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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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간이 나면 늘 하게 되는 일이 인터넷에서 책을 고르는 일이다. 책장을 만들고 그 책장에 책을 끼우고 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 되어버린 내게 책을 고르는 일이 너무 행복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던중 발견한 책,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 애너벨 리라는 이름은 포의 시집에 나오는 이름이란 건 어렴풋이 알것 같았고, 어렸을 적 아빠가 레코드판에 틀어놓았던 이 시를 낭송하는 외국남성의 음성도 가물가물 기억이 난다. 제목도 참 신비로운 느낌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났다. 쓸쓸한 느낌이 드는 문장들과 주인공들의 대화들이 왠지 모르게 하루키의 책들이 떠오르곤 했다(그냥 이건 내 생각이다). 후에 알게 됐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고 한다.  

이 책은 겐자부로에게 대학친구 고모리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모리는 30년전 끝마치지 못한 'M계획'을 지금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이야기는 30년전으로 흐른다. 30년 전 고모리는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 일본판을 제작하기 위해 여주인공역의 사쿠라와 함께 겐자부로를 찾아와 시나리오 작업을 부탁한다. 이 영화제작이 'M계획'이다. 어렸을 적 포의 애너벨리 시를 읽었고, 그 시를 주제로 만든 영화를 보았던 겐자부로에게 여주인공이었던 사쿠라와의 만남은 특별한 것이었다. 일본판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은 겐자부로의 어머니가 연극공연을 했던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여인의 강인함과 고통을 치유해 나가는 인물을 만들어간다. 그를 통해 사쿠라는 자신이 가진 아픔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겐자부로에게 모두 이야기 하게 된다. 사쿠라는 전쟁 고아로 자신을 후원해준 미국인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는 사쿠라를 성적 노리개로 농락했지만 그것을 철저히 감추고 살아오게 했다. 정신과 의사에게조차 진실을 밝히지 않은 사쿠라는 현실에서는 깨닫지 못하지만, 의식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그 진실에 대해 밝히고 마주하려 한다. 'M계획'이 무산됨과 함께 사쿠라가 두려워하던 진실은 밝혀지고 사쿠라는 오열한다. 시간은 흘러 30년이 흐르고 그 세월동안 진실을 마주했던 사쿠라는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왔다. 그녀에게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 영화제작은 특별한 계획이었고,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은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치유해주는 이야기였다. 고통스런 삶이었지만 그 아픔을 이겨낸 사쿠라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가진 노년의 겐자부로, 암투병 중인 고모리. 그들이 다시 만나 30년전 끝내지 못한 'M계획'을 완성해가면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에 당당히 선다.

누구나에게 인생이란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고통스런 자신의 과거를 가슴에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고통을 대면하며 이겨낼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고통스런 삶을 이겨내기 위해 고통 자체와 부딪치라한다. 만약 사쿠라가 비디오의 마지막 부분을 보지 못했더라면, 평생 알수없는 고통의 심연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인생 앞에 선 사쿠라를 통해 비디오 속의 아름다운 애너벨리는 죽었지만 강인한 여성으로의 애너벨리는 다시 인생을 살아가는 듯하다. 

노벨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등단 50주년 기념 소설을 처음으로 이 작가를 접하다니 너무 늦게 알아버린것 같다.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자신이 믿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작가이다. 또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과 살아가며 공존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지금 만난 이 한 권의 책에서 작가의 많은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책으로 다가오는 겐자부로의 생각과 메시지들이 나에게 오랜 기간 영향력을 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의 이 문장력... 쓸쓸함을 마주하게 만들고, 그것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이 책에 너무 깊이 빠져든거 같다. 이 여운이 가시기 전에 다시 오에 겐자부로책을 더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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