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
이성형 지음 / 역사비평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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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일 월드컵은 유난히 이변이 속출했던 대회로 기억된다. 개최국 한국의 4강 진출과 첫 출전국 세네갈의 8강 진출이 이변의 양지였다면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와 강력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의 16강 탈락은 이변의 음지였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탈락은 그 아픔이 남달랐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난의 수렁 속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삶은 비참했다.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40%를 웃돌았고, 실업률은 20%에 다다랐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여느 대회보다 더욱 간절했다. 사막 같은 일상에 찌든 국민들에게 월드컵 우승은 지친 심신을 위로할 오아시스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은 결국 죽음의 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아시스는 신기루였을 뿐이다.

이 책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다룬다. 메넴 대통령이 집권하던 1989년의 아르헨티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메넴 정부는 초기부터 대외금융권과 국내 민간 자본들이 요구하는 경제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태환법, 대외개방, 민영화로 요약되는 경제조치를 통해 메넴 정부는 그럭저럭 위기를 극복해 갔다. 성장률은 8%를 유지했고, 통화가치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지속되면서 경제는 점점 균열되어 갔다.

페소와 달러를 일대일로 묶는 태환법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고평가된 페소화로 인해 수출산업은 타격을 입었다. 무역적자는 만성화되었고, 외자도입은 가속화되었다. 이로 인해 경제의 대외종속도는 심화되었다. 결국 1994년의 멕시코 금융위기와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치자 아르헨티나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또한 급진전된 대외개방은 내수산업을 위축시켰다. 국내기업들은 임금삭감과 정리해고도 불사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은 증가했고, 빈곤층은 확대되었다. 그리고 무분별한 민영화는 공공요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초래했다. 결국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멕시코의 사정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1982년 외채위기 이후 멕시코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대외개방과 시장 지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러한 정책은 물가를 잡고 외자를 유치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지만 무역적자를 증가시켰고 내수산업을 붕괴시켰다. 이로 인해 1994년에는 치아파스 농민반란과 페소화 붕괴가 일어났고, 2000년에는 71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특히 치아파스 반군이 던지는 메세지는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폐해를 고발하고 인디오 세계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칠레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칠레의 기적을 시장개혁 모델의 성공작 또는 피노체트 군정의 작품으로 속단해서는 안된다. 의의로 국가의 적절한 개입과 규제가 칠레의 경제적 안정을 일구어 냈다. 아옌데 시절에 이루어진 과두제 세력의 해체와 구리산업의 국유화라는 사회적 기반 위에서 피노체트 정권의 적절한 경제 개입이 오늘날의 칠레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다루면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한국 언론의 해석에 의문을 표한다. 한국 언론은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시절에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전범으로 추켜세우더니 최근의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50년 전의 페론주의를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저자는 한국 언론의 해석이 실제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밝혀낸다. 저자는 상투적으로 굳어진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해석을 바로 잡고 싶었다고 말한다.

진정 라틴아메리카를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IMF의 권고를 충실히 수행한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결과와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용인한 칠레의 결과를 비교하면서 한국 경제의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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