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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 세대, 그 갈등과 조화의 미학
송호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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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서 지하철 역 내로 열차가 들어온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청소년이 열차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어느덧 집에 도착한 청소년은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헤드폰을 끼고 컴퓨터에 열중하던 아들에게 'Mommy님이 대화를 신청하셨습니다'라는 메세지가 도착한다. 대화창이 열리고 대화가 시작된다. '안녕~ 사랑하는 아들~ *^^*', '엄마... 컴퓨터는 언제 배우셨어요? -.-;', '우리 아들이랑 대화하고 싶어서 배웠지! ^^v', '엄마~~~ ㅠㅠ'. 어머니와 아들이 환한 웃음으로 마주 보는 장면에 문구 하나가 걸린다. '대화의 창을 열면 마음이 열립니다'.

위에 묘사된 장면은 최근에 방영된 공익광고의 내용이다. 공익광고에서 보여주는 세대갈등은 현대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세대 간의 적응 속도의 차이는 현저하다. 새롭게 성장하는 신세대는 변화를 손쉽게 받아들이지만 이미 기존의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변화를 거부하거나 외면하기 쉽다. 결국 새로운 변화를 문화적으로 흡수한 신세대와 기존의 문화를 고집하는 기성세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를 단절시킨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가치관이 대립하는 지점에서 세대갈등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그렇다면 세대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대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공익광고는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공익광고에서 어머니는 신세대 문화의 본령인 컴퓨터를 배워서 아들과의 단절된 대화의 재개를 모색한다. 신세대 문화를 배워가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통해 세대 간에 사고의 격차를 줄이고 서로를 이해해 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02년 대선 이후 세대갈등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인상비평의 수준에만 머무를 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한국,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는 세대문제를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대라는 틀을 매개로 한국사회의 변동을 추적한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이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탄생한 것이 연구를 시작한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세대를 둘러싼 다양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사회과학 이론과 실증적 방법론을 총동원한다. 이번 2002년 대선은 한국정치에 새로운 경향을 몰고 왔다. 기존의 선거가 지역주의에 의해 철저히 좌우되었다면 이번 대선은 지역별 차이가 다소 약해진 틈을 비집고 세대별 차이가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40대를 기준으로 연령별 지지율은 대척점을 이루었다. 노무현후보의 승리를 통해 2030은 현실정치의 장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5060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문화적 소외감을 넘어서서 정치적 소외감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언론매체들은 세대갈등과 사회분열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간의 인식처럼 2030과 5060의 가치관의 차이는 정말 현격한 것일까?

저자는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통계적 방법을 동원한다. 12가지 항목을 통해 세대 간의 가치관의 차이를 분석한다. 통계 결과는 자못 흥미롭기까지 하다. 권위주의, 북한 호감도, 미국 호감도를 제외하고는 많은 항목에서 세대충돌의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북한 호감도와 미국 호감도가 외부 상황에 따라 크게 변동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사실상 '세대충돌은 없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IMF사태를 기점으로 2030과 5060은 이미 한 배를 탔다. 아들에게 다가가는 공익광고의 어머니처럼 5060은 2030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두 세대 간의 가치관은 속도의 차이가 날 뿐 한 방향을 향해 변화해가고 있다. 언론에서 강조하는 심각한 세대갈등은 한국사회의 실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두 세대 간에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공익광고의 문구처럼 '대화의 창을 열면 마음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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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뭔데 -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
고상만 지음 / 청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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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11월 26일, 인권운동의 중요한 업적으로 꼽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3년간의 산고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다.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반영하듯 진정은 첫날부터 무더기로 접수되었다. 첫날에만 120여 건에 이르렀고, 열흘 남짓 만에 600여 건을 넘어섰다. 이 중 제 1호로 접수된 진정은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제 1호 진정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충북 제천시 보건소장 임용 과정에서 탈락한 전 충북 제천시 보건소 의무과장 이희원 씨에 관한 것이었다. 공석이었던 보건소장 자리에 자신이 유일한 적격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당한 이희원 씨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자 제천시장에 대한 성토로 여론은 들끓었다.

이희원 씨의 경우는 한국의 인권현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사독재가 종식된 이후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은 더디지만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인 민주화를 통한 언론자유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성장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은 여전히 그칠 줄 모른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차별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노력 못지 않게 일상적인 인권의식의 제고가 필요한 셈이다.

이 책은 10여 년 넘게 현장에서 일한 어느 인권운동가의 기록이다.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저자는 현장에서 만났던 인권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을 절절히 펼쳐낸다. 탁월한 이론이나 정치한 분석 같은 것은 없지만 풍부한 현장 경험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저자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이 책을 이끄는 힘이다. 저자가 쏟아내는 사연들을 하나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인권운동의 중요성이 새삼스레 피부로 느껴진다.

1부 '인권 현장에서' 편은 저자가 인권운동을 하며 접했던 사건들의 기록이다. 자신을 인권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선배 김용갑의 이야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던 어느 빈민 장애인 노점상의 이야기 등의 개인적 기록부터 한총련 여대생 성추행 사건, 전태일 열사의 삶 등의 사회적 기록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공권력의 반 인권의식을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의 비참한 실상을 전달한다.

2부 군 의문사 '진실과 화해' 편은 군 의문사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사회적인 주목을 끌었던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 대해서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 대한 의혹을 다룬 부분은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정작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최소한의 인권의식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대의 현실이다. '그깟 장교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60만 대군의 명예를 훼손하느냐?'는 모 대령의 말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3부 '사법부를 생각한다' 편에서는 법의 평등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느 존속살해 무기수의 이야기와 구로구 사채업소 피살사건 이야기를 읽다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명언이 다시금 떠오른다. 불편부당해야 할 사법부의 판결이 혹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한겨레'는 창간 15돌을 맞아 1988년과 2003년의 한국인들의 사회인식을 비교했다. 한국인들은 지난 15년간 삶의 질의 측면에서는 별로 나아진 게 없거나 오히려 나빠졌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인권상황 변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인권상황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1988년 71.5%에서 2003년 58.2%로 낮아졌다. 그러나 2003년의 조사에서도 ‘심각하지 않다’(36.0%)보다는 '심각하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것은 인권상황이 과거에 비해 조금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기대한다면 이 책의 끝부분에 적힌 인권단체 연락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인권운동가들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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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거닐다
이윤기 외 지음 / 옹기장이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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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명쾌한 사회과학적 이론에 시나브로 빠져 들었다. 비로소 복잡다단한 세상의 실체가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는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세상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다. 나는 그저 세상을 이론에 끼워 맞추고 있었을 뿐이다.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마치 온전한 몸을 놔두고 이론이라는 엑스선 사진으로 세상이라는 실체를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엑스선 사진 덕분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의 골격을 판독할 수 있었지만 골격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살은 사진에 드러나지 않았다. 살이 없는 앙상한 뼈대, 그것이 이론에 경도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었다.

앙상한 뼈대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살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그 살은 바로 우리네 소박한 삶이며 잔잔한 일상이었다. 거창한 이론으로 파악되지 않는 소박한 삶 속에, 잔잔한 일상 속에 세상의 생명력이 꿈틀대고 있었다. 구체적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나는 추상적 이론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세상은 나에게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다가왔다. 이후로 나는 소박한 삶 속에서, 잔잔한 일상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건져 낼 수 있었다.

이 책은 스물두 명의 저자가 펼쳐내는 스물네 편의 산문집이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저자들의 화려한 면면에 압도당했지만 책장을 하나씩 넘기면서부터 나는 저자들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압도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진리를 길어 올린다. 쇠사슬에 묶인 개의 모습을 바라보며 종교의 가르침을 깨닫고, 진흙탕 위에 피어난 연꽃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호도나무 대신 잘못 심은 가래나무를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깨닫고, 비바람 속에서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 형무소의 변소를 깨끗이 닦으면서 부처님의 존재를 가늠하고, 가축의 길들여진 모습을 통해 문명의 그늘을 비판한다.

그렇게 세상의 진리는 거창한 이론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소박한 삶 속에도, 잔잔한 일상 속에도 작은 진리들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러한 진리들은 소소한 일상조차 애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자들에게 비로소 열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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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의 통일이야기
백기완 지음 / 청년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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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쪽은 가난하고 우리는 잘산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남쪽도 가난해지게 되므로 통일이 싫다.' 요즈음 초등학생들은 통일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소비자본주의의 축복을 듬뿍 받은 이들에게 가난한 북쪽은 버거워 보인다. 혹시나 통일이 되어서 남쪽도 가난해지는 것이 그들은 두렵다.

지금처럼 소비의 천국에서 맘껏 컴퓨터 게임이나 즐기며 사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애타게 노래하던 기성세대에게 이러한 현실은 어떻게 다가올까? 극한적 이념 대립 속에서도 그들에게 통일은 포기할 수 없는 당위였다. 통일을 경제논리로 바라보는 작금의 현실이 그들은 안타까울 것이다.

이 책은 일생동안 통일운동과 민중운동에 매진해 온 백기완의 저서이다. 천부적인 이야기꾼답게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와 여기저기서 전해 들은 민중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분단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저자는 분단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통일에 대한 열망을 키워 왔다. 누군가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내 직업은 통일이요'라고 말할 만큼 저자에게 통일은 일생일대의 숙원이었다. 군사정권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통일이었다. 도대체 통일이 무엇이기에 그는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 왔을까?

첫째, 통일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일제의 극심한 착취와 수탈 속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뿔로사리처럼 꿋꿋이 일어났다. 1945년의 해방은 마땅히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 누려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해방과 동시에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남쪽에서는 미국의 비호 아래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했다.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을 주장한 애국자들은 오히려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분단은 잘못된 역사를 잉태한 원흉이다. 분단의 틀거리를 깨지 않는 한 잘못된 역사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둘째, 통일은 민족의 힘을 한데 모으는 일이다. 분단은 냉전 구도 속에서 남쪽과 북쪽의 끊임없는 대립과 긴장을 양산했다. 대치상태가 지속되면서 양쪽은 군사적으로 만만치 않은 비용과 인력을 허비했다. 또한 민중들의 정당한 요구조차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묵살되었다. 그리고 최근의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에서도 보듯이 남쪽은 미국에 대한 종속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통일은 남쪽의 피눈물과 북쪽의 피눈물이 만나 굽이쳐 모든 군사 장치와 허접쓰레기들을 몽땅 쓸어내는 것이다.

셋째, 통일은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통일이 되려면 우선 남쪽과 북쪽이 한데 합쳐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진정한 통일이라 볼 수 없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략과 다국적 자본의 횡포가 여전히 지속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통일일 뿐이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현재의 세계질서를 깨뜨리지 않는다면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저자는 제국주의, 착취주의, 상업주의 문화, 범죄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잘 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 노나메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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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
이성형 지음 / 역사비평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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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일 월드컵은 유난히 이변이 속출했던 대회로 기억된다. 개최국 한국의 4강 진출과 첫 출전국 세네갈의 8강 진출이 이변의 양지였다면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와 강력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의 16강 탈락은 이변의 음지였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탈락은 그 아픔이 남달랐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난의 수렁 속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삶은 비참했다.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40%를 웃돌았고, 실업률은 20%에 다다랐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여느 대회보다 더욱 간절했다. 사막 같은 일상에 찌든 국민들에게 월드컵 우승은 지친 심신을 위로할 오아시스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은 결국 죽음의 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아시스는 신기루였을 뿐이다.

이 책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다룬다. 메넴 대통령이 집권하던 1989년의 아르헨티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메넴 정부는 초기부터 대외금융권과 국내 민간 자본들이 요구하는 경제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태환법, 대외개방, 민영화로 요약되는 경제조치를 통해 메넴 정부는 그럭저럭 위기를 극복해 갔다. 성장률은 8%를 유지했고, 통화가치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지속되면서 경제는 점점 균열되어 갔다.

페소와 달러를 일대일로 묶는 태환법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고평가된 페소화로 인해 수출산업은 타격을 입었다. 무역적자는 만성화되었고, 외자도입은 가속화되었다. 이로 인해 경제의 대외종속도는 심화되었다. 결국 1994년의 멕시코 금융위기와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치자 아르헨티나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또한 급진전된 대외개방은 내수산업을 위축시켰다. 국내기업들은 임금삭감과 정리해고도 불사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은 증가했고, 빈곤층은 확대되었다. 그리고 무분별한 민영화는 공공요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초래했다. 결국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멕시코의 사정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1982년 외채위기 이후 멕시코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대외개방과 시장 지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러한 정책은 물가를 잡고 외자를 유치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지만 무역적자를 증가시켰고 내수산업을 붕괴시켰다. 이로 인해 1994년에는 치아파스 농민반란과 페소화 붕괴가 일어났고, 2000년에는 71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특히 치아파스 반군이 던지는 메세지는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폐해를 고발하고 인디오 세계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칠레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칠레의 기적을 시장개혁 모델의 성공작 또는 피노체트 군정의 작품으로 속단해서는 안된다. 의의로 국가의 적절한 개입과 규제가 칠레의 경제적 안정을 일구어 냈다. 아옌데 시절에 이루어진 과두제 세력의 해체와 구리산업의 국유화라는 사회적 기반 위에서 피노체트 정권의 적절한 경제 개입이 오늘날의 칠레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다루면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한국 언론의 해석에 의문을 표한다. 한국 언론은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시절에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전범으로 추켜세우더니 최근의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50년 전의 페론주의를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저자는 한국 언론의 해석이 실제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밝혀낸다. 저자는 상투적으로 굳어진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해석을 바로 잡고 싶었다고 말한다.

진정 라틴아메리카를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IMF의 권고를 충실히 수행한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결과와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용인한 칠레의 결과를 비교하면서 한국 경제의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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