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와 준 펭귄클래식 57
아나이스 닌 지음, 홍성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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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처음엔 충격에 휩싸였다. 여자들끼리 모여앉아 이야기 하는 성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그것' 또는 '그곳'이라 지칭하던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혼자서도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그리고 내가 과연 읽고 있는 책이 고전이 맞는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이런 것들은 분명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뭐 그럴수도 있지' 하며 무심하게 지나치던 흔한 것들이었는데 문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런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무래도 내겐 벅찬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놀란건 독서모임에서 다들 예술과 외설 자체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 나는 서른이 넘는 나이를 살면서 스스로를 개방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난 이책을 처음 손에 잡고 읽기 시작했을때는 외설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책을 읽어감에 따라서 그런 생각은 차츰 지워졌지만 처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래도 나는 남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논하기에는 아직도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보통의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륜과 근친상간, 동성애를 다루는 책이라는 것이 책에 대해 온전히 알기 전에는 매력적으로 보였었다. 난 그들의 세계에서 그들 감정의 깊이를 가늠하고 그들의 삶의 얽힘에 가슴 아파 할거라 기대하며 책을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나이스 닌의 일기와 편지로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에 그녀의 시각에서만 사건은 비춰지고 그녀의 경험과 생각의 흐름으로만 시간은 흐른다. 결국 설명없이 던져지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내가 혼자 추론해보기도, 혼자 예상해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책은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완벽하게 그녀가 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그렇게....그녀의 생각에, 행동에 의문을 갖으며 혼자 대답을 찾으며 그렇게 책을 넘겨가며 결국은 나도 그녀가 되어보기로 했다. 

매력적인 외모와 물질적인 여유로움,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 물론 아나이스의 일기이기 때문에 모든 내용이 사실인지 알수 없지만 (더군다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기를 썼기에 사실을 미화하거나 자신의 생각으로 각색해서 썼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진정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남편인 휴고를 두고 정부인 헨리와 열렬한 사랑을 하고 헨리의 부인인 준과 동성애적인 면을 보이는가 하면 사촌인 에두아르도, 정신과의사인 알렌디와의 감정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 몸이 이끄는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사랑에 충실하면서 그녀는 그로 인한 행복감과 동시에 고민과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로인해 자신의 존재를 통찰하고 인정하는 이야기들을 일기에 담아두고 있다.

오늘 오후에 헨리가 올 것이다. 그리고 내일 나는 준과 데이트할 것이다.
                                                                              - p.363 책의 마지막 

이렇게 아나이스 닌의 책은 끝이 나지만 그녀의 일기는 변치 않는 그녀의 이야기들로 채워질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만을 들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문란한 여자라고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을 읽어나갈수록 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나. 그저 자유분방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부응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에 따르는 사회적 위기감이라던가 남들의 곱지않을지도 모를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생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자유로움이, 그녀의 솔직함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난 아직 보수적이라는 변명을 하는 소심한 여성이다. 어쩌면 나와는 다른, 남들과 다른 여성이라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아나이스 닌은 같은 여성인 내게 어떤 해방감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려거든 아나이스 닌처럼 대담해 질 수 있어야지. ㅋ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아나이스 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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