 가로지르는 주체)를 제시한다.
저자는 기존 학계의 수구성 때문에 교수직을 그만두었던 아픈 경험이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경험이 노마드적 주체를 지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글의 마지막은 이 책의 7강 끝부분에 적힌 글로 대신한다.
'삶에 대한 열정,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 같은 고전적인 개념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사 그것이 환상이라 할지라도, 그 환상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을 추구하다 보면, 때로 그 환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노마드적 주체, 가로지르는 주체는 영원히 젊은이로서 살아가는 그러한 주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